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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가 있는 풍경] 겨울이라 더욱 그리워지는 길, 무주

  • 201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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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에 상고대가 피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적상산 적상호의 물안개와 무주구천동의 맑은 계곡의 물소리와 앞섬마을 벌안마을 같은 오지마을에 켜지는 따스한 저녁 불빛까지 눈앞에 아스라하다. 봄까지 잠들어 있을 반딧불이의 향연도 그리워진다.
그래서 무주는 단 한 곳의 여행지만 정해놓고 다녀오기가 쉽지 않다. 설원의 덕유산을 만끽했다면 쨍한 얼음 아래로 흐르는 겨울 계곡에서의 하루가 더 있어야 하고, 산 아래 마을에 들러 봉지커피도 얻어 마시고, 돌아올 때는 머루와인 한 병 사서 함께 가지 못했던 이들과 다정한 자리도 가져야 제 맛이다.

 

덕유산
▲ 오랜 세월 덕유산의 상징이 되어 온 정상의 주목나무

 

무언의 눈꽃으로 전하는 겨울 덕유산
겨울산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성전(聖殿)이다. 조심스럽고 은밀하며 신령스럽다. 그러나 겨울산의 가르침은 하나같이 간단하고 명료하다. 우직하되 순리에 따르며 살라는 것, 눈으로 보이지 않는 현상은 마음으로 깨달으라는 것. 그와같은 가르침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 내린 겨울산은 거대한 흰덩어리가 아니라 무언의 말씀이며 자연의 경전이다.
주산인 향적봉까지 해발 1624m, 영호남을 가르며 장장 일 백리 백두대간 줄기를 내달리는 덕유산 성전의 겨울 제례는 첫서리
내릴 때 준비하여 초설(初雪)이 내린 날부터 춘설(春雪)이 내린후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제단에 올리는 꽃은 나뭇가지마다
하얗게 피워 낸 눈꽃이고, 제단을 밝히는 불은 반짝이는 해의 등잔과 둥그렇게 번지는 달의 촛불이며, 제단을 지키는 제례자는 덕유산에 깃들어 사는 무수한 생명들이다.

덕유산

덕유산에 서리꽃, 얼음꽃, 눈꽃으로 불리는 첫 상고대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이미 본 사람은 천년 주목나무와 구상나무가 그리워 환장하고, 미처 보지 못한 사람은 만첩(萬疊)에 내린 만설(晩雪)의 황홀함이 궁금해 상상한다.
시리게 푸른 하늘 아래 눈부신 설경은 너무도 황홀하게 빛나 차마 눈을 다 뜰 수 없고, 안개와 눈구름 자욱한 회색의 설경은
수묵담채화 같아서 그림 속을 거니는 듯하며, 사방 칼바람이 불어치는 설경은 어찌나 매서운지 정신이 퍼뜩 난다.
그리하여 겨울 덕유산이 전하는 무언의 말씀은 하늘에, 눈꽃에, 칼바람에 담겨진다. 그러나 태양이 떠오르고 한낮이 되면 그 무언의 말씀은 녹아내리는 것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마치 신이 잠시 비경을 보여주었다가 다시 거둬가듯 일체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날도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덕유산 겨울 제례를 제대로 본 날을 일컬어 ‘축복받은 날’이라 한다.

 

물안개 피는 열두 폭 순백의 치맛자락 적상산
때는 고려 말, 계절은 가을날 되겠다. 최영 장군이 무주의 어느 산을 지나다 만산홍엽(滿山紅葉) 그 곱디고운 빛깔에, 열 두 폭 치맛자락처럼 휘감은 넉넉한 산세에 반하여 적상산(赤裳山)이라 이름 붙였겠다. 이후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네’가 된 적상산은 가을이 최고라 하지만, 물안개 피는 겨울 또한 비경이다.
십리 반 서른하나 굽이를 돌아 만나는 해발 850m의 적상호가 품은 물은 350톤. 전날 날이 맑고, 이튿날 새벽 기온이 급하강 하면 적상호에는 몽환의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사방 아무 것도 가늠할 수 없게 하는 순간과 설핏 주변의 풍경을 드러내는 순간이 시시각각 교차하는 풍경은 참으로 기이하여 마치 내세와 현세의 경계 같다.

