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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깃든 불국정토, 그 지극한 아름다움

  • 201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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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 석굴암, 다보탑, 한국수력원자력, 한수원, 문화재

주로 가는 길이다. 아니, 불국사로 가는 길이다. 문득 유안진의 시가 생각났다. ‘고개 떨구고 걷다가 다보탑(多寶塔)을 주웠다/국보 20호를 줍는 횡재(橫財)를 했다/(중략)/고개 떨구면 세상은 어디든 불국정토 되는가(하략)’ 살다보면 자신의 존재가치에 회의를 품게 되는 날이 있다. 10원짜리 동전처럼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듯’ 사는, 그저 그런 날들로. 그럴 때는 괜스레 다보탑 생각이 난다. 종내는 다보탑을 품은 불국사가 사무치고 마음은 금세 석굴암까지 올라 동해를 바라보곤 한다. 그래서 떠난 길, 길 끝에서 만난 불국사는 여전히 찬란했다. 오래 다보탑을 응시했다. 횡재인가, 마음이 풍요롭다.

그는 불국사를 식상하다 말했다. 그래서 부러 찾지 않았다 고백하기도 했다. 당연히 꽤나 여러 번 발걸음을 했겠지 짐작했더랬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가 불국사를 다녀온 건 고작해야 한 번, 중학교 때 수학여행이 전부였다. 30여 년 전에 가본, 까마득한 옛적의 불국사를 두고 식상하다니…. ‘한 번 가봤으면 다 본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과연 그럴까.

사실 불국사는 변한 게 거의 없다. 지척의 석굴암도 마찬가지다. 언뜻 보면 별 감흥이 없을 만도 하다. 하지만 아시는가, 그동안 불국사와 석굴암은 세계유산(1995년)이 됐고, 석가탑에서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1996년)됐다. 지난 2007년에는 극락전 처마 밑에서 황금돼지가 발견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 사람의 눈은 변한다. 같은 공간이어도 서른에 다르고 마흔에 다른 법이다. 아침이 다르고 낮이 다르다.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차츰차츰 눈에 들어오는 것도 이런 시선의 변화 덕분이다. 실제로, 어릴 적 흘깃 보고 지났던 불국사의 유물들과 석굴암이 ‘새삼 황홀하더라’는 이들을 여럿 보았다. 이만하면 불국사에, 석굴암에 다시 눈길을 둘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신라인이
현세에 펼쳐 놓은
부처의 나라

신라는 불교문화가 번성한 나라였다. 부처의 나라를 현세에 만들고자 했다. 경전에 나온 내용에 따라 불국(佛國), 즉 부처의 나라를 구현했다. 국내 다른 절들도 ‘부처의 터전’이긴 매한가지지만, 불국사가 특별한 건 감히 불국이라 이름 붙인 때문이고, 그 이름에 걸맞게 지극한 까닭이다. 그래서 경내를 도는 내내 함부로 들뜨지 않고자 했다. 그건 별일 숱하게 많았던 1,300여 년의 세월을 잘 버텨온 것들에 대한 경외이기도 했다. 불국사가 불국토의 상징이라면, 석굴암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절묘하게 빚어낸 걸작이다. 부처의 공간을 드러낸 것이 불국사이고, 부처의 시간을 빚어낸 것이 석굴암인 셈이다. 깨닫는 순간이란 무엇일까. 알 길은 없지만, 오래 가만히 마주하면 마음에 평화가 깃드니, 이 덕분일까 한다.

이른 아침 불국사와 석굴암을 찾았고, 해질녘에 다시 찾았다. 아침나절에는 어스름한 새벽빛에 신비감이 더했고, 저녁나절엔 붉은 노을 내려 분위기가 한층 장엄했다. TV다큐멘터리에서였나. 국보의 사명은 ‘낡은 채로 오래 유지돼야 사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을 지정해 보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는 않을지.

벌써 스물 두 해째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 됐다. 당시 유네스코는 불국사를 일러, 불교의 가르침이 잘 표현된 곳으로 아름답고 독특한 건축미를 지녔다 평가했다. 더불어 석굴암은 건축과 과학, 수리학과 기하학, 종교와 예술이 잘 어우러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유산이라 밝혔다. 보존 상태에 대한 평가도 높았다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낡은 채
오래 반짝거리는
돌들의 가치

불국사는 지어진지 1,300여 년이 됐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체로 751년에 창건해 774년에 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는 건물이 80채가 넘는 대가람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비교적 단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헷갈려 한다. 불국사의 공간 구성이 독특해서다. 불국사는 대웅전과 극락전, 관음전, 비로전, 무설전이 서로 흩어져 있지 않고 한데 모여 있다. 모두 높은 단 위에 놓여 있는 것도 도드라진 특징이다. 이들 불전이 담이나 회랑으로 둘러쳐져 있어 출입구가 극히 일부로 제한된 것도 눈에 띄는 점. 그래서 개방성과 폐쇄성이 동시에 느껴진다.

