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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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멋, 바람을 가르다

  • 201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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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라, 오라는 데는 많아도 막상 길을 잡아 떠나려면 주저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마다 예쁘고 즐겁고 산뜻한 무언가를 자랑하고 있으니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겠다. 그럴 땐 경주가 좋다. 아주 오랫동안 그곳은 봄을 위한 도시였으니까.

수학여행지가 아닐 때 더욱 아름다운 경주

대한민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 중 경주에 가본 사람은 적어도 전체 학생 중 3분의 1이 넘을 것이다. 워낙 많은 유물들이 그야말로 발에 채일 듯 많은 곳이기에 경주만큼 수학(修學)이라는 뜻에 잘 어울리는 곳도 흔치 않은 데다 불국사와 석굴암,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 석탑 등을 제외하면 모두 멀지 않은 곳에 모여 있기에 이동 역시 용이하다.

게다가 탁 트인 개활지다 보니 인솔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뿐 아니라 옆길로 새려는 아이들을 감시하는 데도 경주보다 좋은 곳은 없다. 그러니, 한 번이라도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찾았던 아이들이라면 대부분 누군가를 쫓아다니고 일방적인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고 버스에 탑승하는 것 말고는 뚜렷한 기억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어쩌면 경주는 바로 그런 이유로 20, 30대에게 가장 ‘핫 한’ 여행지로 각광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경주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곳인지, 누군가의 결정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체험하기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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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랑 자전거 타고 돌자, 경주 한 바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몇몇 장소를 제외하면 경주의 유명 유적과 유물들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기에 하루 정도의 시간으로 돌아보는 게 가능하다. 다만, 스쿠터 혹은 자전거를 이용하게 되면 훨씬 더 용이한데, 경주의 초입인 버스터미널 맞은편에 많은 수의 대여점이 있으니 마음에 드는 곳을 이용하는 게 좋다. 스쿠터 혹은 자전거를 빌렸다면 이제는 방향을 잡는 게 중요한데, 가장 먼 곳에서부터 안쪽으로 되돌아 나오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 그리고 분황사는 경주의 시내 유적지 중 가장 동쪽에 있기에 첫 목적지로 삼는 데에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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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의 오래된 단청/분황사에 찾아온 봄]

원효대사가 머물던, 그리고 그의 열반 후 아들 설총이 소상(塑像 : 찰흙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죽을 때까지 공경하던 분황사는 634년에 건립된 오래된 사찰이다.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는 황룡사와 마주보고 있었을 이 아담한 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검은 벽돌로 쌓아 올린 모전석탑. 현재 남아 있는 것은 3층이지만 원래는 7층 혹은 9층이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비록 많은 외침과 전쟁으로 인해 깨어지고 부수어진 곳이 많아 웅장함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셀 수도 없이 많은 보물들이 있었던 곳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면 어딘지 모르게 포근한 느낌이 드는 곳이기도 하다. 온통 유채꽃밭으로 변한 황룡사지는 기분 좋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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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의 옛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동궁과 월지에는 여전한 설레임이 있다]

안압지라 불리던, 그리고 지금은 경주 동궁과 월지라 불리는 곳은 분황사와 5분 남짓 거리. 이곳 역시 분황사와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훼손이 있었는데, 특히 일제시대 당시 철도가 놓이며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월지(달이 비치는 연못. 안압지로 불렸다.)를 준설하는 과정에서 많은 수의 유물을 발굴했는데, 그 수가 많아 경주국립박물관에는 ‘안압지관’을 따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을 정도다.

이곳은 특히 벚꽃이 만개했을 때와 단풍이 물들었을 때가 가장 아름답지만 계절에 상관없이 그 화려함을 즐기길 원한다면 해가 진 뒤에 입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원래 왕실의 별궁이자 귀한 손님을 맞이하거나 나라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한 연회장으로도 사용하던 곳이라 조명을 받아 어둠 속에서 빛나는 모습은 그 어느 곳보다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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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져 있던 담장을 헐어버리자 훨씬 더 신비롭게 보이는 첨성대]

아름다움과 우아한 자태라면 첨성대 역시 뒤지지 않는다. 네모반듯한 돌을 쌓아 올려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모습은 유려한 곡선 그 자체이다. 하지만 이 첨성대의 용도가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별을 관측하기 위한 천문시설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긴 하지만 삼국유사에만 첨성대의 이름이 등장할 뿐 삼국사기에는 어디에도 첨성대에 관한 언급이 없을뿐더러 사람이 드나들고 오르내리기에는 그 구조가 매우 불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작 10m 더 높은 곳에 올라 별을 관측한다 해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역시 첨성대를 천문시설로만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2014년부터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되었으니 몇 번이고 돌아보며 첨성대의 쓰임을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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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총입구. 출토된 진품은 모두 박물관에서만 만날수 있다]

모호함에 관한 것이라면 천마총,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었던 천마도 역시 만만치 않다. 물론 이 의견에 반대할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무덤 속에서 발견된, 하늘을 날아다니는 말을 그린 벽화라는 사실은 이미 모두 알고 있지 않느냐는 말을 하며. 하지만 아쉽게도,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은 말이 아닐지도 모를 뿐 아니라 천마도는 벽화가 아니라 말다래(말을 탄 사람의 발에 흙이 튀지 않게 안장 양옆으로 길게 늘어뜨린 마구)에 그려진 것이다.

