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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따라가는 여행] 월성발전소 근처 관광지를 소개합니다.

  • 201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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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발전소(경주) 근처 관광지 추천

천년 전과 천년 후를 잇는 찬란한 문화예술의 길

 월성1

 “경주를 제대로 보려거든 ‘최소한 한 달’은 머물러야 한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선생의 말씀이다. 그러니 경주에 가려거든 여유로운 시간이 허할 때, 발맘발맘 거닐며 느긋하게 노니시라. 천년 세월이 빚어낸 찬란한 문화유산은 단 며칠 머물며 급히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절대로 참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해서 992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던 ‘벽이 없는 박물관’ 경주는 아는 만큼만, 머무는 만큼만, 움직인 만큼만 보여준다.

  월성2

노천박물관, 지천으로 널린 것이 유적이요 보물이니

 국보 31개, 보물 82개, 사적지와 명승지 78개를 합하니 국가지정문화재가 총 212개다. 그 찬란하고 많은 문화유산을 천년 동안 보듬어 지켜온 곳이 바로 경주다. 그리고 그 문화유산들은 과거와 현재를 따로 분리하지 않고 조화롭게 섞여 균형을 이룬다. 명활산 옛 성터 아래로 흐르는 보문호에 조성된 보문관광단지 내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불국사와 석굴암, 경주역사유적지구인 남산지구, 월성지구, 대릉원지구, 산성지구, 황룡사지구 등이 아련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월성3

 현재와 과거가 가장 잘 버무려진 시내에는 천마총이 발견된 대릉원,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마다 축하연을 열었다는 안압지(임해전지), 진흥왕이 궁궐을 지으려다 황룡이 나타나 절을 지었다는 황룡사지, 경주 김 씨의 탄생설화지 계림,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지 첨성대, 원효와 자장의 흔적지 분황사, 신라의 역사와 문화예술을 압축시켜 담은 국립경주박물관 등이 천년 후 사람들 곁에서 머문다.  

월성4

  경주 외곽으로 나눠지는 동해권은 푸른 바다와 위대한 전설로 신비롭고, 김유신과 김춘추의 묘가 있는 서부권은 문화유적지가 몰려있지 않아 고즈넉하며, 양동마을과 옥산서원이 있는 북부권은 음양오행설에 따라 집을 지은 까닭에 여전히 평안하다.

  월성5

남산, 몽환의 소나무와 희망으로 새겨진 석불

안개 서린 몽환의 새벽, 삼릉 소나무 숲에 드는 것은 잠시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경지에 오르는 것과 같다. 존재가 미미하여 추측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던 세 명의 왕들이, 신라 말 그 혼란스러운 때 즉위하여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경애왕이 누운 자리에 뿌리내려 숲을 이루었으니 애달픔의 깊이가 까마득하다. 해서 삼릉 소나무 숲은 왕들의 한(恨)이 키우고 보호해 온 것이라 하겠다. 본디 고통 없이 열반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듯, 왕들의 한(恨)도 오랜 세월 품고 삭히니 절로 깨달음이 되어 함께 버텨온 소나무까지 영험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릉과 계곡과 돌다리가 있는 동쪽의 소나무 숲으로 가지만, 고요한 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서쪽의 소나무 숲으로 간다. 동쪽의 소나무 숲이 울울하여 풍경이 더 아름답지만, 서쪽의 소나무 숲은 여백의 미가 있고 찾는 이가 덜하여 마음을 편히 내려놓게 한다. 해서 사는 것이 퍽퍽한 사람들일수록 서쪽 소나무 숲으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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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아래로 소나무 숲을 품은 남산이 또 하나 귀하게 품고 있는 것이 있다. 풍파의 역사와 사계절 자연의 법칙을 거듭 거치며 천년을 버텨온 80여 개의 석불들이다. 나라와 피붙이들의 안녕을 바위마다 새긴 그 간절함과 마주하노라면 가슴에 돋은 가시가 가라앉고, 모난 성정이 둥글어진다. 아슬아슬한 산자락에 앉아 겨우 형체만 남은 석불도 있고, 머리와 귀와 팔이 잘려나간 석불도 있으며, 사람들의 못된 짓으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자 시멘트를 발라 보수하려다 추한 얼굴이 되고 만 석불도 있으나 그것을 그대로 보는 이들은 드물다. 그 흉한 모습 이전 ‘돌에 새겨진 희망’을 본다.

대왕의 전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감은사지(感恩寺址)를 보려거든 휘영청 달 밝은 밤에 가시라. 두 개의 3층 석탑과 주춧돌로 남은 절터와 마주하고 있으면 유홍종 선생의 말처럼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를 연발하게 될 것이니. 호국용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려고 비워둔 금당 초석과 기단 아래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니.

그리고 그 소리를 따라 이르는 곳이 감포 앞바다 대왕암(문무대왕릉)이다. 열십자 모양의 돌로 감은사지와 연결된 대왕암은 낮에는 물새들이 노닐지만 밤에는 무속인들의 기도터로 변한다. 해서 대왕암이 있는 밤의 감포 앞바다는 늘 무속인들이 피워놓은 촛불이 밝혀져 있고, 꽹과리 소리가 새벽까지 이어진다. 그 풍경이 불경하다 하여 단속도 해보았으나 좀처럼 무속인들의 발걸음이 줄지 않는지라 아예 경주의 볼거리로 만들어버렸다.

이견대(利見臺)에서 그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으면 사르락사르락 혹은 서걱서걱 대나무 소리가 들리는데, 우중에 그 소리를 들으면 몸이 움츠려든다. 무속인들조차 그러하다 하니 대왕암 자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 센 자리라는 말에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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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왕의 전설이 절터로, 수중릉으로, 망배(望拜)의 자리로 남겨진 것은 그 자체가 기묘한 일이라 어느 순간 소름이 돋기도 한다. 또한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호국정신은 영원히 살아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니 누구든 감은사지, 대왕암, 이견대를 바라볼 때는 그 눈이 범상치 않게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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