석가탑, 경주, 불국사, 한국수력원자력, 한수원, 문화재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석가탑을 일부 학자들은 완전무결의 탑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불전들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람들의 시선은 다른 곳에 더 길게 머문다. 목조건물 아래에 있는 석조 기단이다. 불국사는 임진왜란 때 기단만 남고 전소됐다. 대웅전 등 일부는 조선시대 때 세워졌고, 대부분은 1970년대 초에 복원됐다. 뭔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지만 이 또한 역사니 기껍다. 신라의 기단 위에 조선의 건물이 얹힌 형태니, 오히려 시간의 켜가 고스란한 느낌이다.

기단의 정식 명칭은 대석단이다. 간단히 말하면 돌로 쌓은 축대로, 현실세계와 부처세계의 경계다. 자연석을 그렝이공법으로 쌓아올린 아랫단의 자유분방함과 네모로 정교하게 다듬은 윗단의 단아함이 썩 잘 어울린다. 툭툭 튀어나와 전체를 받치는 돌못들과 아치형 홍예교의 우아함도 꽤나 섬세하다.

‘자주색 안개가 서린’ 자하문 앞에 섰다. 늙음을 뜻하는 백운교와 젊음을 뜻하는 청운교가 자하문을 통과해 대웅전으로 높다랗게 이어진다. 저 너머에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을 것이다. 좌측에 있는 안양문 앞에도 섰다. 안양문은 연화교와 칠보교란 1,300년의 시간을 거슬러 극락전으로 드는 문이다. “나무아미타불~” 누군가의 낮은 읊조림이 들렸다. 낡은 채로 오래 반짝거려온 이 돌길이 그녀의 기원을 부처세상으로 이어줄지도 모르겠다.

백운교와 청운교로 시작된 ‘돌의 빛남’은 석가탑과 다보탑에서 절정에 이른다. 우리나라 이형탑의 걸작으로 꼽히는 다보탑과 일반탑의 걸작으로 꼽히는 석가탑이 대웅전 앞마당에 나란하다. 화려하고 단순한 두 극단을 어떻게 한 공간에 배치했을까. 그 파격이 섬뜩하도록 아름답다. 오래된 두 역사가 그렇게 다정히 앉아 있는 걸 오래도록 바라봤다. 전체를 봐도 뜯어봐도 감탄이 절로 나는 1,300년의 시간이다.

홀로
독대를 청하듯
가만히 바라보라

불국사에서 3.3km의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 석굴암에 닿는다. 석굴암은 화강암을 가공해 만든 세계 유일의 인공석굴이다. 통일신라시대 조형물의 꽃으로 종교와 예술, 과학의 총화로 불린다. 그만큼 역사적으로도 세계적으로도 걸출한 조형물이다. 유리문 앞에 코를 박고 섰다. 본존불이 눈에 먼저 들어왔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천장과 벽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누군가는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고 했지만, 규모가 대수일까. 뭉뚝한 정으로 다듬은 본존불이 저 정도라니, 놀랍기 그지없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은 아예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라고. 조각의 세밀함이나 공간의 과학적 설계가 그토록 정교하다. 비록 지금은 일제강점기 때의 잘못된 보수작업으로 인공제습장치를 달고 있는 형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굴암은 충분히 매혹적이다.

석굴암, 감실, 부처, 경주, 불국사, 한수원, 한국수력원자력, 문화재

석굴암은 감실 안에도 부처가 조각돼 있다.

주실의 완벽한 균형미나 천장의 절묘한 공간미 같은 학술적인 용어들은 잠시 잊어도 좋다. 그저 천 년이 어제이고 하루가 천 년인 듯 생생한 본존불과 잠시 독대만 청할 일. 다보탑은 횡재 같고, 석굴암은 위로 같을 테니.

관람 포인트
불국사 : 1월 불국사 입장시간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 지다. 입장권을 소지하면 하루 동안은 출입이 가능하다. 주차도 마찬가지다. 불국사와 석굴암을 연계해 여행할 때는 버스로 석 굴암까지 간 다음, 석굴암을 둘러보고, 이후 불국사로 이어지는 트레킹코스(3.3km)를 걸어 불국사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www.bulguksa.or.kr/ 054-746-9913 석굴암 : 신도증 소지자가 전화로 예불 예약을 할 경우 전실 입 장이 가능하다. 석굴암 입장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표소에서 석굴암 경내까지는 도보 15여 분 거리다. www.sukgulam.org/ 054-746-9933
주변 먹거리
경주를 대표하는 맛의 강자는 ‘쌈밥’이다. 상추부터 곰취, 호박 잎, 양배추, 다시마까지 다양한 쌈거리가 10여 가지의 찬과 함께 나온다. 교동쌈밥(054-773-3322)과 삼포쌈밥(054-749-5776) 이 유명하다. 불국사와 석굴암 관람 중에 잠시 외출해 식사를 하 고자 한다면 북군동(보문단지 인근)에 있는 낙지마실(054-7490048)을 찾는 것도 좋다. 부드러운 낙지와 고소한 곱창, 탱글탱 글한 새우를 갖은 야채와 함께 볶은 낙곱새가 별미다.

글. 이시목(여행작가)
사진. 이시목ㆍ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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