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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에세이| 탄생 100주년 김환기, 점화의 탄생

  • 2013.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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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세이1

1. 김환기, 무제, 1-Ⅱ-68, 1968, 종이에 유채, 55″~37㎝. [사진 갤러리현대]

“봄내 신문지에 그리던 일 중에서 나는 나를 발견하다. 내 재산은 오직 자신(自信)뿐이었으나 갈수록 막막한 고생이었다. 이제 자신이 똑바로 섰다. 한눈팔지 말고 나는 내 일을 밀고 나가자. 그 길밖에 없다. 이 순간부터 막막한 생각이 무너지고 진실로 희망으로 가득 차다.”

1967년 10월 13일, 54세의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는 뉴욕의 작업실에서 이렇게 적었다. 한국 모더니즘의 선구자인 그는 만년에 이 낯선 땅에서 수 만 개의 점으로 이뤄진 자기만의 양식을 완성한다. 이제부터 얘기하려는 것은, 김환기의 대표작인 ‘점화(點畵)’의 탄생이다.

100년 전인 1913년 전남 신안군 기좌도 부농의 집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이중섭·박수근만큼이나 중요한 우리 미술가다. 한국 미술이 구상에서 추상으로, 근대에서 현대 미술로 옮겨가는 가교 역할을 했다. 일찌감치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 미술을 접했고, 최초의 근대 미술 유파인 신사실파를 결성했다. 시대를 앞선 모던 보이였지만 옛 것을 좋아했고, 서양화가였지만 선비처럼 살았다. 홍익대 미대 초대 학장을 지내고,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회화 부문 명예상(1963)을 수상하는 등 국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었음에도 새로움을 찾아 파리로, 뉴욕으로 떠돌았다. 11년간의 뉴욕 생활을 기록한 일기는 오로지 화폭만을 세상으로, 우주로 여기고 분투한 노화가의 외고집이 느껴져 숨 가쁘다. 1970년의 새해에는 이렇게 적으며 고국을 그리워했다.

 “나는 술을 마셔야 천재가 된다. 내가 그리는 선(線),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江山)…….”

 가진 것 다 내려놓고 낯선 땅으로 간 화가는 외롭고 가난했다. 재료값 감당도 만만치 않았을 터다. 그런 화가의 눈에 폐지의 수순을 밟을 일만 남은 ‘뉴욕 타임즈’가 들어왔다. 낡은 전화번호부도 그림 재료로 쓰였다. 큰 작업을 앞뒀을 때는 글씨가 인쇄된 누런 종이들을 바탕재로 한 그림들이 하루에도 5∼10점씩 완성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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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72년 뉴욕 작업실의 김환기. [사진 환기미술관] 3.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Ⅳ-70 #166, 1970, 면에 유채, 232″~172㎝.

이 ‘신문지 유화’는 그가 시도한 조형적 실험의 기본 설계도이자 이미지로 표현한 일기장이었다. 기초 체력을 다지듯 종이의 특성을 실험한 작업이 쌓여가면서 고유한 점화의 미학이 탄생한 것이다. 그의 종이 드로잉은 사료적 가치와 함께 그 자체로도 완성도가 높다. 어쩌다 한 번 미술시장에 나오면 수천만 원에서 억대를 호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1968년 뉴욕 타임스는 지질(紙質)이 오늘보다 훨씬 좋았다. 하도 종이가 좋아서 신문지에 유채를 시도한 김환기는 종이가 포함한 기름과 유채가 혼합되어 빛깔에 윤기가 돌고 꼭 다듬이질한 것과도 같은 텍스추어가 나오는 것이 재미난다면서 한동안 종이에 유채 작업에 몰두했다.”

 부인 김향안(1916~2004) 씨의 회고다. 김 씨의 본명은 변동림. 스물일곱 한창 나이에 요절한 시인 이상(1910~1937)의 최후를 지켰고, 후에 김환기와 재혼하면서 이름을 바꿨다. 채워지지 않는 예술혼에 목말라 오래 이 땅을 떠나 살았던 수화의 예술적 뮤즈로, 수화 사후엔 환기재단을 설립해 남편의 화업을 기린 조력자다. 수화의 그림에 문학적 향기가 그윽했던 배경엔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영문과를 중퇴한 문학도 김향안이 있었다.

가까이 들여다봐야 더 잘 보인다. 수화의 종이작업 바탕엔 ‘Salesman’ ‘IBM SUPERVISOR’ 따위가 인쇄돼 있다. 화가는 신문지 중에서도 이미지가 없고 활자가 균일한 구인구직란을 애용한 듯하다. 환기만의 독특한 파란 색조가 청신한 가운데 해·달·별을 연상케 하는, 너른 우주 안의 단독자 같은 외롭고 차가운 느낌의 추상화다. 김환기는 이렇게 신문지에 우리 산을, 해와 달을 그렸고, 이어 대형 캔버스에 수 천 수 만 개의 점을 찍었다. 한 점 한 점 번지며 수묵화의 느낌을 낸 이 점은 저 우주에 촘촘히 박힌 별이기도, 너와 내가 만나 이룬 인연이기도, 고국의 그리운 산하와 친구들 이기도 했다.

– 출처 : 수차와원자로 2013년 8월호 (글_ 권근영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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