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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영남일보 기획연재 ㅣ한국 에너지의 심장, 월성원전 제3화

  • 2014.01.03.
  • 1030
  • 지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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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수로의 비밀

 

캐나다로 떠나는 현경호 박사에게 최형섭 장관이 은밀하게 말했다

“각하께서 중수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걸 꼭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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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탄생한 캐나다 중수로

 기내 창문을 통해 검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간간이 흰 조각구름이 떠있을 뿐 하늘은 청명했다. 창밖에 시선을 던지고 있던 현경호 박사는 출국 전에 최형섭 과기처장관이 한 말을 기억해 냈다. 최 장관이 다섯 명의 조사단 일행에게 캐나다의 가압중수형(加壓重水型) 발전로인 일명 캔두(CANDU Reactor: Canada Deuterium Uranium Reactor)를 기술적 견지에서 잘 조사하고 오라는 당부의 말을 한 직후였다. 최 장관은 손짓으로 그를 따로 불러내 귓전에다 은밀하게 속삭였다. ‘각하께서 중수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셨다는 점을 잘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최 장관이 그런 말을 한 의도는 무엇일까? 어차피 이번 캐나다의 중수로에 대한 현지조사는 공정하고 면밀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캐나다 중수로의 개발 경위와 수출실적, 운전경험, 외자 조달 가능성과 경제성 등. 그런 마당에 원자력연구소 소장과 원자력학회 회장까지 지낸 경력의 최 장관이 조사단의 단장을 맡은 그에게 직접 박정희 대통령의 관심을 주지시킨 말에는 무언가 다른 의도가 깔려있을 법했다.

 “캐나다가 중수로를 개발하게 된 배경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현 박사의 상념을 깨며 통로 건너편의 노윤래 과장이 질문을 던져왔다. 한전의 기술 간부로 조사단에 참여한 그는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 오스트리아 원자력연구소에 2년여 근무하다가 귀국하여 한국원자력연구소에 연구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소위 원자력부문의 전문가였다. 캐나다원자력공사 총재인 그레이가 초청한 한국 측 조사단의 일원으로 선정된 것도 그런 경력 때문이었다.

 “대강은 알고 있습니다.” 현 박사의 오른쪽 옆자리에 앉아 있던 차종희 연구원이 대신 대답했다. 현 박사와 서울공대 1년 후배인 그 역시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원자력공학을 연구하고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거쳐 원자력연구소에 입사한 원자력계의 베테랑 연구원이었다. “그럼 경수로와 비교하여 중수로의 장점이 어떤 건지 잘 아시겠군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현 박사는 캐나다원자력공사가 중수로를 개발하게 된 전후사정을 떠올렸다.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영국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핵폭탄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때는 독일 공군이 영국을 집중적으로 폭격하던 시기였다. 연구에 어려움을 느낀 영국은 과학자들을 영연방인 캐나다로 보내 핵연구에 전념하게 했다. 그러던 중 세계대전이 끝이 났고, 과학자들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에 남아서 연구를 계속했다. 연구를 이끈 사람은 속칭 캔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물리학자 윌프레드 루이스(Wilfred Lewis) 박사였다.

 미국과 달리 중공업이 발달하지 못한 캐나다에서는 무게가 수백곘이 넘는 경수로나 가스냉각로를 제작할 방도가 없었다. 또 우라늄을 농축하는 데도 상당한 시설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중수로였다.

 자연환경이 좋은 캐나다에는 천연우라늄이 엄청나게 매장돼 있었다. 우라늄광석을 선별해 정련하는 과정을 거치면 천연우라늄을 얻을 수 있었다. 또 캐나다는 풍부한 수력발전량 덕분에 전기를 이용해 중수(重水)를 만들 여건도 충분했다. 중수는 그야말로 무거운 물이다. 산소와 수소의 분자구조가 다른 물로 일반 물에 약 7천분의 1쯤 포함돼 있다. 따라서 농축시설이 없던 캐나다는 천연우라늄과 중수를 감속재(減速材)로 한 원자로를 개발하기에 이른 것이다. 1947년에 처음 실험용 원자로(NRX: National Research X-metal or X-perimental)를 개발한 캐나다는 기술을 발전시켜 대만과 인도, 파키스탄을 비롯한 다수 나라에 원자로를 수출하는 국가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것이 이른바 캔두였다.

 “지난번 캐나다의 그레이 총재가 연구소를 찾아와 강연할 때 들은 바가 있습니다.” “핵연료 교환이 안전하고 자유스럽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18개월마다 한 번씩 원자로를 완전히 세운 뒤 한꺼번에 연료를 교체해야 하는 경수로에 비하면 중수로는 가동 중이라도 수시로 연료를 교체할 수 있다더군요. 따라서 발전설비 이용률이 높은 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핵연료는 ‘펠릿(Pellet)’이라고 부르는데 담배 낱개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직경이 1.22㎝로 백묵 크기와 비슷한 펠릿 한 개에서 4인 가족이 8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기가 생산된다. 중수로에 사용되는 연료봉(燃料棒)의 빈 통에는 이러한 펠릿이 29개가 들어간다. 이것이 핵연료다발이다. 이 연료다발을 원통형으로 묶은 게 작은 우라늄 덩어리인 ‘칼란드리아(Calandria)’가 된다. 따라서 수백 개나 되는 이 작은 우라늄 덩어리가 묶여 있는 중수로는 가동 중에도 일정량을 매일같이 조금씩 손쉽게 갈아줄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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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계획과 맞아떨어진 국제정세

 “그렇습니다. 게다가 우라늄 농축 재처리시설 및 그에 관한 제반 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뒤편 좌석에서 노 과장과 차 연구원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자가 얘기 중간에 끼어들었다. 핵연료분야의 국제적 권위자인 주재양 박사였다. 그는 올해 3월에 원자력연구소 제1부소장에 취임하여 근래에 신설된 특수사업담당의 책임을 맡고 있었다. 외국 연구소에 있다가 최 장관의 주선으로 원자력연구소에 오게 되었다는 얘기가 도는 사람이었다.

