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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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머무는곳, 시간이 놀다간 곳

  •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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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소녀의 두 볼처럼 연분홍 빛깔을 띤 봄이 경주에 안착했다. 작년처럼 새순 움트고 어제처럼 새 우는 경주로 떠나는 가슴은 두근거리기까지 하다. 신라인의 호기심을 담은 창 첨성대 앞에는 벌써 유채꽃이 한창이고, 그 향기를 따라 반월성에 오르니 팝콘처럼 터지는 벚꽃향이 벌써 봄바람에 실린다. 올곧게 자란 대릉원 소나무 숲과 해질녘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동궁과 월지에도 이미 봄이 와 있다

누구나 마음 한편에는, 경주

“봄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뭐예요?”
“글쎄…, 아마…, 봄맞이 꽃구경을 하든가, 아니면 봄기운을 느끼고 싶어서겠죠.”
“봄꽃여행은 사람이 많아서 붐비고 힘들 텐데, 괜찮아요?”
“괜찮아요. 내가 봄을 즐기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들도 봄을 즐기고 싶을 테니까요.”
“그럼… 어떤 봄 여행을 좋아하세요?”
“꽃향기와 함께 하는 ‘봄 소풍’이 좋겠는데요, 아니면 ‘나 홀로 쉼 여행’도 좋겠고요.”
“가고 싶은 곳이 있나요?”
“경주에 가고 싶어요. 스니커즈를 신고 백팩을 매고서,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타고 꽃길을 달릴 거예요. 자가용을 가져가든가, KTX를 타든가. 아니면 버스도 나쁘지 않아요. 그래도 편하고 빠른 걸로 치자면 KTX가 좋겠죠.”
“경주가 처음은 아니죠?”
“당연하죠. 학창시절에 수학여행 갈 때면 꼭 빠지지 않는 코스가 경주였거든요.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 틈에 끼어 이곳저곳 쫓아다니기만 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어요.”
경주는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은 곳이다. 어쩌면 경주에 발을 디디는 순간 기억 저편에 숨어 있던 크고 작은 기억의 편린들이 퍼즐을 맞추듯 멋진 집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추억이든 혹은 그렇지 않든, 경주는 누구에게나 재발견의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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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속살대는 대릉원의 푸르른 매력

경주에는 특별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지금부터 천 년도 훨씬 더 전, 그러니까 그야말로 오래전부터 살았던 옛사람들이다. 우리와 같은 공간에 살지만 다른 시간을 산 그들을 경주는 여태껏 온전히 품고 있다. 대릉원은 경주 고분군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입구에 들어서면 소나무가 하늘을 덮을 정도로 무성하다. 여느 소나무숲길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울창해 여유가 있어 보인다. 숲이 깊은 탓에 아직 봄기운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나무 아래 길섶에는 들꽃이 하나둘 피어 따사로운 봄의 울림을 작고도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산책길에는 소나무가 호위무사처럼 발걸음을 지켜준다. 몇 발짝 걸었을까. 소나무가 숲 가장자리로 옮겨가더니 활엽수가 교대근무를 나섰다. 아직 잎이 채 나지 않아 앙상하고 왜소하다. 곧이어 하늘이 열린다. 나지막한 기와담장 뒤에 홀로 잠든 능이 있다. 신라 제13대 왕인 미추왕의 능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미추왕은 재위 23년 만에 대릉에 장사지냈다’ 하였다. 그래서 이곳을 ‘대릉원’이라 부른다. 왕릉 주변에 유독 대나무가 많다.

미추왕릉임이 밝혀지지 않았을 때에는 이곳을 ‘죽릉’ 또는 ‘죽장릉’이라 불렀다. 이어 발굴 당시 금관과 천마도 등 수많은 유물이 나왔던 천마총이 기다린다. 발길을 돌려 경주 고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황남대총에 닿았다. 높이만 25m에 이르는 거대한 능이다. 이름 없는 작은 능까지 돌아봤지만 사실 대릉원의 매력은 유구한 역사 유물이라는 데 있지 않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나무지만, 걸음걸음 나와 함께해준 소나무의 매력이 오늘따라 더욱 값지다.
 

화미한 역사의 자취가 수놓인 곳

대릉원을 뒤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니 탁 트인 너른 땅이 펼쳐진다. 잘 다져진 흙길 주변으로 봄볕에 능들이 낮잠을 자듯 엎드려 있다. 한여름에는 햇볕을 피할 그늘이 없어 애를 먹겠지만 봄에는 오히려 볕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니 문제될 게 없다. 여행자들의 편의를 위해 비단벌레 전기자동차가 운행 중이다. 운행구간은 계림, 최씨고택, 교촌마을, 월정교, 꽃단지 등을 경유하는 약 2.9km 거리이다. 걸음이 불편한 어르신들과 아이들에게 인기다. 시원한 전망과 화사한 꽃들이 물 흐르듯 느린 풍경을 만든다. 온화한 봄날의 소경들이 마음에 잔잔한 여운을 남겨준다. 스타의 조건은 익숙함과 친숙함일 터. 첨성대가 카메라 세례를 가장 많이 받는 인기모델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한 스타의 조건 중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외모가 아닌가. 사각형과 원형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첨성대는 신라건축의 정수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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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은 곳이다. 어쩌면 경주에 발을 디디는 순간 기억 저편에 숨어 있던 크고 작은 기억의 편린들이 퍼즐을 맞추듯 멋진 집으로 완성될 것이다

