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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만들어진다? 놀랍고도 신기한 사람의 ‘기억’

  • 201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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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

 

어렸을 때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오늘날 먹지 못하다가 우연히 같은 맛이 나는 음식을 먹었을 때 우리는 추억에 잠기고는 합니다.

TV에서 나오는 음식점에서는 ‘어린 시절 먹은 000맛’, ‘어머니의 손맛’ 등 보고 있는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어 생각하고 공감할 수 있는 표현들을 사용합니다.

프랑스의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주인공은 홍차에 마들렌을 찍어 먹고는 그 맛을 통해서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에 먹던 홍차와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처럼 완전히 잊고 있었던 기억이 문득 혹은 사소한 계기로 인해 떠오르는 일이 있습니다.

그 기억은 마치 방금 전에 일어났던 것처럼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생했던 그 기억은 믿을 만한 기억인 걸까요?

 

원격연상검사

 

◆ 기억은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많은 사실을 기억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모두 사실과는 조금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약속시간에 늦은 당신에게 친구가 “약속 시간에 왜 늦었느냐?”고 물었을 때 섭섭함을 느꼈다면 차후에 이 상황을 다시 기억했을 때 친구가 그때 나를 비난했다는 것을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을 때 더욱 잘 나타납니다.

가령 어두운 골목에서 가벼운 교통사고가 났을 때 다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고에 대한 당자사들 간의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친구와 다툴 때도 가끔 상대방의 주장에 대하여 “내가 언제 그랬느냐”하면서 반박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기억은 추억을 할 때뿐만 아니라, 심부름이나 과제를 할 때나 시험을 칠 때에도 중요하고, 그리고 법정에서는 증인의 기억(즉, 증언)에 근거해서 판결이 내려지기도 하는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상당히 정확하다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어 “본 대로 들은 대로”라면서 마치 사진기나 녹음기처럼 기억할 수 있을 것으로 말하곤 합니다.

여러분은 ‘가죽’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가죽’과 ‘신상’이라는 말에는 어떤 단어가 연상되시나요?
‘가죽’과 ‘신상’그리고 ‘높은 굽’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두 번째 물음에서 구두 또는 하이힐이 연상되셨을 겁니다.

이처럼 연상어를 주고, 핵심이 되는 단어를 생각해 내는 과제를 원격 연상검사(remote association test)라고 하는데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점화(priming)가 있다.

이것은 생각들이 다른 생각들과 연합되어 있어서, 그중 하나가 자극되어 흥분하게 되면 그 흥분이 퍼져서 다른 연합된 생각들을 자극해 흥분시키는 작용을 이야기합니다.

가죽, 신상, 높은 굽이란 단어는 각각 혼자서는 ‘구두’ 또는 ‘하이힐’을 생각나게 할 만큼 강한 점화 효과를 가지지 못했지만 그러나 세 단어가 동시에 주어지면, 이들의 점화가 집중되는 단어인 ‘구두’ 또는 ‘하이힐’은 머릿속에서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하지 않은 말이라도 특정 단어를 통해서 우리들의 기억에 마치 실제로 했던 말처럼 기억에 남는 등 잘못된 기억을 만들기도 합니다.

 

라쇼몽 효과

 

◆ 인간의 기억에 주관성을 보여주는 라쇼몽 효과

인간의 기억에 주관성을 보여준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라쇼몽(羅生門)>이라는 일본 영화입니다.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1915년작〈라쇼몽(羅生門)>과 1922년작 <덤불 속(藪の中)>, 두 편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와 하시모토 시노부(橋本忍)가 공동 작업으로 두 단편 소설의 이야기를 적절히 조합해 새롭게 만든, 순수 창작물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라쇼몽 : 오사카에 있는 한 궁궐의 남문(南門)이름, 소설가 라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일본 헤이안 시대, 헤이안쿄 지방(지금의 교토 지방)의 폐허가 된 라쇼몽에서, 폭우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세 남자가 대화를 합니다.

세 남자 중 한 사람은 나무꾼으로서 사흘 전에 산 속으로 나무를 하러갔다가 한 사무라이의 시체를 발견한 뒤 관청에 신고를 한 바 있고, 세 남자 중 다른 한 사람은 스님으로서 역시 같은 날에 그 사무라이와 그의 아내가 지나가는 것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세 남자 중 또 다른 한 사람은 두 명의 목격자로부터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됩니다.

때는 이날 오전으로 넘어가. 관청에서 이들이 차례대로 진술을 한다. 사무라이를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된 어느 한 산적(도적)과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던 사무라이의 아내도 진술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진술 내용이 모두 제각각이고 결국에는 무당을 통해 죽은 사무라이의 영혼을 불러와 그의 진술도 듣게 되지만 역시 진술이 일지 하지 않으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에서는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각 인물마다 왜 진술이 모두 다른지 그 이유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진행이 됩니다.

진실은 하나일지라도 얼마든지 사람마다 그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해석하는 데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세상의 원리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특히 사람의 이기심이 진실을 왜곡하게 만든다고 표현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라쇼몽 영화에서 보여준 입체적인 플래시백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여러 가지의 시각으로 재현하는 연출 방식은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여기에서 파생된 라쇼몽 효과’는 철학, 해석학, 심리학 등의 학문에서도 종종 사용되는데, 기억의 주관성에 관한 이론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라쇼몽 효과에 따르면 동일한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이 서로 엇갈리지만 그 각각의 진술이 모두 개연성을 갖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사건에 연루된 네 사람의 진술은 서로 엇갈리나, 그 모두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네 가지 진술들을 모두 듣고 나면 개연성은 있지만 합쳐놓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네 사람의 진술 중에는 논리적으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는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주관적일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잘못된 기억 즉, 오기억은 나쁘기만 할까요?

인간의 불완전한 어쩌면 오류투성이라고 할 수 있는 기억과 비교하면, 입력한 그대로 저장하는 컴퓨터의 메모리는 우수한 기억 장치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컴퓨터 메모리는 아직까지 인간 기억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 기억은 구성적인 특성을 가지는데, 즉 인간은 주어진 것 그 너머에 대한 생각(혹은 가설)을 만들고, 실상을 추리하거나 상상하는데, 이러한 것 또한 기억 왜곡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기억의 구성 과정은 인간의 기억이 변화 중에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돌발 상황에도 임기 응변할 수 있고 또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억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점은 과거의 어려웠던 일들은 오늘날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중 한 장면으로 미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잘못된 기억은 과거가 자연스럽게 미화되도록 하는 초점을 흐리는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오기억과 망각이 없다면 불행한 과거의 기억을 지울 수 없게 되겠지요.
어쩌면 완벽하지 않은 기억은 우리에게 축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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