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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이 밝혀낸 나폴레옹의 사인

  • 201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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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기 드라마 CSI를 보다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가 시체의 부검 장면입니다.

부검은 법의학에서 시체의 사인을 규명하는 것이 목적인데, 여기에도 방사선이 활용됩니다.

희대의 영웅인 ‘나폴레옹’도 방사선조사로 다양한 사인들이 추측되었습니다.

방사선조사로 기준치를 훨씬 넘은 ‘비소’ 성분이 다량 검출되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의 사인을 밝힌 방사선조사의 놀라운 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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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는 지중해 코르시카섬 아작시오 출신입니다.

그는 프랑스혁명기 때 코르시카국민군 부사령관으로 취임했다가 1796년 결혼과 동시에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으로 임명돼 유럽 곳곳을 정복하면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1798년 이집트 원정을 시작으로 그는 연이은 패배를 맛봅니다.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해군에 패하고, 1812년 러시아원정에 실패합니다.

1814년에는 영국,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에 파리를 점령당해 엘바섬으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섬을 탈출해 워털루전투에서 권토중래를 노렸으나 영국에 항복하고 맙니다.

이후 다시 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나폴레옹은 1821년 위암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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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세에 숨진 나폴레옹의 사인은 위궤양에 의한 종양으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영국군 소속의 군 검시관 5명이 부검을 시행했는데, 나폴레옹의 위에 새끼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과 암세포가 있었다는 것이 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1961년 스웨덴의 내과의사이자 독물학자였던 포르슈훗이 ‘누가 나폴레옹을 죽였는가?’라는 책을 발표하면서 나폴레옹 독살설이 제기되었습니다.

생전에 나폴레옹이 친지들에게 나눠준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다량의 비소가 검출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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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는 미연방수사국(FBI)의 법의학 책임자가 나폴레옹 임종 시 그의 하인이 채취했던 머리카락을 조사해 정상인의 38배가 넘는 비소를 발견합니다.

이때 사용된 방법이 방사선조사입니다.

방사선조사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고감도 화학분석법으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사능을 띠지 않는 일반 입자에 중성자를 쪼이면 붕괴 없이 질량 1이 늘어납니다.

질량 1이 늘어난 원소는 불안정한 상태가 되는데, 여기에 방사선을 조사하면 다시 안정된 원소로 변하면서 감마선을 방출합니다.

바로 이때 방출되는 감마선을 측정하는 것이 방사선조사법인데, 모든 원소는 저마다 반감기가 다르기 때문에 감마선의 세기에 따라 원소의 종류와 양을 정확히 알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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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나폴레옹의 죽음이 독살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그에 반대되는 주장을 펼친 이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19세기 당시 유럽 저택에 사용됐던 벽지, 커튼, 장식에는 다량의 비소가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나폴레옹이 유배됐던 롱우드 저택의 벽은 그가 좋아했던 초록색 벽지로 치장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많은 양의 비소가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영국 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는 2006년 주치의들의 부주의로 나폴레옹이 사망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다방면의 방사선조사로 나폴레옹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한 꺼풀 풀어낸 셈이니 그 이상의 해석은 각자의 몫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죽음도 상황에 따라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수도 있지만, 방사선조사라는 뛰어난 기술이 있는 만큼 이 기술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속속들이 밝혀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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