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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사 탐험]상업발전 수력 1호, 원산수력전기(주)

  • 201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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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 때 원산 중심 거리. 배전주가 길가 양쪽에 늘어서 있다)

동해안 제일의 항구도시 밝힌 배전회사

군대 기합 중에 ‘원산폭격’이란 게 있다. 양손을 등 뒤로 깍지 낀 채 엉덩이는 쳐들고 맨땅에 머리를 처박는 기합이다. 양손을 허리 뒤로 하고 머리와 발끝으로만 지탱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목 디스크가 올 수도 있고 정수리 탈모도 유발 할 수 있어 기합이라기보다는 고문에 가까운 벌이다. 이 기합의 유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추측하건대 한국동란 당시 북한 제일의 항구도시 원산(元山)을 초토화시킨 미군의 폭격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함경남도 원산은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지이자 공업의 요충지로서 한반도 제일의 동해안 항구도시였다. 한국동란 당시 처참하게 초토화됐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미 공군과 해군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받은 원산은 성한 건물 하나 남아나지 않고 전체가 잿더미로 변했다.

 5(한국동란 당시 미군이 원산역의 북한 물자가 실려 있는 열차들을 폭격하고 있다)

경원선 철도를 통해 실어 나르던 물자들도 폭격을 피하지 못했다. 그만큼 원산은 북한의 중요 거점 도시로 연합군의 공세가 어느 지역보다도 거셌다. 전력사 측면에서도 원산은 일본인들이 수력설비를 갖추고 최초로 배전사업을 시작한 곳이다. 한반도에서 하천 (河川)을 이용해 수력발전이 처음 이루어진 것은 원산수력 보다 7년여 앞선 1905년 평안북도 운산수력(500kW)이 효시를 이룬다. 이 운산수력은 미국인이 경영하던 동양 금광회사의 자가용 설비로 금광을 캐고 제련하는 데 필요한 전력을 공급했다.

 

3(동해안 제일의 항구인 원산항에 정박해있는 배들)

우리나라 최초의 수력설비 갖춘 일본계 배전회사

1876년 강화도에서 한·일수교조약이 체결되어 부산과 원산, 인천이 개항되었고, 약삭빠른 일본인들은 이들 개항지를 중심으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1901년 당시 우리 나라에 거주하던 일본인은 1만 8000여 명이었다. 4년 뒤인 1905년 9월에는 일본이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 해 11월 통감부를 개설하면서 일본의 한반도 강점이 본격화되었고, 일확천금을 꿈꾸고 몰려온 일본인들은 급격히 늘어나 1910년에는 17만 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그들은 대부분 일본 정부의 보호와 일본인 금융기관의 자금지원을 받아 상권을 장악해나갔다. 그들이 장악한 상권지역에는 소규모 배전사업도 진출했고,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그들의 지위가 안정되자 일본인 대자본에 의한 전기사업 진출도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전기사업은 완전히 그들의 독점물이 되었다. 원산수력전기(주/이하 ‘원산수전’)도 그중 하나였다.

특색이라면 1912년 12월 26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수력발전설비를 갖춰 배전사업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오오다노리미쓰(大田儀三)를 비롯한 일본인 6명은 1907년 7월 함경남도 양일천 상류인 덕원군 지계동에 수력을 이용한 발전사업을 계획하고 농상공부대신으로부터 사업허가를 받았다. 회사 설립은 그로부터 4년 9개월만인 1912년 3월 20일에야 겨우 있었고, 그해 12월 26일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발전설비는 맨 처음 수로식 86kW로 출발했다. 하지만 일본인 상권 중심으로 점차 수요가 늘어갔다. 1912년 개업 당시 210호 1,100등(燈)이던 전등수요는 3년 뒤인 1915년에는 827호 3,360등으로 수용호수로는 4배, 등수로는 3배로 늘어났다. 86kW 수력설비로는 공급이 달리게 되자 원산수전은 자체 발전시설을 확충하는 데 힘쓴 가운데 1924년 991kW로까지 증설하였고, 이후 장진강수력발전(주)으로부터도 2만kW를 수전 받는 등 시설의 확충과 함께 전등수요가 늘어나면서 대형회사로 변신해갔다.

 

6(1950년 11월의 원산시내 굴뚝과 건물들은 아직 남아있다)

원산수력, 배전사업체 흡수통합 후 대형 회사로 성장

배전사업체가 난립하면서 전기요금도 제각각이었다. 원산수전은 수력발전 설비를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이 타 지역보다 비싸 총독부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원산수전은 수력발전시설에 소요되는 마력당 건설단가가 일본의 2배 이상 투입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강변했다.

2(일제 때 원산 시청. 현대식 건물이 눈길을 끈다)

배전사업체의 난립과 제각각인 전기요금 체제는 총독부의 골칫거리였다. 1920년~1931년 사이 한반도에서의 전기사업체는 무려 57개나 설립되었는데 이중 배전회사 54개사, 발전회사 2개사, 송전회사 1개사였다. 이에 따라 총독부는 배전사업 통합을 추진했는데 함경남도 해안선에 본사를 두고 있던 원산수력전기(주)를 모체로 북선전력(주), 함남전기(주), 북청전등(주) 등 4개사와 대흥전기(주) 함흥지점을 매수 합병하고 사명을 함남합동전기(주)로 개칭했다. 원산수력전기(주)는 이후 자본금 240만 엔의 대형회사로 변신하면서 함경남도 원산을 경제 및 공업의 요충지로 성장시켰다.

– 원본글 보러가기 ‘수차와 원자로 11월호’ http://ebook.khnp.co.kr/Viewer/GL8QYDFGMU1N

송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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