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블로그
삶에 활력(力)을 더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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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어주는 사람

  • 2016.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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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점자도서관 김효선 팀장&낭독봉사자 진진화 강사 / 글. 성지선/사진. 이준호
여기 하얀 백지가 있다. 빛이 없는 곳에서 보면 그저 종이 한 장일 뿐이지만 손가락으로 찬찬히 만져보면 이내 오돌토돌, 무언가 손끝으로 신호를 보낸다. 어둠 속에서 희망의 신호를 보내는 곳, 한국점자도서관에서 선한 목소리를 가진 두 사람을 만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점자도서관, 그리고 봉사자들

“비쩍 말라도 상관없어요, 엄마. 저는 공중에서 무얼 할 수 있고, 무얼 할 수 없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그게 다예요. 그냥 알고 싶어요.”
암사동 골목에 위치한 한 건물 안에서 을 읽는 낭랑한 음성이 울려퍼진다. 정확히는 3층, 조그맣게 마련된 녹음실 안이다. 헤드폰을 쓰고서 양손에는 책을 든 채 열심으로 소리를 내어 책을 읽는 사람은 진진화 강사. 한국점자도서관에 여덟 해째 ‘책 읽으러’ 드나드는 사람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독서장애를 가지신 분들을 위한 일이에요. 책을 낭독하고 녹음해서 CD로 만드는 작업이지요. 녹음도서를 만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녀가 열중하고 있던 것은 바로 낭독봉사. 한국점자도서관을 이용하는 고객들을 위해 책을 녹음하는 일이다. 여기서 녹음된 음성은 정밀한 편집과정을 거쳐 CD로 만들어지고, 시각장애인들을 포함한 전국 각지의 독서장애인들이 대여해 들을 수 있다.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녹음도서는 그러나 한국점자도서관이 꾸준히 해온 일이기도 하다.

“한국점자도서관은 1969년 종로5가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점자도서관입니다. 시각장애인이셨던 故육병일 관장님께서 사재를 털어 설립하셨죠.”
국가지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개인재산으로 꾸려졌었기에 두 번의 폐관 위기를 겪기도 했다는 한국점자도서관. 그러나 이동도서관을 운영하고 인터넷 전자도서관을 개관하는 등 발전은 더디지 않았다. 2000년부터는 전 국민 20%에 달하는 독서장애인들에게까지 서비스를 확대하고, 촉각도서와 묵점자혼용도서를 포함해 다채로운 시도를 불사하며 장애인 독서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봉사활동을 총괄하는 김효선 팀장은 그러한 발전 가운데 봉사자들의 활약이 눈부셨다고 강조했다.
“점자도서를 만드는 방식도 일반도서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글자가 점자나 음성일 뿐이지요. 봉사자 분들은 책을 만드는 과정에 따라 입력봉사, 교정봉사, 낭독봉사를 하실 수 있습니다. 아, 서고를 정리하거나 기타 업무를 직접 방문하셔서 도와주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30%의 정부지원금이 있기는 하지만, 인건비를 모두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인 이곳에 봉사자님들의 손길은 큰 도움이 됩니다. 진진화 봉사자님은 그 중에서도 꾸준히 일해주신 고마운 분이지요.”

이제는 생활이 된 낭독봉사

8년 전, 어머니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던 진진화 강사는 가까운 곳에서 봉사할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한국점자도서관의 낭독봉사를 발견했다. 강단에 서는 일을 하고 있을 만큼 말하기에 재능이 있고,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던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곧장 한국점자도서관의 문을 두드렸지만, 의지만 가지고 무조건 봉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고. 김효선 팀장은 낭독봉사는 무엇보다 또렷한 발음과 특정 언어습관이 없는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까다로운 과정을 거친다고 전했다.
“선발과정이 있어요. 발음과 언어습관 체크는 물론이고, 아동도서 같은 경우에는 연기력도 있어야 하니까요. 선발된 후에도 A4 두세 장 분량의 안내서를 가지고 기본 발음과 대화체, 사투리 등을 연습하고 훈련합니다.”
녹음도서를 만들던 초기에 한국점자도서관에서는 낭독봉사 교육생을 모집하여 전문성우를 강사로 초빙하고, 4주 정도의 교육 수료 평가 후 낭독봉사를 시작할 정도로 엄격한 훈련과정을 마련하기도 했다. 현재는 편집자 부족 등의 이유로 낭독봉사자 모집을 하고 있지 않지만, 과거의 훈련과정만 언뜻 들어도 그 전문성은 짐작이 간다. 낭독봉사자에 합격한 후 진진화 강사는 그 명예가 빛바래지 않도록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한국점자도서관에 드나들고 있다. 실력도 많이 늘었다. 책에 따라 다르지만 아동도서는 하루에 두세 권도 거뜬히 낭독하고, 꽤 두꺼운 역사책도 막힘없이 읽는다. 지금까지 읽은 책만 해도 2백 권이 훌쩍 넘는다는 전언이다.
“이제는 저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의 발음을 살피곤 해요. 사투리를 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낭독에 도움이 될까 싶어 귀 기울여 듣기도 하고요. 시간이 날 때마다 사전을 찾아보며 발음도 들어봅니다. 이왕 할 것이면 잘하는 것이 좋잖아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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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처럼, 어렵지 않게 생각했으면

진진화 강사가 만드는 것과 같이 사람이 읽은 녹음도서인 ‘휴먼보이스’는 전자음성으로 녹음한 도서(TTS)보다 훨씬 인기가 많기 때문에 찾는 사람들도 많다. 수혜자를 직접 만나볼 수 없어 다소 아쉽지만,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자체로 교감한다는 증거 같다며 진진화 강사는 마냥 기뻐한다. 그녀의 ‘열혈 낭독’을 지켜봐온 주변 사람들도 낭독봉사에 흥미를 가지고 도
전해보기도 했다. 몇몇은 선발과정에서 아쉽게 탈락했지만, 합격해서 봉사를 진행한 친구들도 있었다고. 학창시절만 해도 봉사에 시큰둥하던 친구들도 직장을 다니면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어졌다며 물어보기도 한다.
“봉사라는 말 자체가 주는 어려운 느낌이 있어요. 나 같은 사람이 봉사를 할 수 있을까, 혹은 무엇인가 나눠야만 하는 것이 봉사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하지만 봉사가 아닌 취미활동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쉬워집니다. 제가 테니스 배우듯이, 영어학원 가듯이 한국점자도서관에 가는 것처럼요. 요즘 SNS로 일상을 많이 공유하잖아요. 뭘 먹는지, 누구와 있었는지 올리는 것처럼 봉사도 그렇게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한 번이 어렵다. 한국점자도서관 김효선 팀장은 ‘일단 한 번 가보겠다’며 망설임 끝에 온 봉사자들은 그 다음에도 방문한다며 미소지었다. 한국점자도서관은 이제 내년부터 전국의 점자도서관, 시각장애인 복지관과 정보를 교환해 통합서비스를 구축하고 불필요한 중복 제작을 막는 등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녹음실에서 차분하게 녹음되고 있는 책 한 권도 더 많은 사람들이 듣고 그 감동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알고 싶을 뿐이라는 갈매기 조나단의 음성이 다시 한 번 들려왔다. 더 높이 날고 싶어 발을 달싹대던 조나단의 마음은 어쩌면 더 알고 싶고, 더 읽고 싶은 모든 독서장애인들의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 만난 두 사람은 그저 봉사자와 관리자가 아니다. 마음 읽어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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