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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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겨울의 길을 걷다

  • 2016.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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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저절로 충전되는 여행지를 소개합니다_경상북도 영덕 / 글. 사진. 임운석(여행작가, 도서 <내가 선택한 최고의 여행> 작가)

 

해파랑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최장 트레일이다.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총 688km거리, 그중에서 으뜸구간인 영덕 블루로드는 포항과 맞닿은 대게공원에서부터 울진 턱밑에 자리한 고래불해수욕장까지 64.6km구간이다. 전 구간을 걷고 싶지만 걷지 못할 이유가 많은 당신에게 블루로드 베스트 3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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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축산항의 낮 풍경

달빛과 바람이 얽히고설키는, 빛과 바람의 길

영덕을 이해하고 느끼는 최고의 방법은 걷기다. 하지만 걷기에 앞서 우리는 이유가 많다. 이런저런 이유 탓에 걷기보다는 탈것을 먼저 찾고 의지하게 된다. 영덕은 그래도 괜찮다.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콕콕 집어 알짜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빛과 바람의 길’은 강구터미널에서 고불봉을 지나 풍력발전단지와 해맞이 공원을 잇는 17.5km 구간으로, 영덕블루로드 중에서 첫 번째로 개통한 길이다. 그만큼 이야기도 많고 볼 것도 많다. 걸어가면 6시간 정도 걸린다. 산봉우리를 오르내리고 뙤약볕을 통과하는 탓에 난이도가 조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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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를 앞두고 진열한 대게 모습

출발지인 강구항은 영덕에서 가장 큰 항구인 만큼 언제나 분주하다. 11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대게가 제철이다. 새벽은 물론 오후시간에도 대게잡이 어선들이 쉴 새 없이 들락거린다. 항구 위판장에는 경매사들의 코맹맹이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손놀림도 분주하다. 언뜻 보기에 야구감독이나 투수가 보내는 암호 같다. 한바탕 큰 소란이 일어난 것처럼 경매가 끝나고 나면 다음 차례는 노란바구니에 게를 주워 담는 아주머니들의 순서다. 쪼그려 앉아서 잽싸게 움직이던 아주머니들은 작업을 모두 마치고서야 허리를 편다. 이윽고 경매사들이 다른 위판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경매사가 경매시작을 알리자 어디선가 중매인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그리고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강구항에서 소통할 수 있는 언어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말, 다른 하나는 경매사와 중매인이 나누는 그들만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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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번 지방도를 달리다보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오징어덕장

시끌벅적한 강구항을 뒤로 하고 풍력발전단지로 향한다. 동해안은 흔히 7번 국도로 통하지만 영덕의 속내를 보고 싶다면 20번 지방도로를 타야 한다. 작은 어촌마을 구석구석을 휘저으며 달리기 때문이다. 하저해수욕장을 지나 하저교를 건너 환경자원관리센터를 향해 좌회전한다. 풍력발전단지를 먼저 돌아보고 해맞이공원으로 가기 위해서다. 바다 반대쪽 야트막한 산은 봉화산이다. 수령이 오래되지 않은 소나무가 대부분이다. 여느 산처럼 오르락내리락 반복하지만 경사가 급하지 않아 걸을 만하다. 강구항에서 금진구름다리까지 1시간 20분 정도 걸리고 이후 고불봉까지 1시간 40분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 샛길이 많지 않고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처음 길을 나선 사람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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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발전단지에 가득한 늦가을의 정취

