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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있어 언제나 그곳은 봄

  • 201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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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어지고 있다. 바람의 차가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새삼스럽고, 옮기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겨울의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나날의 풍경이다. 그럼에도 낭만적 계절, 봄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 있다. 서울에서 겨우 두 시간도 걸리지 않는 곳에 말이다. 봄내, 춘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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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거기 있는지 불러 보는 이름

춘천의 외곽. 그러니까 의암호에서 잠시 머물던 물줄기가 다시 북한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시점에 위치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박물관은, 자녀와 함께하는 길이라면 춘천으로 진입하기 전 먼저 들러볼 만한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각종 만화 캐릭터와의 반가운 조우가 자아낸 향수가 채 가시기도 전에 옛날 만화방을 재현해놓은 공간에 다다르면, 부모님 몰래 ‘삥땅’한 돈을 들고 고양이처럼 이곳저곳을 살피며 몰래 골목길에 접어들곤 했던 20~30년 전의 자신의 모습과 마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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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하는 길이라면 감회는 더더욱 새로울 수밖에 없다. 이제는 잊고 살았던 그때의 나를 발견해 지금 옆에서 손을 잡고 있는 아이에게 소개시켜준다면, 자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행동을 좀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애니메이션 박물관이 고색창연한 소품들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북한과 중국, 유럽, 남미 등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세계 각국의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짧게나마 감상할 수 있음은 물론,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는 환경을 엿볼 수 있어 세대를 뛰어넘는 흥미를 유발한다. 그뿐만 아니라 직접 애니메이션에 갖가지 음향효과를 첨가하거나 주인공이 되어볼 기회도 있으니 아이들에게는 꿈의 공장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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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서 만나는 건축가 김수근의 공간

춘천에서 어린이들과 함께할 곳은 또 한 곳 있었다. 1980년 5월 ‘춘천 어린이회관’으로 개관했다가 지난 2014년 4월 ‘상상마당’으로 그 용도가 변경된 공간이다. 원래 이곳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린이회관으로 지어진 곳. 그런데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바로 건축가 김수근이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의 도시 피렌체를 중심으로 다양하고 왕성한 활동을 했던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데 메디치에 비견된다며 <TIME> 지가 ‘서울의 로렌초’라 불렀던 그 김수근의 작품이 바로 이곳 춘천에도 자리 잡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나비처럼 보이는 이 건축물은, 나비의 양 날개에 해당하는 건물 두 동이 대칭된 형태로 서 있는데, 그 한가운데에는 야외극장이 마련되어 있어 시원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적벽돌로 치장한 건물은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기에, 이 둘의 배치는 상충되면서도 조화롭다.
현재 공연,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내부 역시 단순하면서도 호화롭다. 형용 모순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지만, 이 공간은 그런 곳이다.
간접조명으로만 둘러진 벽면은 밖과 마찬가지로 거친 적벽돌로 쌓아올렸는데, 요즘 같은 겨울에는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 게다가 1층과 2층을 잇는 것은 각이 진 계단이 아니라 긴 경사로이기 때문에 오르고 내리는 데에 대한 부담도 없다. 모두 어린이들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흐르는 강을 따라

춘천에서 되돌아 나오는 길에는 김유정문학관에 들러보자.
김유정문학관은, 그가 다음과 같이 묘사한 곳에 있다. “(전략) 산비알(산비탈의 방언)에 포근히 깔린 잔디는 제물로 침대가 된다. 그 위에 바둑이와 같이 벌릉 자빠져서 묵상하는 재미도 좋다. 여길 보아도 저길 보아도 우뚝우뚝 섰는 모조리 푸른 산이매, 잡음 하나 들리지 않는다. 이 산속에 누워 생각하자면, 비로소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요히 느끼게 된다. 머리 위로 날아드는 새들도 갖가지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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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 <동백꽃>, <금따는 콩밭>, <노다지> 등 한국 근대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을 남긴 김유정의 생가를 복원하며 조성된 이곳은, 비록 ‘새것 냄새’가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김유정 작품 속의 장면들이, 마치 삽화가 튀어나온 것처럼 동상으로 묘사되어 있어 돌아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춘천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한 곳을 고르라면, 가장 많은 표를 얻는 곳은 아마 남이섬일 것이다. 한때는 그저 한적하게 쉴 수 있는 섬이었지만 이제는 아시아계 관광객들이 단체관광으로 한국을 방문하면 꼭 한 번 찾게 되는 이곳은, 이야기가 가진 힘을 그 어느 곳보다 잘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제는 ‘입국’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남이섬은, 섬이라는 특수성을 이용해 방문객들에게 판타지를 심어주는 데에 더 없이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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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은 그리 만만찮은 1만 원이라는 입장료를 치르고 기꺼이 배에 오른다. 짧은 항해 끝에 만나게 되는 것들은, 당연히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들. 이를 테면, 길가에 피워놓은 모닥불이나 풍선 모양 전등이 매달려 있는 가로수길, 앙증맞은 크기로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파란색 기차 등이다. 당연히 비현실적이고 동화적이며 낭만적이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남이섬에 만족하고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며 또 다른 누군가를 그곳으로 이끌고 있다. 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낭만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야기에 이끌려 춘천에 도착한 이들은, 겨울에도 봄 같은 낭만을 노래하는 이 도시의 속삭임에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춘천이, 언제나 봄인 이유다.

 

-글/사진 : 정환정(여행칼럼니스트)

-원본글 : 수차와원자로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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