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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에 알린 날, 3·1절

  • 201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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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을 소개합니다.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한국의 독립 의사를 전 세계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삼일절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이제는 공휴일로 굳어진 면이 큽니다.

하지만 당시 지식인들과 학생들, 필부필부에게 나라 잃은 아픔과 독립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안다면 깜짝 놀랄 텐데요.

간절한 염원은 하나의 물결이 되어 한반도 전체에 퍼져 나갔습니다.
진정한 대한민국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던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 3·1운동

3ㆍ1운동은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지 지배에 대한 민족의 저항으로 일어났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각 분야에서 폭력적인 억압과 수탈을 자행하는 무단통치를 실시했습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속박하고 항일 운동가들을 학살, 고문하는 식으로 탄압해왔습니다.

또한 토지조사사업과 회사령 등으로 경제적 수탈을 자행했습니다.
1910년대에 지속적으로 나타난 이러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약탈로 농민의 비롯한 민중의 생활은 크게 악화되었으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지가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일제에 대항하고 민족정신을 되찾고자 한 항일운동은 대학 독립 의군부, 민단 조합, 광복회, 조선국민회 등의 비밀결사운동이 각지에서 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종교단체와 사립학교, 야학, 서당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또한 농민과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통치기구를 공격하고 파업을 하는 형태로도 나아갔습니다.

 

독립선언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민족대표 29인(33인 중 4인 불참)

 

◆ 3·1 독립선언서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의 독립을 내외에 선언한 독립선언서는 일본 정부에게 건의서 형식으로 요구하려 했으나 강력한 독립의지와 그 당위성을 위해 최남선 선생이 작성했습니다.

손병희 선생은 독립선언서 작성의 대원칙을 평화적이고 온건하며 감정에 흐르지 않으며,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조선의 독립이 필요하며 민족자결과 자주독립의 전통정신을 바탕으로 정의(正義)와 인도(人道)에 입각한 운동을 강조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작성된 독립선언서에는 일본의 감시와 눈을 피해 2만 1000장을 인쇄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드디어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선포 및 배포되었습니다.

민족대표들은 3월 1일 아침 인사동의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 100장을 탁상에 펴놓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열람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후 2시에 한용운 선생이 이를 낭독하고 일동이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고 축배를 들었습니다.
이날 같은 시각인 오후 2시 탑동(파고다) 공원에서는 학생 ·시민 등약 5,000명이 모였고 정재용이 선언서를 낭독하였습니다.

 

유관순 열사

 

◆ 유관순 열사

3·1운동은 전국적으로 물결을 이루며 일어났고, 그동안 억눌렸던 민족정신에 불이 붙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 또한 거리로 뛰쳐나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결국 아오네 장터에서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부모님 또한 일본 헌병에 의해 죽고, 오빠 또한 투옥 되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 감옥에 갇혀서도 만세를 부르다가 결국 옥사합니다.
유관순 열사는 비록 어린 여학생의 몸이었지만 독립에 대한 의지를 몸소 실천한 시대의 영웅입니다.

 

◆ 한용운 시인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한용은 시인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습니다.
<님의 침묵>’을 발표하여 조국을 ‘님’으로 형상화하기도 했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한용은 시인은 그 뒤에도 갖은 고초를 겪고 중풍으로 투병하다가 죽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육체적 말살을 자행했던 일본은 그로부터도 26년을 더 식민통치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한 번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한국의 근대사는 피와 눈물로 얼룩진 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고,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며 우뚝 섰습니다.
어떠한 무력도 인간의 정신적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선조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총과 칼뿐만이 아니라 내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올해는 삼일절을 맞이하여 잊지 말고 국기를 게양하시길 당부드립니다.
삼일절은 국가의 경사가 있었던 국경일입니다.
억눌렸던 민족의식이 깨어난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태극기를 높이 달고 그날의 뜻을 기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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