물안개 피는 겨울날, 주변 산세를 한 눈에 내려다볼수 있는 전망대 일백 다섯 개의 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희뿌연 구름안개 뿐이다. 십리 반 서른하나 굽이도 구름도,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이 지난 300여 년 동안 보존되어 온 적상산사고지도, 그리고 그 보존을 위해 만들어진 절집 안국사와 적상산성도, 적상산성 서문 아래 하늘을 찌를 듯 솟아 갈라진 장도바위도, 천길 암벽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천일폭포도 구름안개에 묻혀 짐작만 될 뿐이다. 해서 물안개 피는 겨울의 적상산은 열두 폭 붉은 치맛자락이 아니라 열두 폭 구름안개 피는 순백의 치맛자락이다.

 

무주풍경-적상산
▲ 105개 적상산 전망대에 오르면 첩첩의 산중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 적상호 아침 물안개에 휩싸인 적상산성

 

길 밖의 세상으로 나온 무주구천동과 오지마을
사람들이 산을 뚫어 에둘러 가지 않게 되고, 길을 다듬거나 새롭게 내면서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과 오지마을은 길 밖의 세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 곁으로 나온 무주구천동 일부 계곡의 물소리는 자동차 소음에 묻혔으며, 환경적 조건에 의해 바깥세상과 경계를 두었던 오지마을은 매끄럽게 포장된 길로 인해 더 이상 오지라 부르기가 애매해졌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계곡을 흐르는 물은 옛 그대로 청정하며, 오지마을은 옛 그대로 인심이 후하다.
칠십 리 무주구천동이 품고 있는 절경은 서른 세 곳, 해서 ‘구천동 33경’이라 한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 기준에서 요모조모 따져 정한 것이고, 칠십 리 구간 내리 경승지 아닌 곳이 없으니 굳이 33경을 헤아려 보지 않는 것도 좋을 일이다. 설천면과 무풍면을 관통하는 자연 그대로의 석굴문나제통문(라제통문, 羅濟通門)부터 하얀 연꽃의 전설을 지닌 백련사에 이르기까지 태고의 원시림과
그 원시림 사이를 흐르는 맑은 물과 그 맑은 물이 만들어낸 소(沼), 담(潭), 폭포 등이 덕유산 향적봉까지 끊임없이 나타난다. 보기에 따라 어떤 이의 눈에는 수십 장의 또 어떤 이의 눈에는 수백장의 그림이 담긴 자연의 화첩이니 이르건대 정해진 시선이 아닌 자기만의 시선으로 보시라.

 

무주풍경-무주구천동과 오지마을
▲ 무주구천동 제1경 나제통문은 암벽을 뚫어 길을 내 설천면과 무풍면을 잇는다
▲ 키우는 개와 함께 마실 가시는 벌안마을 어르신

 

만첩산중(萬疊山中) 무주에는 아직도 오지마을들이 남아있다. 길이 좋아지고, 다니지 않았던 버스가 그 안까지 드나들지만 여전히 바깥세상 나오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홀로 거하는 어르신들이 살아온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때를 놓치지 않고 씨를 뿌리면 거두는 것은 하늘이 돕는다는 진리를, 마을을 감싸고 있는 첩첩의 산과 오래된 나무가 삶을 무탈하게 해주리라는 믿음을 놓지 않으니 늘 평안하다. 그네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람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양상이 참으로 달라지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니 저문해 즈음 만약 무주로의 여행을 계획했다면 가장 높은 덕유산에 올라 눈꽃이 전하는 자연의 경전을 읽은 후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 사람들 마을에도 가보시라.

무주풍경-앞섬마을
▲ 금강 줄기가 휘돌아나가는 앞섬마을 풍경

 

– 글 : 느린달/ 사진 : 이영균

– 출처 : 수차와원자로 12월호 http://ebook.khnp.co.kr/Viewer/B4UZ6V6SI4U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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