 내친김에 반월성까지 돌아본다. 반월성은 일반 석성과 달리 토성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성터임을 알 수 없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파사왕 22년에 금성 동남쪽에 성을 쌓아 월성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성을 중심으로 궁전들이 자리 잡았음을 짐작할 수 있겠으나 지금 남은 것은 조선시대에 축조된 석빙고만 남아 있다. 가파른 비탈을 내려서자 국립경주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단아한 모습이지만 신라 화랑의 기백이 느껴진다. 흔히 에밀레종으로 알려진 성덕대왕신종도 여기서 볼 수 있다. 실내에 전시된 유물들 역시 허투루 볼 게 아니다. 천년왕국이니 그 속에 감춰뒀던 역사가 얼마나 많겠는가. 국보와 보물을 챙겨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천 년을 이어온 왕실의 권위는 밤에도 불을 꺼트리지 않는다. 동궁과 월지는 해질녘에 찾아야 제격이다. 흔히 동궁과 월지를 안압지(雁鴨池)로 기억한다. 어른들 대부분이 학생 때 그렇게 배웠다. 안압지는 신라 멸망 이후 시인묵객들이 폐허가 된 연못을 보며 ‘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며 시를 읊음으로써 기러기 ‘안(雁)’자와 오리 ‘압(鴨)’자를 써서 ‘안압지’라 불렀다. 그러던 것이 1980년 월지표시 토기 파편이 발견되면서 2011년부터 동궁과 월지로 이름을 고쳐 부르고 있다. 쇠락과 폐허의 상징이었던 장소가 다시 부흥의 역사를 맞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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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과 머물고 시간과 노닐며 경주의 품에 머무른 시간, 그것만으로 올해의 온기는 모두 채운 듯하다

 

발길 닿는 곳마다 피어나는 봄의 향기

경주 보문관광단지가 지난해 ‘2015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되었다. 솔직히 늦은 감이 있어 보인다. 경주의 대표적인 관광단지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어쨌든 경주 보문관광단지는 경주에서 대릉원 주변과 함께 봄을 즐기기에 적합한 곳이다. 예전 수학여행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외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마다 바뀌는 사람의 물결과는 달리 오리배는 수십 년째 변함없이 보문호를 지키고 있다. 4월에는 보문호 주위가 팝콘이 터지듯 벚꽃이 툭툭 터지면서 한결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바람이라도 불면 또 어떤가. 새하얀 꽃송이가 눈발처럼 날려 탄성이 절로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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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밀레니엄파크에서는 신라 화랑의 기상이 전해진다

 
가까운 곳에 자리한 신라밀레니엄파크도 의외로 볼 게 많다. 가볍게 가족나들이 삼아 들르기 좋은 곳이다. 당일관람권을 구입하면 파크 내의 모든 공연을 관람할 수 있고, 호텔 라궁이 함께 있어 숙박하기도 편하다. 게다가 호텔 투숙객에게는 파크관람이 무료다.
수상무대에서 펼쳐지는 ‘천궤의 비밀’이 볼만하다. 그뿐인가. 화랑의 기상을 엿볼 수 있는 화랑들의 무예훈련시범과 마상무예는 관람하는 내내 입을 다물 수 없다. 경주로 봄 소풍을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 왕릉도 좋았고, 호수도 좋았다. 야경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어차피 봄은 짧고도 아쉬운 계절이 아니던가. 차가운 가슴에 한 줄기 새뜻한 햇살 비췄다면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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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릉원 주변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봄을 달려보자

찾아가는 길

 KTX가 서울에서 오전 5시 10분에 첫출발하며 2시간 남짓 걸린다. 돌아오는 막차는 신경주역발 저녁 10시 34분이다. 신경주역에서 대릉원까지 50번, 51번, 70번, 700번 등 여러 대가 운행 중이다. 자가용은 내비게이션에 대릉원(경주시 황남동)을 검색할 것. 문의 대릉원 관리사무소 054-779-8796 

머물기 좋은 곳

 대릉원 주변에 게스트 하우스가 여럿 있다. 그중에서 청춘 게스트 하우스(054-744-0909)가 유명하다. 이외에 콘도, 리조트, 호텔 등 다양한 금액과 시설을 갖춘 숙소가 많다. 경주역, 대릉원, 경주 보문관광단지 주변에 모여 있다. 

맛있는 곳

‘경주 최부자집’으로 널리 알려진 최씨고택 주변에 쌈밥집이 많다. 한우불고기쌈밥, 돼지고기쌈밥 등 메뉴를 고를 수 있으며 맛깔스러운 반찬들이 함께 나온다. 황남빵과 찰보리빵은 경주 대표 주전부리다. 황남빵은 1 939년부터 지금까지 3대가 맛을 지키고 있고, 찰보리빵은 찰보리, 달걀, 팥을 주원료로 만든다.

 

글. 사진. 임운석(여행작가, 도서 <내가 선택한 최고의 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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