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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고리1호기 40년의 발자취

  • 201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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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0시, 지난 40년간 한국 산업화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고리1호기가 영구정지됐다. 국내 최초의 원자력발전소라는 역사를 쓰며, 우리나라 원전산업의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한 고리1호기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우리나라 원전 역사에 고리1호기가 남긴 기록과 원전 1세대 원로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 가치를 되짚어본다.

최초에서 최고로, 역사에 남을 눈부신 발전

국내 최초의 원전, 해외 수출 원전의 효시, 한국 산업화의 견인차…. 고리1호기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그만큼 고리1호기는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원전 역사의 한 획을 장식한 고리1호기의 기록을 키워드로 풀었다.

#희망의 첫 단추
국내 원전 역사의 ‘최초’에는 고리1호기가 자리한다. 고리1호기는 원전의 불모지에서 도전한 최초의 원자력발전소다. 우리나라는 1962년 ‘원자력발전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원자력발전 계획을 구체화하고 1969년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설계부터 시운전까지 원전 건설 공정을 맡겼다. 당시 우리나라는 원자력 불모지였다. 하지만 국내 에너지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원자력은 유망한 에너지원이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탄소 배출 부담을 덜고, 화력발전 같은 기존의 에너지원에 문제가 생기면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리1호기의 등장 배경에는 희망이 있었다.

#무고장 안전운전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위해서는 운전 경험이 중요한데, 고리1호기 상업운전 초기에는 비교적 고장 건수가 많았다. 1978년부터 1987년까지 총 79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후 10년마다 고장 건수가 줄어들었다. 2008년부터 최근까지는 고작 5건을 기록했다. 이전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줄어든 수치다. 그 이유는 1990년대 이후 설비 개선과 선진 운영 기법을 도입한 데 있다. 고리1호기의 건전성은 원전 이용률을 상승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올해 6월 17일에 3주기 연속 무고장 안전운전을 달성해 총 13회라는 최다 무고장 안전운전 기록을 세웠다.

#서민 에너지
고리1호기의 설비 용량은 총 58만 7,000kW다. 1978년 당시 국내 총발전 설비 용량인 659만kW의 9%를 담당하는 수치였다. 비로소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립을 이루었다. 특히 저렴한 가격은 원자력 보편화를 가져왔다. 고리1호기의 발전 단가는 9.21원/kWh. 화력발전 단가인 16원/kWh에 비해 무려 42%나 저렴했다. 고리 1호기의 이용률을 60%로 감안할 때 연간 210억 원의 발전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이득을 창출해내며 고리1호기는 국민과 국가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1,500억 kWh
고리1호기는 1971년 11월 착공했다. 당시 국내 총생산의 5%에 달하는 1,560억 원의 공사비가 투자된 국책사업이었다. 그러나 석유파동으로 공기가 지연됐고, 건설에 착수한 지 6년 만인 1977년에 완공했다. 고리1호기는 2007년 설계 수명인 30년이 만료된 후 안전성 평가를 거쳐 계속운전 10년을 허가받았다. 그 결과 40년 동안 전력을 공급했다. 지난 40년간 고리1호기의 발전량은 약 1,500억 kWh에 달한다. 이는 부산 지역 전체가 약 8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원전 해체
고리1호기 영구정지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 세계 상업용 원전 해체 시장 규모는 약 300조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가 고리1호기 해체 과정을 경험하면, 원전 건설부터 해체까지 원전의 한 주기를 모두 습득하게 된다. 다시 말해 해외 원전 시장에서 건설뿐 아니라 해체 과정을 작업할 수 있는 원전 강국으로 도약할 기회. 15년 이상 소요되는 고리1호기 해체 과정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에너지 수출국
우리나라는 원전 기술을 지원받는 나라에서 지원하는 나라로 발전했다. 그 근저에는 고리1호기가 있다. 고리1호기를 운영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 표준형 원전 OPR1000을 개발했다. 이어 APR1400을 개발해 100% 기술 자립을 이루어냈다. APR1400은 고리1호기와 비교해 발전량이 두 배 이상 커지고, 설계 수명은 60년으로 늘어났다. 건설뿐 아니라 운영 지원 계약까지 체결하면서 원전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다.

고리1호기와 동고동락한 사람들

고리1호기는 설계, 시공, 운영, 정비 등 모든 분야에서 최초였다. 당시 고리1호기 공정에 참여한 직원도 마찬가지. 직원들은 새로운 에너지를 도입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이었을 터. 처음이기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고리1호기에 대한 믿음과 추진력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이젠 역사가 되어버린 고리1호기의 산증인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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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전 한전 사장이 방송 인터뷰를 통해 건설 당시 고리1호기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리1호기 건설에 참여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이종훈 前 한전 사장(이하 이) 저뿐 아니라 고리1호기 건설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사명감과 긍지를 갖고 일했습니다. 그때 등 부분에 ‘고리원자력’이 새겨진 유니폼을 줬어요. 원래 발전소 안에서 입는 거였는데 밖에서 입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 시대에는 원자력 회사에 근무한다고 하면 신랑감으로도 최고였지요.(웃음)

처음 건설에 참여했을 당시 현장 모습은 어땠나요?