고불봉 아래 야성폐차장부터는 자동차와 사람이 함께 걷는 임도구간이다. 그늘이 없고 쉴만한 곳이 많이 없는 터라 지난여름에 이 길을 걷다가 고생한 기억이 있다. 울퉁불퉁, 구불구불, 들쑥날쑥한 길 끝에 풍력발전기 몇 대가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면 그 크기가 엄청나서 위압감이 들지만 먼발치에서 보는 풍력발전기는 이국적이다. 길을 따라 전진하면 할수록 풍력발전기는 거대하게 다가온다. 급기야 해맞이캠핑장 근처에 닿자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거대한 외계 생명체 같은 느낌이 든다. ‘윙윙윙’ 바람을 가르는 음산한 소리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24기의 풍력발전기는 사람이 세웠다기보다 거인이 힘들이지 않고 쿡쿡 찔러 놓은 것 같다. 구간을 잇는 산책길은 나무 데크로 연결되어 있다. 어디에서든지 거칠 것 없는 조망과 탁 트인 바다가 블루로드 최고의 전망임을 여실 없이 보여준다. 문학정원에는 윤선도 시비, 신득청 가사문학비 등이 세워져 있고, 영덕 산림생태문화체험공원에는 대게를 모티브로 한 조각상들이 한껏 예술세계를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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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를 통해 에너지를 배울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전시관

바다를 향한 옴팍한 곳에 탱크로리를 닮은 이색 숙소가 자리한다. 외관은 캡슐 모양으로 앙증맞지만 실내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다.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연초에 숙박 문의가 많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용요금까지 저렴하니 예약은 필수다.
풍력발전단지 내에 위치한 신재생에너지전시관에는 풍력, 태양열, 수소에너지 같은 신재생에너지의 이용과 환경보존에 대한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은 체험을 통한 학습효과도 얻을 수 있다.
마지막 구간은 해맞이 공원이다. 바다에는 이런저런 등대가 많이 있기 마련이지만 창포말등대의 포스는 가히 으뜸이라 하겠다. 영덕대게가 거대한 집게발로 빨간 표지등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그 아래에는 바다로 내려갈 수 있도록 나무계단이 놓여 있어 바다를 더욱 가까이 볼 수 있다. 바다가 갯바위에 포말을 일으키며 격하게 반긴다.
달이 뜨는 밤이면 세상은 검은 품안에서 잠들기 마련이건만, 영덕은 더욱 환하게 풍요로워진다.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영덕블루로드 달맞이 여행은 은은한 보름달빛과 웅장한 풍력발전기의 경관조명이 어우러져 특별한 밤을 선사한다. 요즘은 인공조명이 빛을 밝히지만 이러한 야간 달빛여행은 영덕의 전통놀이인 달맞이 행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행사계획은 영덕군 홈페이지(http://tour.yd.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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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홍색이 선명한 영덕대게

대나무숲으로 테를 두른, 푸른 대게의 길

‘푸른 대게의 길’은 해맞이 공원에서 출발해서 다탄항~석리마을입구~대게원조마을~블루로드다리~죽도산~축산항을 거쳐 남씨발상지까지 이르는 15.5km 구간으로, 대게원조마을과 죽도산이 눈여겨볼 만하다.
해맞이 공원을 출발해 7km가량을 달리면 대게원조마을에 닿는다. 대게원조마을인 경정2리는 80여 가구에 90여 명이 사는 작은 어촌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원조논쟁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는 잡음을 일축하려는 듯 마을 들머리에 ‘영덕대게원조마을’ 비석이 서 있다. 비문에는 이렇게 적혔다.
‘마을 앞에 동해의 우뚝한 죽도산이 보이는 이곳에서 잡은 게의 다리 모양이 대나무와 흡사하여 대게로 불리어 왔으며, 우리는 이 마을 내력을 따라 영덕대게 원조마을로 명명하여….’ 즉, 대나무를 닮아서 ‘대게’라는 이름을 붙인 곳은 여기가 처음이라는 뜻이다. 마을에서는 계절에 따라 어선타기체험, 대게잡이체험, 미역체취 및 건조체험 등을 진행한다.
대게마을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삼각형 모양의 산봉우리, 죽도산이 보인다. 죽도산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대나무로 에둘려진 산이다. 해발80m지만 경사가 급해 여러 번 쉬면서 올라야 한다. 조금씩 고도가 높아질수록 축산항이 시야 한가득 들어온다. 북서쪽 하늘아래에는 봉화산이 솟아 있고 동쪽에서는 태평양에서부터 불어온 바람이 주야장천 대나무를 흔들어댄다. 해안을 따라 산호군락지가 발달해 스킨스쿠버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숨은 명소라고 한다. 죽도산 정상에 있는 하얀 등대는 1935년 처음 불을 밝혔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보는 시간대에 따라 한 장의 파노라마사진처럼 역동적이기도 하고 정적인 어촌마을처럼 고요하고 아늑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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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트막한 담장이 정겨운 괴시리마을

