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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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끝에 우리

  • 201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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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환 라이더와 채승연 서퍼 / 글. 성지선/사진. 이준호

Special Theme / 함께 있어 든든한 우정 에너지

어슴푸레 아침볕이 밝아오는 것을 보니 이제 송정에 거의 도달한 것 같다. 오전 일곱 시의 송정 바다, 장마가 겹쳐 있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고 대신 물안개가 자욱했다. 짙게 깔린 물안개를 헤치며 멀리서 두 사람이 걸어온다. 기다란 서핑보드를 각자 둘러메고, 바다를 향해, 두런두런 나지막한 이야기를 나누며.

두 남자가 바다 위에 서기까지

“잘 잤어?” 심상치 않다. 어느 여름의 이른 오전, 부산 송정 앞바다의 건장한 두 남자가 서로 나눈 하루 첫 인사가 이토록 일상적이라니. “응, 나는 잘잤지.” 살갑게 대답하는 모습에서도 어색함이란 찾아볼 수 없다. 서로가 아주 편안해 보인다고 말을 건네니, 바로 옆집에 살아 함께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덧붙이는 둘.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끈끈한 뭔가가 더 있는 듯하다. 국내 서핑선수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예수환 라이더와 채승연 서퍼 얘기다.
“2010년에 서핑을 처음 알게 됐으니 이제 7년차에 접어드네요. 선수라고 하지만 입상에 연연하지는 않아요. 일 년에 몇 번 페스티벌이 있고, 국내외에서 많은 서퍼들이 모이면 함께 참가하고 즐긴다는 의미가 더 크죠.” 예수환 라이더는 2010년, 채승연 서퍼는 2009년. 각각 라이더·서퍼라는 단어를 이름 뒤에 붙이기까지 비슷한 시간을 건너왔다. 주 종목도, 서핑 취향도 비슷하지만 시작점은 서로 달랐다. 예수환 라이더는 이곳 송정에서 친구의 소개로, 채승연 서퍼는 타국에서 스스로 서핑을 접했단다.
“필리핀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딱히 취미생활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런 나라에서는 서핑을 하지 않나, 싶어서 시작한 거죠. 취미로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귀국해서도 서핑할 수 있는 곳이 없는지 찾아봤습니다. 당시 강원도, 부산, 제주. 이렇게 세 군데가 있었는데 저는 강원도에 자주 갔어요. 서핑할 수 있는 곳이 드문 편이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채승연 서퍼에게 서핑이란 ‘아주 많이 좋아하는’ 취미일 뿐이었다. 국내에서 서핑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했다던 그는 전공을 살려 호텔에 취직하면서 주거지를 부산으로 옮겼다. 그리고 바로 그 곳에서 서핑에 푹 빠져 있던 청년, 예수환 라이더를 만났다.“친구가 처음에 송정에서 서핑을 한번 해 보자는 거예요. ‘말도 안 된다, 하와이나 가서 하지. 내가 부산 토박인데 파도를 본 적이 없다’ 제 첫 반응이 이랬어요.”
서핑을 먼저 배우고 있던 친구가 등을 떠밀어 하게 된 첫 서핑은 예수환 라이더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보드를 발판 삼아 물결 위에 섰을 때, 그리고 그 파도가 바람처럼 몸을 밀어주었을 때의 희열이 지금도 생생하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장비를 알아보러 다니며 서핑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서퍼들이 누리는 자유에 두 번 반했다고. 누워 있으면 파도 소리가 귓가에 맴돌 정도로 서핑과의 연애에 빠졌던 예수환 라이더에게 마음을 이해해 줄 동료가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했으리라.

파도_2

예수환 라이더

서핑으로 만난 인연, 삶의 파도를 함께 타다

부산 앞바다에서 밤낮 파도를 타던 예수환 라이더와, 부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서핑할 동료가 필요했던 채승연 서퍼의 우정은 예견된 일이었다. 처음에는 아는 사이로,그 다음에는 친한 사이로 발전한 둘은 서핑으로 통했다가 이제는 삶에 대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동료가 됐다. “제가 송정에 자리 잡기 전 일 년 정도를 형과 같이 살았어요.서로 생활방식이 다를지 모르니 처음 제안할 때에는 사실 조심스러웠는데, 형 집에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봤을 때 형은 정말 일말의 고민 없이 대답하더라고요.
‘응, 너 깔끔하잖아?’ 그러고 끝. (웃음)” 예수환 라이더를 이미 잘 알기에 망설이지 않았다는 채승연 서퍼는 오히려 예수환 라이더가 있어 송정에서의 생활이 즐거웠다고 했다. 일하고, 서핑하고, 파도 소리 안주 삼아 술 한잔 하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다 보면 하루의 시간이 흘러간다. 그보다 평화로울 수 있을까. 일 년 가량이 지난후에 예수환 라이더가 ‘혹시 내가 불편하게 한 일이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그 또한 명쾌했다고. ‘응, 가스밸브를 잘 안 잠그더라. 너 곧 결혼하는데 좀 걱정돼.’ 3년의 짧지만 깊은 우정을 이어오는 동안 갈등이 한 번도 없었다는 말에 믿음이 가는 대목이다.
“동생이지만 오히려 배우는 게 많아요. 저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사람도 가리는 편인데, 수환이는 사교성이 좋아서 모든 사람에게 다 잘하거든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해요.” 의기투합해 서핑 브랜드도 만들고 있다는 두 사람. 신뢰가 없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수환 라이더에게는 그러나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다. “누가 제게 승연이 형이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면 저는 바로 대답할 수 있어요. ‘양심적이고 올곧은 사람’이라고요. 선의의 거짓말조차 하지 않는 솔직한 사람이죠. 그래서 믿을 수 있고, 그래서 배울 수 있어요. 굉장히 긍정적이라 제가 작은 일을 걱정하면 큰 그림을 보여주면서 긍정의 힘을 믿자고 독려하는 축입니다.”

파도_3

채승연 서퍼

네가 있어 오늘도 평화로이

무엇보다 두 서퍼는 서핑 취향이 통한다. 보드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이 날 두 서퍼는 모두 롱보드를 들고 나왔다. 그중에서도 60~70년대 보드를 벤치마킹해 만든 ‘레트로’한 감성의 롱보드를 선호한단다. “수환이와 저는 삶을 대하는 방식도 닮은 것 같아요. 서핑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한다는 생각보다는 서핑을 하면서 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죠.” 자금에 연연하지 않고, 벌이에 구애받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사는 삶.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들도 처음에는 소위 세상의 기준에 부합해야 하는지를 고민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바다가 이끄는 곳에 절로 마음이 닿았다고. 이제 예수환 라이더는 송정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채승연 서퍼는 서핑샵을 개업해 언제 어느 때든 파도에 몸을 맡긴다. 최근에는 호주에 서프트립을 함께해 일주일 내내 봉고차 안에서 생활하며 서핑을 즐겼다. 새로운 파트너도, 또 새로운 친구도 많이 만났다는 둘의 얼굴에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이 넘실댄다.
“아까 저희더러 편안해 보인다고 하셨죠. 정말 그래요. 걱정도 없고, 매일 매일이 행복해요. 불행하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어요. 언제 느꼈는지… 정말 기억이 잘 안 나요.” 말을 가만히 끝맺으며 바다의 끝을 응시하는 채승연 서퍼. 맺은 말을 잇듯 예수환 라이더도 시선을 바다에 두고, 파도소리가 그 뒤를 따른다. 물안개는 어느새 걷혔다. 내다보이는 수평선이 문득 밝고, 푸르고, 또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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