당시 저는 건설 부소장으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1975년 건설 현장에 내려갔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아직 비포 장도로였고, 창고를 개조해 사무실을 만들 정도로 열 악한 상황이었습니다.

처음이기에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고리1호기 공정을 처음 시작할 때 우리나라의 공업 기술 수준은 크게 발전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테면 용접사를 동원해서 용접할 일이 굉장히 많은데 두꺼운 강판에 용접할 수 있는 사람도 기술력도 없었어요. 그래서 영국 기술자들을 데려와 용접 학교를 운영하면서 많은 용접사를 키워냈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 산업계에 크게 기여했고, 또 이 사람들이 조선산업을 일으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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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이 고리1호기를 방문해 당시의 모습을 회상했다.

우리 기술이 세계 원전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석유파동이 일어났을 때, 공사를 진척하기 위해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고 한전 직원들도 고리1호기 경영에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이 계약을 통해 우리는 최신 경영 기법을 배우고 또 설계에 대해 깊이 배우게 됐지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리3·4호기 건설 때는 우리가 책임지고 우리의 기술로 분할 발주 계약 방식으로 건설했습니다. 이후 한빛3·4호기(당시 영광 3·4호기) 건설 때 원자로 설계 기술을 도입해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을 완성 단계로 끌어올렸습니다. 현재는 우리 기술을 UAE에 수출까지 하게 됐고요. 이러한 발전의 중심에는 고리1호기가 자리하고 있어요.

고리1호기 영구정지 소식을 접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회자정리라는 말이 있듯이,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겠지요. 헤어지는 게 아쉽긴 하지만 좋은 기회가 될 테니 괜찮습니다. 고리1호기 건설도 당시에는 원전 자 체가 생소했지만, 기술을 익혀서 고리3·4호기를 건설 하고 해외 진출까지 했습니다. 후배들이 고리1호기 폐 로 작업을 하면서 더 많은 경험을 쌓아 원전 해체 기술 을 수출하는 데 기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리1호기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요?

정보헌 前 한전 전무(이하 정)  고리1호기 시운전 반장으로 일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전문가들이 우리 집을 지어주면 우리는 그 집이 잘 지어졌는지, 또 설계대로 꼼꼼하게 됐는지 확인하면 서 시운전을 한 것이죠. 이를 위해 당시 우리는 미국에서 6개월간 시운전 요원으로 훈련을 받고 왔습니다.

미국에서 훈련받을 때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정 시운전 요원 24명이 미국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엘리트들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전부 영어에 정통한 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원자력발전소의 특수한 용어들을 영어로 강의하는데, 이해하기 쉽지 않죠. 그때 밤을 꼬박 새워가며 참 열심히 공부했는데, 훗날 그게 자산이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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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원로와 김형섭 새울본부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고리1호기 시운전과 지금, 달라진 모습이 있다면요?

정 당시에는 외국 기술자들이랑 같이 보니까 절차서를 영어로 작성했어요. 먼저 영어로 쓴 다음 한국어로 다시 번역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한국어로 쓴 다음 영어로 번역하더군요. 순서가 바뀌었죠.(웃음)

고리1호기 발령 당시 현장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정 1974년에 시운전을 하러 고리1호기에 발령받았는데, 막상 와서 보니 건설이 끝난 상태가 아니었어요. ‘우물우물하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것도 잊어버리겠다’ 싶어서 창고 같은 사무실 한 공간에 합판으로 제어반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제어반 계기 사진을 찍어서 오려 붙였지요. 이렇게 만든 모의 제어반으로 교육을 했는데, 교육시킬 사람이 없으니 우리끼리 한 사람씩 돌아가며 선생님 역할을 했지요.

우리나라 원전 역사에서 고리1호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정 전력 생산은 산업 발전을 위한 밑거름입니다. 고리 1호기가 여기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껴요. 또 우리나라가 비록 원자력을 늦게 시작했지만 폐로 기술에는 한발 앞선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고리1호기 영구정지 소식을 들은 소감이 어떤가요?

정 고리1호기는 제가 정성을 쏟았던 발전소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안타깝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섭섭하기도 한 심정입니다. 고리1호기가 잘 운전됐던 것처럼 폐로 과정도 잘 진행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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