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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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높고 곡식은 여무나니_전라남도 영광

  • 201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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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저절로 충전되는 여행지를 소개합니다 / 글. 사진. 임운석(여행작가, 도서 작가)
무더운 여름을 떠나보냈다. 진정한 ‘먹방’의 계절, 가을이 왔다. 빼어난 해안절경을 따라 드라이브도 즐기고 한식의 품격을 한 차원 높이는 이름 법성포 굴비한정식도 맛보고 싶었다. 영광에 가야 할 두 가지 이유가 생긴 것이다.

희디흰 풍요가 가득한 사백四白의 땅

영춘교를 시작으로 백수해안도로가 이어졌다. 구불구불 굴곡진 길을 따라 차가 이리저리 쏠리더니 법백교에 닿았다. 다리 아래로 와탄천이 숨죽이며 흘러갔다. 와탄천은 내륙의 일반 천과 달랐다. 검은 갯벌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행자의 발뒤꿈치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오래된 각질처럼 유난히 두껍게 느껴졌다. 황강들녘은 넓었다. 반듯반듯하게 구획이 정리되어 있었다. 푸른 벼들이 서서히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다. 들녘은 이미 초가을에 접어들었다. 여름날 뜨거운 열기가 아직 남아 있는지 지면에는 아지랑이가 이글이글 끓어올랐다.
영광은 북쪽으로 전라북도 고창군과 맞닿았고, 동쪽으로 전라남도 장성군, 남쪽으로는 신안군과 함평군, 서쪽은 서해바다와 면하고 있다. 영광이 접한 서해안선 길이가 202km에 이른다. 바다에는 밥그릇을 엎어놓은 것처럼 크고 작은 섬들이 둥둥 떠 있었다.

전라북도 부안을 두고 ‘생거부안’이라 부른다. 물고기, 소금, 땔감, 즉 어염시초(魚鹽柴草)가 풍성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영광은 여기에 한술 더 떠 삼백(三白) 또 사백(四白)의 고장이라 일컬을 정도로 쌀, 소금, 목화, 눈이 많다. 곡창지대와 풍부한 수산물 덕에 인심도 넉넉하다고 한다. 그러니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뜻의 옥당고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와탄천을 사이에 두고 대덕산(240m)이 배를 깔고 누운 늙은 소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정상에 오르면 와탄천과 서해바다, 법성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안로를 따라 모래미해변을 지나 백수해안도로 종점까지 내달릴 수도 있었지만 법성포를 지나칠 수 없었다. 영광굴비를 먹지 않고서 어떻게 영광을 다녀왔다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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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포 로터리에 서 있는 굴비 조형물

영광의 호시절을 기억하는 곳, 법성포

어깨를 맞댄 굴비가게들이 줄지어 이어졌다. 끝나는가 싶으면 굴비가게가 나왔고 마지막인가 싶으면 굴비를 적재한 궤짝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영광=굴비’라는 등식은 찾지 않아도 되고, 듣지 않아도 되는 절대 진리였다. 법성포공용터미널에서 시작한 굴비거리는 1.5km에 이르도록 끊어지지 않았다.

“영광굴비가 아니라니까. 영광 법성포굴비여. 법성포가 중요하당께. 참말로!”

굴비거리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말씀이다. 법성포 사람들은 법성포에 대한 상당한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법성포는 영광을 대표하는 항구다. 법성포에는 고려 초기부터 조창(漕倉)이 있었다. 특히 유형원이 쓴 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법성조창이 관할했던 지역이 부안, 장성, 정읍, 고창, 순창, 고성 등 15개 고을에 이르렀고, 중기에는 호남곡창지대에서 거둬들인 전세가 법성포에 죄다 집결했다고 한다. 또한 조기로 유명한 칠산바다의 기항지로서 바다위에서 열리는 생선시장인 파시(波市)가 열렸을 정도다.

“옛날 어른들 말씀에 지금 이 땅이 원래는 바다였대요. 파시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에서 모인 상인들로 들썩였고, 술집에는 술이 없어 못 팔 지경이었답니다. 돈이 종이처럼 흔했다고 하니까 말 다했죠. 오죽하면 ‘법성포로 돈 실러 가세’라는 노래를 불렀을까요.”

“저 달이 뜨면 배질해 가자, 칠산바다로 고기 잡으러 가자 / 돈 실러 가세, 돈 실러 가세, 영광에 법성포라 돈 실러 가세 / (후렴) 지화자 지화자 에헤야 에헤야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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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산정에서 바라본 백수해안도로와 후면에 위치한 영광원자력발전소

영광에서만 탄생하는 으뜸 특산물

물론 좋은 시절은 지났다. 요즘 법성포구는 항구로서는 시쳇말로 ‘한물갔다’고 해도 좋을 성싶다. 수심이 얕아져서 선박 출입이 불편할 정도라고 한다. 칠산바다에서 잡히던 조기도 씨가 말랐단다. 따뜻한 바다에서 월동한 조기가 봄에 칠산바다를 거쳐 연평도를 지나 압록강까지 올라가는데 제주도 추자도 근방에서 조기를 싹쓸이해 씨가 말랐다는 주장이다. 사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칠산바다에서 예전처럼 조기가 많이 잡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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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기능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법성포구

그렇다면 법성포굴비 맛도 예전만 못해졌을까? 현지인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유는 이렇다. 조기는 우리나라 어디에서 잡히든 맛이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말리느냐다. 굴비 맛을 결정하는 것은 건조방법과 염장법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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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마름모꼴로 생긴 국산굴비

“법성포는 볕이 잘 들고 일교차가 커요. 바람도 많고요. 이런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조기를 자연건조하기 좋아요. 저희 집은 3년 이상 간수를 뺀 천일염으로 조기를 잽니다. 천일염은 당연히 염산염전 것을 쓰고요. 이 염장법은 손이 많이 가서 다른 지역에서는 잘 쓰지 않는 방법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해야 군내가 잡히고, 짜지 않고 담백한 굴비를 얻을 수 있죠.”

