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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움이 닮았다

  • 201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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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움_상단

연희단거리패 김소희 대표와 윤정섭 배우 , 글. 성지선/ 사진. 이준호/ 촬영협조. 연희단거리패
길거리에도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날이었다. 내비게이션이 멈춘 곳은 혜화동의 어떤 골목. 습기로 젖은 초록 처마 밑에서,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말소리들이 물방울처럼 리드미컬하게 떨어진다. 극단 창립 30주년을 맞아 연습이 한창인 연희단거리패의 간판배우 둘을 만났다.

무대 위에서 타는 불꽃, 연희단거리패

첫인상은 강렬했다. 시멘트 바른 벽을 따라 나란히 붙어 있는 연극 포스터, 새파란 초록으로 칠한 처마, 입구에서 바로 이어지는 높다란 철제 계단. 그리고 작은 문 안에서 숨결처럼 터져 나오는 대사들. 다시 떠올려 봐도 흔치는 않은 풍경이다. 이곳은 연희단거리패의 활동무대인 게릴라극장. 바투 붙어 있는 계단을 올라가니 문지방이 보이고, 문지방을 넘어가니 가정집 안방을 개조한 듯 널따란 방이 나온다. 한가운데 놓여 있는 평상에 앉자마자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경쾌한 말소리가 뒤따라왔던 까닭이다. “방금 연습 끝났는데, 극장 안에서 이야기 나누시겠어요?” 연희단거리패의 녹슬지 않는 목소리, 김소희 대표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극단으로 꼽히는 연희단거리패는 1986년 7월 17일 부산 가마골소극장에서 창단한 실험극단이다. 이윤택 예술감독을 주축으로 서울, 부산, 밀양에 근거지를 두고 전국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달수, 윤제문, 곽도원 등 쟁쟁한 연기파 배우를 배출한 극단이라고 하면 좀 더 쉬운 설명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름에서도 저희 극단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연희’라는 전통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거리패’ 특유의 자유로움을 지향하죠. 무대시설이 잘 갖춰진 곳에서 정극만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극단으로서 연희단거리패만의 독창적인 연기세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30주년을 맞이한 연희단거리패는 단순한 극단이 아니라 일종의 공동체다. 경상남도 밀양시에 위치한 밀양 연극촌, 김해시의 도요마을 등에 70명에 가까운 단원들의 거처를 마련해 놓고 숙식을 함께하며 연극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상주의 연극공동체’적 삶을 공유하기에 그들의 연기는 자연히 특색을 띤다. 덕분에 국내 연극계뿐 아니라 세계 연극계에서도 그 유니크한 연기훈련과 연기법에 관심을 가진단다. 폭발적인 에너지로 연극계에 불을 지르는 극단, 그 속에서도 각자의 불꽃을 일으킨 두 사람이 눈앞에 앉아 있었다.

너 나랑 무대 한 번 서자

김소희 대표는 20년 넘게 연희단거리패와 함께한 간판스타이자 극단의 정신적 지주인 이윤택 감독의 페르소나로 통한다. 몇 개의 문장만으로 그녀의 여정과 예술세계를 모두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녀가 관객을 끌어 모으는 대학로의 보증수표라는 사실, ‘내면의 심리를 가장 치밀하게 드러내는 배우’라는 연극계의 상찬만으로도 그녀의 위치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대학생 시절에 김소희 선배님의 수업을 들었어요. 물론 저는 그전부터 선배님을 알고 있었죠. 무대에서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그 열정 어린 모습을 후배 배우로서 본받고 싶었습니다. 학생들을 지도하시는 모습을 보고서는 더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아예 학생들 집에서 숙식을 같이 하시면서 계속 수업하시는 모습이 놀라울 정도였죠. 어느새 ‘선배님 앞에서는 일등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윤정섭 배우가 이십대 중반에 접어들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앞으로 십 년은 극단에서 배우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그의 앞에 운명처럼 김소희 대표가 나타났다. 연기술도, 연극정신도 모두 존경스러웠지만 그가 가장 닮고 싶었던 것은 김소희 대표의 연극혼이었다. 무대소품을 침대 삼아 잠들고, 눈을 뜨면 또 다시 연습에 심취하는 선배의 모습에 그는 한 마디로 ‘반했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는 이상, 선배가 후배의 애끓는 존경심을 알 리 없었다. 어느 날, 상대적으로 연습량이 적은 C팀에 속해 있던 윤정섭 배우에게 안톤 체호프의 작품 의 트레플레프 역을 시켰을 때였다. 김소희 대표는 눈을 의심했다. 완벽한 트레플레프가 거기 서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학생이었던 그에게 김소희 대표는 한 마디 감격적인 말을 건넨다. “너, 나랑 무대 한 번 서자!” 무서운 선생님으로 통했던 김소희 대표의 그 말에 윤정섭 배우는 물론이고 친구들까지 환호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십 년, 그 말대로 윤정섭 배우는 김소희 대표와 같은 무대에 서서 단 둘이 호연을 선보일 수 있는 배우로 올라섰다.

뜨거움_1

연극의 본질을 알아본다는 것

“2009년, 라는 작품을 했습니다. 그땐 정섭이가 배우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단역을 맡고 있었는데, 제 마음에 차지 않는 연기가 있었어요. 시원하고 맑은 소리를 질러줘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그게 만족스럽지 않았던 겁니다. ‘다시 해 봐!’ ‘다시!’ 허리춤을 때리고 소리를 질러가다시피 하면서 한참을 가르치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은 극장 한복판에서 너무 오랜 시간 훈련시키고 있었더라고요.”
그러나 윤정섭 배우는 어떤 것도 개의치 않았다. 아무리 혹독한 가르침이라도 충실히 따라오는 윤정섭 배우를 보면서 김소희 대표는 고집스러울 정도의, 연기를 향한 순수성에 감탄했다고. “연극의 본질을 알아보는 친구인 거죠.” 그녀의 말에 윤정섭 배우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러나 연희단거리패의 모두가 알고 있다. 후배인 윤정섭 배우 역시 마치 선배인 김소희 대표처럼 자신의 연기에 무척이나 엄격하다는 것을.
“선배님은 항상 제가 넘어야 할 큰 산 같은 분이에요. 제가 나이가 들고 성장할수록, 선배님과 같은 무대에 섰을 때 가장 편안한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젠가 윤정섭 배우는 김소희 대표에게 ‘선배님이 기대어 쉴 수 있도록 큰 나무로 자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제 연희단거리패에 없어서는 안 될 배우로 성장한 그에게 김소희 대표가 ‘잘 심은 묘목 같은 후배’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래서다. 크게 자란 나무일수록 옹이도 많고 상처도 많지만, 그만큼 나이테가 넓어지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미소짓는 선배의 얼굴에서 후배를 향한 진한 애정이 읽힌다. 서로에게 뜨거움을 감염시키는 일,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열정을 앓아왔으므로 그들은 분명 닮았다.

뜨거움_2

두 사람이 함께 열연을 펼친 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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