 불현듯 현 박사는 최 장관이 귀띔한 각하의 특별한 관심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 듯했다. 어쩌면 강직하고 민족주의적인 박 대통령의 의지가 작용한 것일 수도 있었다. 남북한이 대치한 상태임에도 닉슨 행정부는 걸핏하면 미군의 한국 철군을 외쳐댔다. 그런 이유들로 안보의 위협을 실감한 박 대통령은 미국정부의 한반도 안보정책에 의혹과 반감을 품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항구적이고 자주적인 한반도 방위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건 혼자만의 추측일 뿐이었다. 설령 박 대통령이 그런 놀라운 포부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주변상황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1956년 2월에 한국과 미국 정부 간에 체결된 원자력협정에도 원자력에 관련된 장비나 시설, 혹은 자재를 전쟁무기나 군사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었다. 또한 근래 들어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도 더욱 엄중해지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경수로보다 천연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중수로가 연료비에 대한 외화부담이 적은 편이죠. 또 미국에만 의존적으로 공급받는 농축우라늄에 비해 천연우라늄은 캐나다를 비롯한 다른 우방국들에서도 공급받을 수 있으니 연료공급의 안정화, 다변화를 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지한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머리 위의 안전벨트 사인등이 들어왔다. 이어 캐나다 밴쿠버에 착륙한다는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다섯 명의 조사단은 캐나다의 원자력발전소와 핵연료공장, 중수공장, 전력공사, 건설용역회사, 연구시설과 운영실태, 원자력 규제기관 등을 두루 둘러본 연후 토론과 질의를 거쳐서 합동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캐나다 중수로의 기술적 신뢰성과 안전성, 경제성, 연료비(천연우라늄)의 외화부담 경감, 장기적 관점에서의 연료의 안정적 공급과 확보의 용이성, 원자력발전에 관한 기술도입의 가능성 등 모든 면에서 긍정적이었다.

 이처럼 중수로에 대한 조사와 검토가 이어지던 1973년 8월. 캐나다 원자력공사가 용량 60만㎾급 가압중수로를 고려해줄 것을 서면으로 요청해왔다. 곧이어 기술사양 초안을 보내왔고 구매, 설계, 건설 전반에 걸친 역무공급절단구분(안)을 제시해왔다.

 때마침 10월에 제4차 중동전쟁으로 인한 제1차 석유파동(오일쇼크)이 일어났다. 아랍의 산유국들은 이 전쟁을 빌미로 ‘석유의 무기화’ 전략을 택하고 원유의 대량 감산을 단행했다. 원유 가격이 단기간에 4배로 폭등했다. 세계경제가 휘청거렸고, 경기불황과 인플레이션이 초래되었다. 석유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역시 커다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절약대책에 이어 원자력개발계획이 국가의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이를 눈치챈 캐나다 역시 적극적인 원전 수주활동을 펼쳤다. 캐나다는 계약협상에서 한국정부가 솔깃해할 제안을 꺼내들었다. 캔두형 원자로인 60만㎾ 가압중수로 2기를 사주면 연구용 원자로인 NRX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기술이전까지 모두 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미국과 대만에도 수출된 NRX는 다른 원자로에 비해 연구용 플루토늄을 추출해내기가 손쉬웠다. 한국으로선 사실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원자력발전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원전원료 재처리설비의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캐나다가 원전건설 계약에 이처럼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이면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당시 한국의 원전 구매 필요성을 알게 된 프랑스가 재처리기술을 제공하겠다며 나선 것이다. 이처럼 경쟁자가 생기자 캐나다는 계약을 서두르기 위하여 미끼를 던진 셈이었다.

 한국으로선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그해 11월 한전은 마침내 월성 1호기 건설을 위한 기본계획을 결정하고, 가압중수로의 도입을 서둘렀다. 구매의향서를 캐나다원자력공사에 발송하고 가압중수로의 도입을 본격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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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박희섭<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사진=한국수력원자력<주> 발간 ‘꿈의 에너지 아름다운 미래 : 원자력발전 삼십년사’

* 사진설명

 <본문사진1> 1974년 8월, 월성 1호기 도입을 위한 한전과 캐나다원자력공사 간 조인식이 열리고 있다. 캐나다의 원자력 관련 기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참화를 피해 캐나다에서 연구에 매진한 영국 과학자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본문사진2> 1978년 5월, 캐나다 원자력공사 로스 캠벨 회장이 한전을 방문해 김영준 한전 사장(오른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원전수출에 있어 프랑스와 경쟁하던 캐나다는 원전구입을 고려하는 한국을 상대로 기술이전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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