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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블링하고 멋진 신세계

  • 201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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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일렉트로니쿠스

 

호모 사피엔스가 문명을 일으킨지 5,000년만에 또 한번 인류 문명사가 새로운 진화의 단계로 들어섰다. 전기에너지를 근간으로 탄생한 호모 일렉트로니쿠스는 지금 이 순간도 황홀한 미래문명을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writer 김종규(성균관대학교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및 학부대학 겸임교수) editor 석보라

문명의 역사에서 도시는 결코 떼어 낼 수 없는 요소였다. 문명 이 탄생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필요하며, 도시都市 는 그 사람들이 모인다는 뜻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장소이 자 말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늘 문명의 탄생과 성장의 터전이 었으며,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지 금의 도시는 미래 문명이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인가를 상상할 수 있는 토대이며 근거다. 우리는 지금 어떤 도시에 살고 있는가?

도시를 드라마에 비유한다면, 우리가 시청하고 있는 이 드라 마의 주인공은 전기가 아닌가 싶다. 물론 전기가 처음부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전기는 한때 그저 도시의 한 편 을 밝히기 위해 사용되었던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소품은 이 드라마에서의 역할을 점점 키워갔고, 어느 순간 그 것 없이는 드라마가 전개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전기는 도시 라는 드라마의 전체 분위기를 그려가는 주인공이다. 전기는 도시의 모습을 그려나가며, 도시는 하나의 캔버스로서 순간순 간 작품으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전기의 역할이 그저 장식하는 것에만 있지는 않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며, 전기는 특히 그러하다. 화려한 색이 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이지 만, 그러한 색감이 전기의 모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기는 결코 도시의 외관을 꾸미는 수단적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전 기는 도시를 밝히기도 하며 때로 감추기도 한다. 이러한 밝힘 과 감춤 속에서 도시는 비로소 음영陰影을 갖는 입체적 형상으 로 드러난다. 이렇게 전기는 도시의 공간을 변화시키며, 시간 이 자연적으로 그어 놓은 밤과 낮의 경계를 허물어 도시의 시간 역시 변화시킨다. 전기는 도시를 장식하는 대신 도시를 디자인한다.

모호일렉트로니쿠스2

 

도시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며, 이 장소는 그 사람들 저마 다의 독특한 경험을 무늬로 새겨 간직하고 있다. 이제는 전기 가 이러한 추억의 터전을 디자인하고, 우리는 이 터전에 새겨 진 삶의 무늬를 통해 우리 자신을 확인한다. 우리의 ‘터 무늬 있는 삶’은 전기의 사용을 통해 영위되고 지속된다. 전기와 우 리 삶과의 이러한 관계를 고려하자면, 전기의 사용을 그저 소 비라는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그리 온당한 처사는 아니 다.

우리는 흔히 살기 위해 먹는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만일 산다는 것이 생존을 뜻하는 것이라면, 먹는 행위는 허기진 동 물이 먹이를 섭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배를 채우는 작용을 뜻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숙성이라는 기다림과 보살핌의 과정을 통해 ‘맛’이라는 세계를 구축해 왔던 우리의 음식 문화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생각이다. 생존과 문화의 차 이는 전기뿐 아니라 전기의 사용자로 알려진 호모 일렉트로니 쿠스에 대한 이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이제는 그리 낯선 표현으로 느껴지지는 않는 ‘호모 일렉트로 니쿠스’는 ‘전기를 소비하지 않고는 하루도 살아가기 어려운 인간’을 뜻한다. 우리의 일상이 불을 켜는 데서 시작해 불을 끄 는 데서 끝나듯, 전기의 사용과 우리의 생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에 유래한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기를 소 비해 살아간다고 할 때의 그 살아감이 곧 생존을 뜻하는 것이 라면, 전기의 사용 역시 생존을 위해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어떠한 뜻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더 엄밀하게 생각해 본다면, 전기의 사용을 생존의 조건으로 설명하는 것 호모 일렉트로니쿠스가 향유하는 전기는 단지 에너지만이 아닌 문화적 상징으로 이해해야 한다.

[포토] 에프엑스, '오랜만에 서는 무대 설레~'

 

전기의 세계는 그 자체로 블링블링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블링블링한 것은 그것의 화려한 외관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본래 문화적이기 때문이다. 이 그리 올바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전 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누구나 짐작하듯 매우 큰 불편이 동반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존 자체 는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생존 자체가 전기의 사용 여부에 근본적으로 의존하지는 않기에 그러하다.

우리가 사용 이 아닌 문화의 차원에서 음식을 보았듯, 전기를 사용의 맥락 에서 생각해온 태도를 조금만 변경한다면 우리는 전기뿐만 아 니라 호모 일렉트로니쿠스 역시도 문화적으로 이해해볼 여지 를 갖게 된다. 문화는 거울과 같다. 그 향유자들을 문화는 그 대로 비춰내기에 그러하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를 통해 남들도 우리 자신도 보며 이해한다. 이러한 봄과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것 모두를 문화적이라 부르며, 신화와 종교, 예술과 언어 그리고 역사와 학문 모두가 이러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것들 각각은 저마다의 세계를 열어 놓으며, 그 속에서 우리는 독특한 인간의 삶들을 경험한다. 이 경험 속에서 우리는 때로 신화적 인간이기도 하며, 종교적 인간이기도 하고 학문적 인간이기도 하다.

전기 역시 마찬가지다. 번개와 같은 자연의 전기가 신화의 세 계를 열어 놓은 오랜 이후, 인공의 전기는 디지털 공간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놓았다. 이 세계는 그간 현실 세계가 그어 놓았던 한계를 지워냄으로써 우리를 더 큰 현실과 자유 속에 놓아두었다. 미디어 파사드가 드러내는 공간에서 우리는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도시를 만나게 되며,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넘어 소통하고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전기가 열어 놓은 새로운 문화적 세계를 체험하고 있는 우리가 바로 호모 일렉트로니쿠스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전기의 사용자가 아니라 향유자다.

– 원본글보기 : WATT창간호

김종규

성균관대학교에서 서양철학(독일 현대철학· 문화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및 학부대학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문화철학적 고찰>, <디지털 오디세이 : 춤추는 몸과 디지털 컨버전스> 등의 논문과 <하이브리드 스펙트럼>(공저), <디지털철학>(공저) 등의 저서를 비롯한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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