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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사 탐험]근대 건축의 대명사 부민관을 아십니까?

  • 201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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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살림살이를 의정하는 서울시의회 청사로 활용되는 부민관

서울시청 건너편에 자리 잡은 서울시의회 청사. 세월이 묻어나는 흰색 건물은 그리 높지도 않고 단정하면서도 소박한 외양을 갖추고 있다. 이 건물이 한 때는 서울시민들의 문화예술극장으로, 또 한 때는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돼왔으며, 올해로 79년째 광화문 네거리를 지켜온 터줏대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건물이 경성 전기(주) 기부금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아는가?

서울시의회 청사 건물의 본래 명칭은 부민관(府民官).1934년 계획 당시 서울시의 정식 명칭이 경성부(京城府)였기에 당시 경성시민을 위한 부립극장인 셈이다. 이 건물은 지하 1층~지상 3층의 건물로, 연면적 1,700여 평에대강당·중강당·소강당·담화실 등을 갖췄으며, 냉·난방 설비는 물론 조명·음향시설까지 갖춘 최첨단 건축물로서 광화문 일대에선 조선총독부와 경성부청(현 서울시청옛 청사)과 함께 서울도심의 랜드마크 구실을 톡톡히 했다.

하늘로 우뚝 솟은 첨탑 형태를 도입하는 등 파격적이면서도 웅장함을 살리고 있는 모던 풍의 이 건물은 건축 당시의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음이 특징이며, 흥미로운일은, 이 건물이 경성전기주식회사(이하 경전/京電)의기부금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경전과 부민관은무슨 연관이 있을까?

 

2※ 현 국립의료원 자리에 위치해 있던 경성부민병원

엄청난 수익을 내는 독점기업, 이에 맞서는 공영화 논란

경전은 1915년 9월, 일한와사주식회사에서 경성전기주식회사로 사명을 고쳤다. 일한와사(주)는 원래 한국통감을 지낸 소네 아라스케의 아들 소네 칸지가 주동이 되고, 여기에 일본인 권세가들이 합세하여 창립한 것이다. 그때가 1908년 9월 30일의 일이며, 본사는 동경에 위치해 있었다. 일한와사(주)는 회사 이름에서 보듯이 한국에서 와사 즉 ‘가스’장사를 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들은 이미 회사를 창립하기도 전인 1907년 6월 27일자로 한국통감부를 통해 경성 일대의 가스영업 허가권을 교부해 놓은 상태였고, 2년 뒤인 1909년 6월에는 경성 전역의 전차와 전등·전화 영업권을 갖고 있던 ‘한미전기회사’를 콜부란(H.Collbran)으로부터 인수했다. 이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경전은 어느새 근대 문명의 필수품이 되고 있던 거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게 됐고, 엄청난 수익을 냈다.

더욱이 그것은 독점적인 권한이었다. 한마디로, 잘 나가도 한참 잘 나가는 기업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비근한 예로, 1920년대 이후 경전은 1년에 두 번 있던 정기 주주총회 때마다 12%에 달하는 고액의 배당금이 꼬박꼬박 주주들에게 지급되었다. 이 흐름은 세계적인 대공황 사태가 왔던 1929년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렇게 수익이 많았던 이유는 비싼 전기요금과 전차요금이 바탕을 이룬다. 그리고 경전의 주주 대부분은 주로 일본인 들이었다. 더군다나 장사는 경성에서 하고 정작 본점은 도쿄에 두고 있다는 사실과 조선총독부의 비호를 받고 있는 독점적 이익 구조라는 사실로 말미암아 경성 시민들사이에 원성이 불거지기 시작했고, 이 같은 폐해에 맞서려는 움직임이 1920년대 중반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전기가스를 공영제(公營制)로 전환하거나 전기료 인하 운동 같은 것으로 표출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때 경전의 이익 독점을 보장해 주던 가스사업의 허가 연한은 1932년 6월 26일(25년 만기)이었고, 한미전기회사로부터 물려받은 전기 사업의 허가 연한 역시 1933년 1월 17일(35년 만기)이었다. 경전으로서는 그동안 한국에서 누려왔던 독점적 지위를 어떡해서든 연장, 유지 하고자 하는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1※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제가 개최되는 등 문화예술극장으로 출발한 옛 부민관

경성전기 기부금 100만 원으로 부민병원·부민관 건립

결국 경전의 ‘사업허가 연장’을 놓고 경성부(京城府) 자문기관인 부협의회(府協議會)에서는 경전의 사업 유효기간 만료를 계기로 이를 공영화(公營化)할 것을 들고 나왔다. 부영화 안 골자는 ①공익사업인 전기·가스사업을 경전에 독점 경영케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점 ②독점사업이기 때문에 폭리를 꾀하여 요금이 비싸다(高騰)는 점 ③경전의 사업경영 유효기간이 1933년 1월로 만료된다는 점 등이었다.

이 부영화 안은 논란에 논란을 거듭한 끝에 경성부 부협의 회에서 통과되었다. 1932년 4월 25일 발표한 전기 부영화(電氣府營化)의 최종안은 ①회사의 본점을 경성부로 이전 ②회사 사업지 부읍면에 대하여 총액 110만 원(경성부 100만 원, 기타 10만 원)을 기부함. 경성부 이외의 부읍면에대한 기부금은 총독부에서 결정 교부할 일 ③기부금은 영업기한 갱기허가를 득한 시(時)에 금 60만 원(경성부 50만원, 기타의 부읍 10만 원)을 납부하고 경성부에 대한 잔액은 허가 1년 후에 납부함 ④장래 증자할 시에는 조선에서도주식 공모를 함 등이다.

요컨대 경전은 그동안 누려온 독점적 지위를 앞으로도 계속하되, 그 대신 공익 차원에서 몇 가지 ‘성의표시’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경전이 100만 원에 달하는 거액의 기부금을 낸다는 대목이다. 이러한 타협이 이루어진 결과, 경전에 대해서는 1932년 7월 8일자로 무난히 35년간 영업 연장 허가가 내려진다. 이에 앞서 일본 도쿄에 있던 경전 본점은 1932년5월 16일 경성으로 이전되었다.

그리고 100만 원의 기부금은 1932년과 1933년에 걸쳐 50만 원씩 두 차례로 나눠 경성부에 건네졌다. 이 돈은 경비진료소(經費진료소/빈곤층을 위해 싸게 치료해주는 사회시설)를 건립하는데 투입하기로 하고 지금의 국립의료원 자리에 경성부립 부민병원을 건립했으며, 2차 년 기부금 50만 원은 경성부민관의 착공을 이룬다.어쨌거나 부민관은 착공 1년 5개월여 만인 1935년 12월 10일에 낙성식이 거행되었다. 그 당시로서는 최신식 시설이 두루 갖춰진 종합 공연장으로 설계됐었지만, 이곳은 이내 군국주의가 판을 치면서 무수한 정치 집회와 동원예술이 이뤄지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3※부민관 보도

– 사보 ‘수차와 원자로’ 2014년 8월호 발췌(http://ebook.khnp.co.kr/Viewer/YPUNZ4HT66F4)

송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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