지난 2009년 천마도를 적외선 촬영해보니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뿔이 갈기 속에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상상 속의 동물 기린(아프리카의 그것이 아니다)의 그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천마도는 말다래 위에 덧댄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졌는데, 그 긴 시간동안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일이라 하니 천마총 안에 과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궁금하기만 할 따름이다.다만 그 비밀의 공간을 채우고 있던 유물들은 모두 이동해 있으니 자세한 관람은 박물관에서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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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학 설치 이후 경주 향교는 1300년 동안 교육기관으로 운영되어 왔다]

반면 경주 향교는 그 목적이 명확한 곳이다. 언제 창건되었는지 정확한 연대를 알 수는 없지만 신라 신문왕이 682년 국학(國學 : 신라 최고의 교육기관)을 설치했고 고려, 조선을 거치는 동안에도 지방교육기관으로써의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무려 약 1400년 동안 배움이 끊이질 않던 장소라는 뜻. 물론 소실되고 중건, 보수를 거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기에 우리가 보는 모습이 예전의 그것과 같을 것이라는 상상은 무리가 따른다. 향교의 가장 뒤편에 위치한 명륜당은 양쪽으로 서재와 동재를 거느리고 있고 전면의 담장너머에는 대성전이 역시 양쪽으로 서무와 동무를 아우르고 있는데, 이는 앞쪽에 제향 공간을, 뒤쪽에 강학 공간을 두는 전형적인 향교의 배치 그대로다. 이곳에서는 향교 스테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하니 관심이 있다면 직접 문의를 해보자.
(경주향교 : 054-775-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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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릉으로 향하는 문에 들어서면 고즈넉한 분위기에 빠져들게 된다/신라시대 조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무녕왕릉비]

시내의 거의 정남쪽에 위치한 오릉(五陵)은 말 그대로 다섯 개의 무덤이라는 뜻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박혁거세 이후 남해, 유리, 파사로 이어지는 다섯 명의 왕과 박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왕이 함께 묻혔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조금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박혁거세가 왕위에 앉은 지 62년 만에 승천했다가 일주일 후 몸이 다섯 부분으로 흩어져 떨어지자 사람들이 이를 수습해 장사를 지내려 했지만 커다란 뱀이 방해를 해 결국 나뉜 몸을 다섯 개의 무덤에 따로 장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두 이야기 모두 사실 여부를 명확하게 밝혀낼 수는 없지만 이 역시 경주가 아주 오랫동안 품어온 오래된 이야기들이니 넉넉한 동산처럼 생긴 오릉 곁을 걸으며 한 번씩 떠올려 보면 걷는 재미가 더해질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무열왕이 잠들어 있는 무열왕릉에도 4기의 옛 무덤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왕과 같은 공간에 묻혀 있으니 왕 혹은 왕족으로 추측을 하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주인을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왕릉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무녕왕릉비는, 그저 흔히 보는 비석과는 전혀 다른 수준을 자랑하고 있으니 꼭 한 번 찬찬히 둘러보도록 하자.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무녕왕릉비는 귀부(龜趺 : 거북모양의 받침) 위에 이수(螭首 : 뿔이 없는 용을 새겨넣은 장식)를 올리고 그 위에 비신(碑身 : 비석의 몸체) 얹는 형태로 제작되었는데(현재 비신은 사라졌다) 이 형태는 이후 하나의 양식으로 굳어져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거북과 이수의 모습을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신라인들의 기술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제 경주에서의 하루가 지났다. 가장 유명한 곳만 골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벌써 이만큼이나 시간이 지났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경주는 아직 보여줄 것이 한참이나 남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걱정은 하지 말자. 지난 천 년을 그러했듯, 경주는 그 모습 그대로 바로 당신의 발길을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tip. 경주버스터미널 주변 스쿠터 대여법

스쿠터는 자차운전면허증(1, 2종, 오토 포함)만 있으면 125cc 미만의 스쿠터를 운전할 수 있고 대여 방법은 렌터카와 동일하다. 면허증을 제시해 운전경력 등을 확인받고 스쿠터를 선택하면 된다. 다만 스쿠터를 한 번도 몰아본 적이 없다면 얼마간의 연습이 필요한데, 팔의 힘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성의 경우 자신의 근력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경주버스터미널 근처의 스쿠터 대여요금은 모두 동일하니 마음에 드는 기종을 준비해놓은 곳을 선택하면 된다. 다만 시내권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불국사와 감은사지석탑, 문무대왕릉 등 멀리 떨어진 곳에 가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으니 스쿠터 이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스쿠터 대여점의 조언이다.

place. 이병민 팀장이 경주에 뿌린 꽃씨

경주를 여행하다가 월성원자력 홍보관에 들른다면 남문 주변을 노랗게 물들인 유채꽃밭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한울원자력본부로 근무지를 옮긴 이병민 팀장이 월성원자력본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씨앗을 뿌려 가꾼 유채꽃밭이다.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땅이었지만 지금은 많은 이의 눈을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전경을 선사하고 있다.

 

– 원본글보기 : 수차와원자로 2015년 4월호

 

* 2006년 한수원 본사가 방폐장 유치지역인 경주로 이전 결정되어, 2010년 법인주소를 경주로 이전하였으며, 현재 본사의 많은 직원들이 경주에 근무 하고 있습니다. 한수원 서울사무소는 2015년 말~2016년 초 사옥준공을 기점으로 경주로 이전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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