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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을 능가하는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

  • 201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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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형광등이나 방사선, 진공관, 레이더, 헬리콥터 등과 같은 발명품으로 우리 삶이 윤택해질 수 있었던 것은 전기와 자기학의 엄청난 발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발전이 가능케 한 데에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공로도 컸지만 그 중에서도 니콜라 테슬라의 기여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류 전기를 발명한 그는 평생 800가지가 넘는 발명품을 만들어 냈고, 25개국에서 272개의 특허를 획득한 세기의 발명가이자 과학자입니다.  니콜라 테슬라는 1856년 7월 10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작은 마을인 스밀리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직자였던 아버지는 아들도 자신의 뒤를 이어 성직자가 되길 바랐지만, 테슬라는 학교를 다닌 적이 없었음에도 가재도구나 농사도구를 직접 만들어 쓸 정도였던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아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테슬라는 모국어인 슬라브어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고, 수학에도 뛰어난 소질을 보였습니다.

두뇌가 매우 명석했던 그는 흥분할 때마다 반짝이는 빛과 같은 환상을 보곤 했다고 합니다.
테슬라는 이를 ‘때때로 강한 빛과 함께 나타나는 이미지들 때문에 겪게 되는 특이한 고통’이라고 표현했고, 그는 그 고통스러운 이미지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정신적 훈련을 했습니다. 그 결과 테슬라는 머릿속에 자신만의 특별한 상상의 세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테면 특별한 설계도나 모델, 혹은 실험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발명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그의 천재성은 이미 5살 어린 아이일 때부터 나타났습니다. 이 해에 그는 처음으로 작은 수차(水車)를 발명했고, 나이아가라 폭포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방법을 친척들에게 설명해 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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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의 천재’하면 우리는 대부분 토머스 에디슨을 떠올립니다.
아마도 그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명품을 개발한데다가 우리 삶의 변화에 변화를 가져온 여러 유익한 발명을 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에디슨은 발명품 하나를 개발하기까지 수많은 노력과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결과물을 얻었다면, 테슬라는 천부적인 재능을 이용하여 단숨에 발명품을 개발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어쩌면 ‘발명의 천재’라는 수식어는 테슬라에게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테슬라는 10살이 되던 해 중등학교인 김나지움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그는 실험장비들이 즐비한 물리학 실험시간에 유독 큰 관심을 보였을 뿐 다른 공부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1875년 중등학교를 마친 테슬라는 오스트리아 제2의 도시 그라츠에 있는 그라츠공대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그람 다이너모라는 직류기계장치(발전기와 모터 기능을 하는 기계)를 처음 접하고, 직류 대신 교류로 작동하는 장치개발에 착안합니다. 이후 테슬라는 새벽 3시부터 밤 11시까지 쉬지 않고 장치 구상에 열중했으나 그만 집안 사정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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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에 나선 테슬라는 친척의 도움으로 부다페스트 국영 전화국의 기술자로 취직합니다. 물론 교류장치 개발 구상은 그때도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1882년 친구와 함께 공원을 걷던 중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파우스트>의 한 구절을 읊조리던 테슬라는 갑자기 땅 위에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이게 내 모터야!” 하고 테슬라는 친구를 향해 외쳤습니다. 오래 전부터 구상했던 교류 모터의 작동 원리를 드디어 터득한 것입니다. 이 원리를 응용해 테슬라는 이듬해 유도전동기를 개발해냈습니다. 교류를 생산하는 유도전동기란 오늘날 우리가 쓰는 모든 발전기와 전기 기기들의 기틀이 되는 장치입니다.

그때 에디슨은 미국에서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에디슨은 미국 펄가에 있던 발전소에서 뉴욕에 있는 수백 개의 저택과 제분소, 공장, 극장 등에 전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용된 전기는 직류였습니다. 사람들은 에디슨에게 점차 더 많은 전기 설비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마침 이력서를 보내온 테슬라를 채용해 함께 일하기로 결정합니다.

에디슨의 부름을 받고 미국으로 온 테슬라는 고장 난 설비를 수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금세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테슬라는 에디슨이 만든 원시적인 발전기를 효율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 에디슨에게 발전기를 다시 만들 것을 요구했지만 직류와 교류에 대한 견해차가 너무 커서 결국 에디슨의 회사를 그만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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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의 회사를 나온 테슬라는 무일푼으로 방황하다 1885년 5월 웨스팅하우스전기회사의 사장이었던 조지 웨스팅하우스에게 자신의 교류 발전기와 변압기, 모터 체계에 대한 특허권을 팔았습니다. 테슬라가 웨스팅하우스와 교류와 관련된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자 에디슨은 즉각 이들을 방해하고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에디슨은 교류 전기를 이용해 애완동물을 잔인하게 죽이고는 그 장면들이 담긴 전단지를 배포했습니다.
또 웨스팅하우스가 소유한 특허들에 대해 소송을 거는 등 테슬라의 교류시스템을 세상에서 없애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웨스팅하우스는 이에 맞서 연설이나 기사를 통해 교류에 대한 교육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치졸하기까지 한 에디슨과의 전류전쟁은 결국 효율과 성능이 뛰어난 테슬라의 교류 발전시스템의 승리로 돌아갔고, 비효율적인 에디슨의 직류 발전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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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 발전의 승리로 명성을 얻은 테슬라는 웨스팅하우스의 도움으로 연구소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창조력을 마음껏 발휘했습니다. 이 당시 테슬라는 무선 통신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1898년 휴스턴에 있는 실험실에서 약 40km 떨어진 배에 무선 수신장치를 달고 배가 허드슨 강을 거슬러 오르게 하는 실험에 성공했고, 그해에 무선 원격조종 장치에 관한 특허를 제출했습니다.

또 1899년~1900년 사이에 그는 지구 정상파를 발견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무선 통신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주장은 무선 통신을 만들어낸 이탈리아의 마르코니보다 훨씬 빠른 것이었습니다. 이후 세계적인 차원의 무선 통신을 하기 위해 테슬라는 1900년에 뉴욕 롱아일랜드에 세계무선방송탑을 건설하기도 했으나, 그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이밖에 테슬라는 터빈과 다른 계획들의 연구에도 착수해 1927년 10월 22일 단상 유도 전동기를 비롯한 6개의 발명품을 발표해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테슬라의 말년은 불행했습니다.
결벽증과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간 그의 과학 이론과 기술이 학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아 그는 ‘미친 과학자’로 따돌림 받으며 경제적, 사회적으로 힘든 생활을 해나가야 했습니다.수백 건이 넘는 발명과 교류 발전이라는 세상을 뒤바꿀 발명을 하고도 이를 상업화해서 돈을 버는데 관심이 없었던 테슬라는 이후 사람들의 외면을 받으며 가난으로 고통 받으며 세상을 떠돌았습니다. 그리고 1943년 1월 7일 뉴욕의 한 호텔에서 그는 숨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말년과 최후는 비참했고, 그의 과학적 지식을 세상은 몰라주었지만 테슬라는 지금 저세상에서 행복한 웃음을 띠고 있을 겁니다.
그는 지금 무선 전신과 여러 현대과학 기술 분야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에디슨을 능가할 만큼 뛰어난 과학자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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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1)

  • 민승규 4 년 전에

    그의 삶이 경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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