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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에세이| 아날로그 미술관, 한솔뮤지엄

  • 201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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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터가든으로 이어지는 본관 옆면의 석양. 알렉산더 리버만의 붉은 조형물 ‘아치웨이’(1997)가 본관의 일주문 역할을 한다.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강원도에 명물 미술관이 생겼다.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 리조트에 5월 16일 개관한 한솔뮤지엄이다. 안도 다다오의 설계,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의 작품 설치로 화제를 모으고 있지만 실상은 자신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고, 방문객의 눈과 마음을 쉬게 하는 힐링 뮤지엄이다.

오후 7시 30분, 강원도에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돔형 건물의 둥근 천창(天窓)으로 사위어가는 저녁 하늘이 보였다. 500×400㎝의 타원창은 시시각각 변하는 LED 조명이 비치는 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조명색에 따라 하늘색도 달리 보였다. 적보라색 배경에선 청록빛이 도드라졌고, 흰 조명 바깥의 하늘은 적갈색이었다. 보색대비가 만드는 착시효과다. 어두워가는 하늘이 다양한 색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어둠 속 색의 퍼레이드는 45분 뒤 갑작스러운 암전(暗轉)과 끝났다. 한 순간에 지는 해, 그 찰나의 속절없음 속에 우리의 오늘이,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 또 이렇게 간다.

자연과 예술, 그리고 보는 이의 눈이 만들어내는 이 합작품은 제임스 터렐의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 비행사 출신의 터렐은 지각심리학과 미술을 전공했다. 무한공간과 빛, 인간의 시각이 이루는 효과를 통해 명상공간을 체험케 하는 작품을 빚어왔다. 6월 21일부터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도 연다. 한솔뮤지엄은 터렐의 작품 4점만을 위한 별도의 건물을 마련했다. 사각형을 통해 하늘을 보게 만든 ‘호라이즌(Horizon)’, 빛의 산란을 이용해 깊이를 알 수 없는 안개 속을 걷는 듯한 ‘겐즈필드(Ganzfeld)’와 ‘웨지워크(Wedgework)’ 등 이 미술관의 명물이다.

미술관은 산악자전거장으로 활용되던 해발 250m 산꼭대기에 2005년 착공,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8년간 공사가 진행됐다. 7만 1172㎡(약 2만1500평) 부지에 5445㎡(약 1600평)의 전시 공간. 규모로는 국내 최대이지만, 땅에 엎드린 야트막한 건물은 스스로 몸을 낮춘 듯 편안하고 정겹다. 공업고등학교 졸업 학력의 독학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자연지형과 건물을 통합시키는 게 장기다. 그 장기는 이 미술관에서 진면목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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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랭이꽃 80만 포기와 자작나무 380그루의 ‘플라워 가든’을 지나 서산 해미석이 깔린 연못에 800t의 물이 흐르는 ‘워터 가든’, 원주 귀래석을 신라 고문을 닮은 완만한 곡석으로 쌓은 ‘스톤 가든’을 지나다 보면 걷는 거리만 2.3㎞, 두 시간이 훌쩍 지난다. 그 중간 중간 전시장이 있고, 알베르토 자코메티, 헨리 무어, 마크 디 수베로 등의 야외 조형물이 무심히 놓여 있다. 파주석으로 마감한 외벽은 성벽을 연상시킨다. 정원과 오솔길 사이사이 숨었다 나타나는 미술관은 느림과 쉼표의 미학으로 완성된 공간이다. 중정과 긴 복도로 이어진 실내는 걸으면서 사유할 것을 권한다.

미술관 내 전시공간은 페이퍼 갤러리와 청조 갤러리 둘로 나뉘어 있다. 고려 ‘초조대장경’의 하나인 ‘대방광불화엄경주본(大方廣佛華嚴經周本) 권36’(국보 제277호)을 비롯한 종이 유물과 인쇄 문화를 전시한 페이퍼 갤러리는 제지회사 한솔의 자존심이다. 청조갤러리엔 한솔그룹 이인희 고문이 평생 모은 한국 근현대 미술품 100여점이 전시돼 있다. 한솔문화재단에 순차적으로 기증될 예정이다. 내년 2월 28일까지 열리는 개관전 ‘진실의 순간’에는 이쾌대의 ‘군상Ⅱ’, 권진규의 ‘지원의 얼굴’, 김환기ㆍ박수근ㆍ이중섭ㆍ장욱진ㆍ오지호ㆍ최영림 등 그간 미술 교과서에 ‘개인소장’으로 표시됐던 다수의 작품들이 나왔다. 높이 5.2m에 달하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커뮤니케이션 타워’ 한 점만을 위한 별도의 전시장도 마련됐다.

한솔뮤지엄은 제임스 터렐과 안도 다다오를 내세운 자연 속 미술관이라는 점에서 일본 나오시마(直島)의 지추(地中)미술관에 비견된다. 구리제련소의 공해와 산업폐기물 때문에 ‘쓰레기섬’으로 불리던 이 작은 섬은 전원형 미술관 덕에 한해 35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문화명소가 됐다. 오광수 관장은 “도시를 벗어나 쉼표를 찍는 공간, 자연과 인간, 예술이 어우러진 휴식과 명상, 치유의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출처 : 수차와원자로 2013년 6월호 (글_ 권근영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사진_ 한솔뮤지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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