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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사탐험]노구찌는 왜 수력발전에 관심을 가졌을까?

  • 201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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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강수계 개발 히스토리

노구찌는 왜 수력 발전에 관심을 가졌을까?

우리나라 초기 전력사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노구찌 시다가우(野口遵)를 꼽을 수 있다. 그는 구주(현 규슈지방) 출신의 신흥 재벌로, 이탈리아에서 최신식 기계를 들여다 구주에서 비료공장을 경영하던 인물이었다. 옛 반도호텔(현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의 소유주이기도 했던 그가 무슨 연유로 우리나라 대수계 전원 개발에 참여했을까.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본격적인 ‘남농북공(南農北工)’ 정책을 실행함에 따라 북쪽은 대수계 전원개발과 전기화학공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조선총독부는 수력조사를 통해 해방 때까지 약 310만kW의 수력발전을 개발하거나 개발 중이었는데 이 가운데 약 77퍼센트에 해당하는 240만kW가 압록강 수계의 7개 댐이 차지한다.
압록강 수계에서 가장 먼저 개발에 착수한 발전소는 부전강수력이다. 이 발전소는 압록강지류의 장진강 수계 지천인 부전강 상류 고원지대에 댐을 조성해 24km의 터널을 뚫고 압록강 물을 동해안 함흥 부근의 송흥으로 흘러 보내는 과정에서 발전소 4개를 건설, 총 20만800kW의 발전설비를 갖췄다. 이처럼 엄청난 대역사는 일본인 자본가 노구찌 시다가우(野口遵, 1873~1944년)에 의해 이뤄졌고, 이곳에서 생산된 전력은 대부분 흥남질소비료공장 등 노구찌 계열 공장으로 송전됐다.

1.부전강발전소 건설현장
[1. 우리나라 최초의 유역변경식 발전소인 부전강발전소의 건설현장/2. 부전강 발전소의 완공된 모습]

우리나라 최초의 유역변경식 대수계 발전소

부전강수력은 우리나라 최초의 유역변경식 발전소다. 이 발전소는 일본이 한반도에서 수력조사를 실시한 것과 달리 민간자본으로 대규모 수력자원을 개발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편 동경대 전기공학과 출신 모리타 카즈오카(森田一雄)는 한반도의 지형을 꿰뚫고 있었다. 그에게는 일본에서 갓 출간된 5만분의 1 한반도 지도가 있었는데, 지도를 정밀 분석했다. 산악지대가 동해 쪽으로 급경사를 이루며, 하천은 대부분 북서쪽으로 흘러 서해로 들어가는데 그 상류의 일정 지점에 제방을 축조하고 저수지를 조성한 뒤 서해로 들어가는 물을 동해로 보낸다면 큰 낙차로 풍부한 전력을 얻을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그는 그 상류 지점을 압록강 지류 부전강과 장진강으로 점찍었다.
모리타는 동경대 후배인 토목기술자 쿠보다(久保田)와 현지답사를 마쳤다. 그리고 16만kW는 족히 얻을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고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질소비료(주) 사장 노구찌 시다가우(野口遵, 1873~1944년)를 만나 사업을 제안했다.
모리타와 노구찌는 동경대 전기공학과 동기생. 노구찌는 마침 800kW급 수력발전으로 카바이드 제조공장을 운영하면서 일본질소비료(주)를 설립해 석회질소를 제조하면서 인조 견직(絹織), 합성 유안(硫安) 등 전기 화학공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중이었다. 사업가인 노구찌는 전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터라 모리타로부터 16만kW의 전력개발 제안을 받자마자 즉시 한국 진출을 결심했다.
모리타와 함께 한국으로 건너온 노구찌는 현장부터 답사하고 부전강수력개발사업의 개발권을 취득했다. 이때가 1925년 6월의 일이며, 이듬해인 1926년 1월 27일 그가 일본에서 경영하는 일본질소비료(주)의 단독출자로 자본금 2000만 엔의 조선수력전기(주)를 설립하고 자신을 초대 사장에 추대했다. 사업개발을 계획하고 제안했던 대학동창 모리타는 전무로 선임했다.

4.흥남질소비료공장

[3. 노구찌의 흥남질소비료공장/ 4. 부전강발전소를 건설한 노구찌 시다가우]

총독부 통제 피해 질소비료(주) 자가용 설비로 전환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27년 5월 2일, 노구찌는 조선질소비료(주)를 설립하고 부전강발전소 전력으로 가동하게 될 유안공장 건설을 발전소 건설과 병행했다. 이 유안공장은 연간 45만 톤 규모를 생산할 대단위 공장이었다. 비료공장은 예정대로 1928년 제1기 공사를 완료했다. 그러나 수력발전소 건설은 화재와 홍수 등 재해가 겹치는 바람에 1년간 지연되어 1929년 11월에 겨우 제1발전소 발전기 4대 중 2대분 4만8000kW가 시험운전에 들어갔다.
노구찌는 이때 조선수력전기(주)를 조선질소비료(주)에 합병시켜 조선질소비료(주)를 자본금 3000만 엔의 대형회사로 단일화시켰으며, 이어서 1931년 10월 20일에는 자본금을 두 배로 증액해 자본금 6천만 엔의 초대형회사로 확장시키게 된다.

이같이 한국 최초의 대규모 수력발전시설인 조선수력전기는 노구찌의 발빠른 조치로 총독부가 전기통제정책을 펴기도 전에 이미 조선 질소비료를 위한 자가용 전력시설로 흡수되어 발전회사로서의 독립된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부전강수계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던 조선수력전기(주)가 1926년 2월 그 거창한 공사를 착공한 이래 제1발전소 일부 공사가 끝남과 더불어 소멸했다. 부전강수계 개발의 나머지 공사는 조선질소비료(주)에 의해 계속 이어진 셈이었으며, 1932년 12월 전체공사 완료시의 발전출력은 애당초 모리타가 계획했던 16만kW보다 더 큰 4개발전소 도합 20만800kW에 연간발전량은 12억kWh나 되었다.

 

원본 : 수차와원자로 2015년 4월호 

 

송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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