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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리포트 | 뉴욕사무소 편②

  • 201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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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곳곳에서 글로벌에너지 기업의 일꾼으로 땀 흘리고 있는 직원들의 글을 통해 그 나라의 풍습과 일터의 모습을 알아보는 ‘글로벌 리포트’ 코너. 이번 호에는 뉴욕사무소의 두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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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주) 뉴욕사무소 사무실에서 건너다 보이는 George Washington 다리를 경계로 뉴욕주와 뉴저지주로 분리된다. 유리창 너머로 뉴욕시의 빌딩숲을 보며 여기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를 떠올린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마칠 무렵인 1992년 남편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남편과 함께 예술가로서 성공하리라는 꿈을 안고 생활을 시작했지만 부푼 기대도 잠시, 둘이 공부하기에 뉴욕의 물가는 살인적이었고 첫아이를 가지면서 남편만 공부를 하게 되었다. 뉴욕의 수많은 화려한 무대와는 달리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 대부분은 브로드웨이가 아닌 off 브로드웨이에서 맴돌다 비주류의 설움과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딪혀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곤 한다. 맨바닥에서부터 시작한 뉴욕에서의 생활은 거대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지척에 두고 매일 걸으면서도 몇 년을 지나서야 한국에서 온 조카들 때문에 겨우 방문을 할 정도로 낯설었다.

미국 내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 무려 800여 개의 언어가 사용되는 다민족, 다문화가 몰려 있는 세계의 문화 수도 뉴욕. 각계 각층에서 세계 최고를 꿈꾸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 뉴욕. 월스트리트의 금융인, 세계 디지털 문화를 이끄는 벤처맨들도 종종걸음으로 출근해 치열하게 생활하지만 일단 일을 마치면 일년 내내 끊이지 않고 열리는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메트로폴리탄의 오페라 공연, 소호와 첼시에서 열리는 전시회 등을 통해 예술적 소양을 겸비한다.

이것이 바로 뉴요커의 경쟁력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맨하탄은 뉴욕의 강남이라고 불리지만 42번가에 있는 허름한 가게에서 1달러짜리 피자 한쪽을 사기 위해 남미의 이민자들이 긴 줄을 선다. 다른 뉴요커들은 고급레스토랑과 센트럴파크를 정원 삼아 링컨센터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으로 돌아갈 때 멕시코와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은 지하철에 지친 몸을 싣고 고향에 꿈과 희망을 보내는 또 다른 세계를 연출한다.

뉴요커 50% 이상이 싱글, 다양한 인종과 문화 공존

뉴욕에 와서 한국인이라는 국적, 인종 때문에 차별을 받은 경험은 거의없던 것 같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기에 그리 민감하게 느끼지 않고 내 길만 걸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굉장히 친절하게 보이면서도 저변에 차별과 편견이 곳곳에 있지만 미국은 소수자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차별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심각한 범죄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동관련 범죄가 가장 용서받지 못할 것으로 취급되며 성적 소수자나 타인종을 차별하는 언어적 신체적 표현은 사회적 법적 지탄의 대상이 된다.

뉴욕은 워낙 물가가 비싸고 집세가 월세이기에 미국인들은 저축을 거의 하지 않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소비위주로 생활하고 있다. 뉴요커의 50% 이상이 싱글이며, 뉴욕에 바(Bar) 문화가 발달된 것도 이 때문이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갖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만약 아이가 생기면 아파트가 좁은 뉴욕에서 아이를 키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뉴저지 인근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러나 대부분의 뉴요커들은 교통이 편하고 다양한 문화시설이 있는 뉴욕을 사랑하며 좀처럼 떠날 생각을 하지 않기에 오늘도 그들은 센트럴 파크를 따라 열심히 조깅을 하고 있다.

 

 

 

향수병을 치유해준 고마운 회사 한수원

한수원에 입사하기 전에 미국 회사에서 일하던 시기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한국 음식점도 많지 않아 맨하탄의 빌딩숲을 거닐고,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허드슨 강을 바라보아도 한국이 그리웠다. 그러던 중 한수원 뉴욕사무소에 우연히 지원을 하여 일하기 시작해 오늘날 뉴욕사무소의 최장기 근무자가 되었다. 타국에서 첫아이를 낳고 기르며 낯설고 힘든 이민생활에 한수원은 내게 정말 신선한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추석이면 송편을 선물해 주어 얼마나 기뻤던지 친구들에게 자랑을 할 정도였다. 그 당시에 나는 고국의 가을 황금빛 벼이삭의 출렁임과 복숭아꽃 핀 길이 보고 싶어 가슴의 두근거림과 압박이 올 정도로 심각한 향수병을 앓고 있었다. 그때 다행히 회사에서 현지직원 고국 현장교육을 시행해 한국땅을 밟고 온 후에 그 심장의 압박감이 정말 거짓말처럼 없어져 얼마나 신기했던지!

이 글을 통해 진심으로 회사와 뉴욕사무소의 모든 주재원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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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한류의 뉴욕

뉴욕의 가장 번화가인 타임스퀘어가든에는 LG와 삼성을 광고하는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있고, 어느 순간부터 유대인이 다수였던 타운이 한국인이 다수로 변하게 되었다. 한인타운이 형성 되는 곳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없어지고 한인 교회가 형성되고 시의원이 한국인일 정도로 한국인의 파워는 대단하게 변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지난해 추석잔치로 한국 유명 연예인이 대거 오게 되어 캐나다 및 서부에서까지 교포들이 비행기를 타고 오고 남미계통의 청소년들까지 공연을 보러온 경우도 직접 보았다. 추석잔치 때마다 둘째아이는 미국친구들과 이곳의 추석공연에 나가기 위해 얼마나 연습과 의상준비에 열심인지 미국엄마들까지 적극 도와주며 추석잔치에 올 정도이다. 또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곳의 2세들은 미국 주류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면서 미국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중대한 가교역할을 하고 있기에 한국어 교육은 이곳 교포들에게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이런 모든 일들이 20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 꿈만 같다. 오랜 기간 고생과 땀으로 이루어 놓은 자랑스런 교포들의 노력 덕분이고, 또한 고국인 대한민국의 위상이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뉴욕은 이제 우리 교포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란 이질감 없는 친근한 고향이자 내가 과거 느낀 낯선 곳이 아닌, 낭만과 꿈이 있는 사랑스런 곳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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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수차와원자로 2012년 10월호 (글·사진 유미셀(Michelle Yoo) 뉴욕사무소)

http://ebook.khnp.co.kr/Rise7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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