사대부의 기개를 닮은, 목은 사색의 길

축산항을 지나면 ‘목은 사색의 길’에 접어든다. 이 구간에는 고려 말 목은 이색 선생이 태어난 괴시리마을이 있다. 그 이전에는 이곳을 영해라 불렸는데 사대부들이 많이 살아 ‘작은 안동’으로 통했다. 목은 이색 선생은 고려 말 대학자로서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삼은의 한 사람이다. 괴시리마을은 200여 년이 넘은 영양 남씨 집성촌으로 고풍스러운 한옥이 잘 보존되어 있는 전통마을이다. 낮은 담장을 따라 걷노라면 들뜬 마음도 차분해지고 고향에 온 것처럼 포근함과 정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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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기에 좋은 목은 이색 산책길

괴시리는 이색 선생이 중국의 괴시마을과 이곳이 비슷하다하여 괴시라 불렀다. 마을을 가로질러 언덕으로 오르면 목은 이색 기념관에 닿는다. 기념관 앞의 넓은 터는 선생이 나고 자란 생가터다. 그 옆으로 목은 이색 산책로가 이어진다. 키 큰 소나무의 호위를 받으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이다.
목은 사색의 길 종착지는 고래불해수욕장이다. 울진군 아래에 있으니 영덕에서는 백석해수욕장과 더불어 가장 북쪽에 자리한 곳이다. 백사장이 장장 8km에 이르는 이곳을 두고 현지인들은 ‘명사20일’이라 부른다. 백사장만 따라 걸어도 1시간 30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또한 모래가 몸에 달라붙지 않아 여름에는 모래찜질용으로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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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축산항의 야경

고래불이란 이름은 목은 이색 선생이 관어대에 올랐다가 바다에서 큰 고래가 물을 뿜어대는 것을 보고 이곳을 고래불이라 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빛과 바람의 길, 푸른 대게의 길, 목은 사색의 길. 영덕을 휘감은 세 가지 길에서는 시리도록 새파란 바닷바람이 내내 감돌았다. 이제 곧 이곳에도 본격적인 겨울바람이 닿고, 제철 맞은 대게를 요리하는 솥에서는 흰 김이 푸짐하게 오르리라. 겨울이면 더욱 새파란 빛으로 치장하는 곳, 올해 대미를 장식할 겨울여행을 꿈꾼다면 영덕으로 가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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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불해수욕장의 서정적인 늦은 오후

Travel Tip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영덕으로 1일 3회,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영덕으로 1일 7회 버스운행, 4시간 20분 소요. 영덕터미널에서 강구시외버스터미널까지 농어촌 버스로 45분 소요. 문의 영덕버스 054-732-7374
[승용차] 내비게이션에 강구항(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강구리)검색 문의 영덕군청 문화관광과 054-730-6390)

머물기 좋은 곳
강구항 주면에 모텔과 민박이 많다. 블루로드를 따라가는 길에 전망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펜션이 들어서 있다. 메르센트펜션(054-732-0812)과 블로오션관광펜션(054-733-7080)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쪽빛바다를 조망하며 하룻밤 묵기 좋다.

맛있는 곳
영덕에 왔다면 대게는 필수 먹방코스. 영덕대게마을이 있는 강구항 인근에 대게식당이 즐비하다. 대게코스요리를 주문하면 속이 꽉 찬 대게찜부터 튀김, 회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대게궁(054-734-5001), 바다소리(054-733-8222)에서 영덕대게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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