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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파도소리길을 걷다

  • 201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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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경주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깜빡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 호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워낙 많은 보물들이 시내권역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주에도 푸른 바다가 있다.
아주 오래된 검은 기둥을 품고 있는 바다가 말이다.

꽃처럼 그림이 피어있는 마을로부터

경주 시내에서 출발해 불국사를 지나 계속 동해 쪽으로 방향을 잡아 달리다 보면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만나게 되고 이를 지나쳐 수평선이 보이는 곳까지 다다르게 되면 그곳이 바로 문무대왕릉이다. 문무대왕릉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삼국통일을 완수한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수중릉 으로 죽은 후에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시신을 화장한 후 그것을 동해바다의 대왕암에 묻도록 유언을 남긴 전설이 어려 있다. 이와 관련된 만파식적 설화와 이견대 설화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검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해변에 여전히 살아있지만, 만나기로 한 대상은 아직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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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도 해녀가 있다. 아니, 바다가 있는 곳에는 어디는 해녀가 있다. 바다에서의 삶이 더 고달픈 이유이기도 하다.]

문무대왕릉에서 십여 분 여유롭게 차를 달리면 도착하게 되는 읍천마을은,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어촌 마을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다. 나지막한 집들, 이곳저곳에 쌓아둔 어구들, 정박해 있는 한가로운 배들. 하지만 마을 속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인상이 금세 바뀔 수밖에 없다. 집마다 다른 모습의 벽화들이 무심코 지나려는 외지인의 시선을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읍천마을에 꽃이 피듯 그림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원전(월성원자력본부)이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마을의 이미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니 주민들 외에는 이 작고 한적한 마을을 오가는 사람을 만날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월성원자력본부가 ‘아름다운 지역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읍천마을에 손을 내밀었다. 전국 규모의 공모를 통해 벽화 그리기 대회를 개최하기로 한 것. 처음엔 마을 주민들도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과연 담장이나 외벽에 그림을 그려놓는다고 사람이 찾아오기나 할 것인지 의문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큰 바람에 파도가 밀려오듯 사람들이 읍천마을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SONY DSC[ 서양의 이미지를 담은 그림이지만 그래도 읍천항과 어울린다./벽화에 그려진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주말이면 읍천항 일대에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든다.]

인근의 대구, 포항, 부산 등지에서 오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저 멀리 수도권에서부터 출발한 성실한 여행자들도 적지 않았는데, 많은 수가 가족 단위였다. 평균연령이 높을 수밖에 없는 바닷가 마을에서 이제 주말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를 듣는 게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바다의 검은 기둥, 주상절리

「마그마나 용암이 고결할 때에는 수축이 일어나므로 그 중에 틈이 생기게 된다. 신선한 암석에서는 이들 틈이 잘 보이지 않으나 풍화를 받으면 틈에 따라 풍화가 먼저 진행되므로 오랜 시일이 지나면 굵은 틈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틈을 절리라고 한다.」
절리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위와 같다. 그리고 주상절리는 이와 같은 절리가 기둥모양(柱狀)으로 형성된 것을 이른다. 화산암의 암맥이나 용암, 용결 응회암 등에서 생기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화산섬인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경주에도 바로 이 주상절리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읍천마을에서부터 시작되는 파도소리길을 따라가는 동안 말이다. 읍천마을에서 바다와 마주봤을 때, 오른편에서 시작되는 포장된 길을 밟아나가기 시작하면 중간중간 작은 오솔길을 지나기도 하고 멋진 카페를 만나기도 한다. 의외의 흔들다리도 나오는데, 출렁거리는 맛이 제법 걷는 재미를 준다. 그리고 그 흔들림이 무서워 중간에 걷는 것을 멈추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도 적잖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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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있는 주상절리.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힘든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곳이 2012년 5월까지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군사시설 등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2년 주상절리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 누구나 오갈 수 있게 되자 월성원자력본부가 다시 한 번 아이디어를 냈다. 바다를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그리고 주상절리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지금의 파도소리길을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읍천마을과 이 파도소리길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 평일에는 2000여 명, 주말에는 1만여 명이 찾는 전국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파도를 따라 걷는 길

파도소리길은 읍천마을부터 하서마을까지 이어져 있는데 총 연장은 1.7킬로미터. 가볍게 산책하기에 더 없이 좋다. 게다가 포장이 잘 되어 있는 데다 중간중간 벤치가 설치되어 있어 하릴 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기도 좋다. 길을 걷는 방법이 따로 있지 않다. 누구보다 빨리 왕복 기록을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닌 이상 걷고 싶을 때 걷고, 앉고 싶을 때 앉으면 되는 일. 하지만 이곳의 주상절리만큼은 꼭 자세히 보아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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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소리길 중간중간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걷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

보통의 주상절리가 수직 혹은 수직으로부터 조금 기울어진 모습을 보이는 반면, 약 2000만 년 전에 형성된 경주의 주상절리는 수평방향으로 발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부채꼴 형태도 발견되고 있다. 물론 일반적인 형태의 주상절리도 관찰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경주의 주상절리는 한층 더 각별하다. 서로 다른 모습의 주상절리가 한 곳에 모여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주상절리는 심미적 가치 뿐 아니라 동해안 형성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는 게 학계의 설명. 물론 가벼운 마음으로 바닷가를 걸어가는 이들에게는 흔히 만날 수 없는 희귀한 볼거리로 보이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하겠지만, 조금만 더 깊이 바라보면 그 안에 응축된 뜨거운 시간이 초여름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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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원자력본부에서 제작한 출렁다리는 파도소리길의 최고 명물이 되었다./수평선을 바라보며 차 한잔을 즐길 수 있는 것도 파도소리길만의 자랑 중 하나]  
이와 같은 주상절리들은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면 그저 검은 돌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급하게 길의 끝에 이르겠다는 사람에게는, 형태가 특이할 뿐 어차피 그저 바다의 검은 돌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파도소리길에서는 그런 빠른 걸음이 필요 없다. 경주의 그 어떤 유적보다 오래된 바다처럼 그저 천천히, 시간이 지나지 않는 것처럼 머물면 되는 일. 그것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긴 시간 동안 우리를 기다려온 바다에, 그리고 검은 돌에 대한 답례가 될 테니까.

읍천항가는길

tip. 부채꼴 주상절리가 있는 읍천항으로 가는 길
만약 대중교통을 이용해 경주가 품고 있는 동해 바다로 갈 계획이라면 150번 버스를 이용하자. 경주역에서 출발해 보문호를 끼고 달리다 토함산을 넘고 양북면을 지나 문무대왕릉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내려 검푸른 파도를 바라보다 조금 지루해질 무렵, 버스에서 내렸던 곳을 다시 찾아 똑같은 150번 버스를 타고 읍천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시내에서 문무대왕릉까지는 약 1시간 20분, 문무대왕릉에서 읍천항까지는 약 30분 소요된다.

 

– 글/사진 : 정환정(여행칼럼니스트)

– 원본글 : 수차와원자로 2015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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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1)

  • 최우창 2 년 전에

    줄곧 경주는 여러 문화유산이 있는 내륙지역이라 여겨왔는데 바다에 까지 범위가 있었군요 좋은 지식알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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