간조기와 굴비는 다르다. 우리가 흔히 먹는 손바닥만 한 굴비는 간조기로서 소금 간을 한 뒤 꾸덕하게 말린 것일 뿐 굴비가 아니다. 특히 요즘은 냉장시설이 좋다보니 예전보다 더 말리지 않는다고 한다. 살짝 물기만 빼고 시중에 내놓는다고. 식당 주방장은 이런 간조기를 일반인들이 굴비로 알고 있어 답답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굴비는 복어처럼 바싹 말린 것이다. 조기를 소금에 사나흘 절여 이슬과 비를 피해 보름 넘게 말리면 살이 딱딱하게 굳는다. 이것을 통보리 속에 넣어 보관하면 보리굴비다. 보리굴비는 딱딱해서 굽지 않고 찐다. 적당히 찌면 살이 먹기 좋게 찢어진다. 굴비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찬물에 밥을 말아 굴비를 찢어 얹어먹으면 그만이다. 역시나 밥을 두 그릇이나 비우고서야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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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방향은 간장게장, 정중앙은 보리굴비, 6시 방향은 고추장굴비, 9시 방향은 간조기

또 다른 명물, 붉디붉은 낙조

482번 도로를 따라 법성포를 빠져나왔다. 백수해안도로로 넘어가는 언덕에 느티나무 군락지인 숲쟁이꽃동산이 있었다. 숲쟁이는 ‘숲으로 된 곳’이라는 뜻이다. 조선 중종 9년(1514) 수군 기지인 법성진성을 축성하면서 적군을 방어할 목적으로 활엽수 위주로 심었다고 한다. 계산상으로 50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지만 나무들은 그렇지 않다. 가장 나이 많은 나무가 300살 정도 되었으니 이후에 다시 심은 것이 분명했다. 숲속에서는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 동안 여기서 살았다고 했다. 그들에게 숲이 있어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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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산정 아래 조성된 ‘건강365계단’

칠곡로를 지날 때 영광대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서해대교와 같은 사장교인데 위엄이 대단했다. 파도가 높았다. 바다가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파도가 100m 달리기 선수처럼 전속력으로 달려와서 모래미해수욕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백사장이 아득히 멀어졌다. 대신 깎아 세운 듯한 낭떠러지가 이어졌다. 백수해안도로의 백미구간에 들어섰다.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단숨에 달릴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좋은 포인트가 되는 곳마다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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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km정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산책로

특히 칠산정은 백수해안도로의 여러 전망대 중에서 으뜸이었다. 탁 트인 시야와 바다에 떠 있는 돔배섬, 질주하는 차량의 행렬까지 완벽한 그림이었다. 칠산정 아래에는 ‘건강365계단’이라 불리는 목책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계단 주위로 나무가 울창했다. 바닷바람에 숲 기운이 더해져서 더욱 시원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나무의 호위 덕분에 뙤약볕을 피할 수 있었다. 산책로는 노을전시관까지 2.3km가량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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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노을전시관 주변에는 거무칙칙한 갯바위들이 해안을 따라 너울처럼 이어졌다. 전망대 끝까지 걸어가서 바다를 마주해 보았다. 바다는 거셌다. 거침없는 파도가 시름을 씻어주기라도 하는 듯 강하게 밀려왔다 쓸려 나아갔다. 고막 속 깊은 곳까지 파도소리가 쩌렁쩌렁 울어댔다. 마지막 구간인 백암해안전망대를 향해 4km가량을 더 달렸다. 드라이브 구간 전체를 달린 것이다. 푸짐한 굴비정식도 좋았지만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어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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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서해의 서정적인 일몰

내친김에 일몰까지 보고 싶었다. 저녁 7시경,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태양이 붉은 장막을 부여잡고 바다를 향해 입수했다. 혹자는 백수해안도로에서 동해바다를 연상한다고 한다. 물론 해안을 따라 들쑥날쑥한 단애는 동해의 그것과 닮았다. 그러나 일몰만큼은 절대 비교할 수 없다. 서해바다로 떨어지는 붉은 태양은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오직 영광만의 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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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하는 여행자들

Travel Tip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과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영광으로 1일 16회 버스 운행, 3시간 30분 소요. 영광읍 군내버스가 백수해안도로 수시 운행. 문의/ 영광교통 061-353-1303
[자가용] 내비게이션에 영광노을전시관(전남 영광군 백수읍 해안로 957)을 검색해서 달리다 보면 백수해안도로에 진입한다. 문의/ 영광군청 문화관광과 061-350-5750 노을전시관 061- 350-5600)

머물기 좋은 곳
법성포와 해안도로 곳곳에 숙박업소가 많다. 해안가에서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펜션이 많다. 쉐이리펜션(061-353-8128)은 환상적인 동화나라 콘셉트로 유명하다.

맛있는 곳
법성포에는 굴비정식 이외에도 간장게장, 덕자찜, 황토갯벌장어, 백합 등이 유명하다. 굴비정식과 간장게장은 다랑가지(061-356-5588), 덕자찜은 해촌식당(061-353-8897)에 손님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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