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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예술의 융복합, 미디어아트로 통한다

  • 2017.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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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의 미래는 단순히 미디어아트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백남준 작가가 지금 시대의 우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TV를 택했듯, 예술이 그런 것이다. 바로 우리의 삶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 이에 대해 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은 한 마디로 압축했다. 바로 예술과 생활의 경계는 점점 없어질 것이라고. 과거 우리 선조들의 삶이 곧 예술이고 신앙이 곧 미술이었듯, 앞으로 우리의 삶에 예술은 일상이 돼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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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최초의 디지털 작곡가 스콧 조플린’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생각해 보자. 과거 신석기 시대, 동그란 원형의 벽화를 보며 우리는 풍성한 삶을 기원하는 그들의 염원이 그림에 압축돼 있다고 당시의 삶을 유추한다. 원형의 그림은 그들에게 신앙이었으며, 생활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며 ‘아름다움’에 대한 본격적 논의가 이뤄졌다. 이 시대에 대해 19세기 스위스 역사가 부르크하르트는 저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통해 ‘인간생활 전 분야에 걸친 문화 혁신 운동’이라고 해석했다. 예술이 대중화되면서 하나의 전 세대적 문화가 됐다는 것이다.

복제시대의 예술

시대와 시대를 거쳐, 지금 21세기에서는 새로운 예술 장르가 주목받고 있다. 미디어와 아트를 결합한, ‘미디어아트’가 바로 그것이다. 물감의 자리에 디지털 코드가, 캔버스 대신 커다란 프로젝션이 존재하고 있다. 작가의 사상을 구현하는 매개체가 선형에서 비선형으로 완전히 바뀐 것이다.

선형에서 비선형으로 옮겨가다보니 작품 안에서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할 수 있었다. 덕분에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개개인은 자신만의 작품을 안고 돌아갈 수 있었다. 즉, 예술가가 창조한 작품은 하나지만 수 천, 수 만 가지의 모습으로 해석되고 완결된 것이다. 이는 미디어아트이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였다.

이에 대해 이 관장은 “복제의 시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모더니즘시대까지는 누구의 작품인가가 매우 중요했다. 작가의 오리지널리티를 중요시 여겼으니까. 하지만 6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 들어오면서 사회 자체가 원본성이 아닌, 복제시대의 예술로 옮겨가고 있다. 복제가 원본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제시대의 예술은 한 작가의 같은 작품을 두 곳에서 전시할 수 있게 했다. 같은 작품을 보지만, 관객에 따라 전혀 다른 두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회화와 같은 기존 예술 작품이 작가에 따라 의미만 변화됐다면, 미디어아트는 실제 그 형태가 변화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예술과는 매우 다른 의미를 갖는다. 더불어 작품 그 자체만으로는 미완결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관객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고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이 관장은 과거에 비해 작가의 역할이 바뀌었다고 언급하며 “역으로 생각하면 감상자의 역할이 바뀐 것이다. 과거에는 감상자가 완벽하게 감상만 잘 하면 됐지만, 지금은 능동적인 관람객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요즘 미술관들이 모두 ‘참여’를 외치는 것이다. 문화가 바뀌면서 관람객의 역할도 바뀌고, 모든 게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감의 난항? 우리 세대 이야기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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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 ⓒ황정은

솔직히 생각해 보자. 당신은 과연 미디어아트에 진정 공감하는가. 프로젝션을 통해 빛이 벽에 쏘이고, 영상이 무한히 반복되는 영상 예술품을 접한 당신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는가. 작가의 세계를 더듬어 올라가는 작업을 행하게 될까, 아니면 아리송한 얼굴로 작품을 뚫어지게 응시한 뒤 ‘패스’하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갈 것인가.

애석하게도, 우리 사회에는 후자의 경우가 더 많다. 아직은 미디어아트의 대중 공감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과연 대중이 미디어아트에 친근감과 공감을 갖는 것이 가능할까.

이 관장은 이는 단지 우리 세대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어른들은 미디어아트에 공감하는 게 당연히 어렵고,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경계에서 삶을 맞이한 세대는 이성으로서의 이해는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감성의 합일점을 찾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디지털과 함께 살아온 어린 세대는 미디어아트를 자신들의 예술로 여길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나만해도 어린 시절 박물관에 가면 전시품을 제대로 안 봤다. 나와 너무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박물관이 더욱 좋아지더라. 이것처럼 지금 어린아이들은 영상 세대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그림을 보면 박물관에 간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과거에 인상파가 출연했을 때도 처음에는 그것을 이해 못했지만, 지금은 정서적으로 좋아하지 않나.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미디어아트가 바로 그렇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들에게 익숙해질 것이다. 이미 시대가 많이 변했다. 현재 미술관에는 영상작품을 볼 수 있도록 의자를 마련한 곳들도 꽤 있다”

이 관장은 미디어아트를 이야기하면서 영화를 자주 언급했다. 영상을 활용한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거니와 지금의 미디어아티스트가 ‘필름메이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예술의 개념이 곧 기술인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멋있게 만들면 예술품이 되고 잘 만들면 제품이 된다. 지금은 멋있으면서 동시에 잘 만들어야 한다. 이미 예술은 우리의 생활 속에 들어가 있다. 영화와 매우 흡사하지만, 영화와 또 다르다. 영화감독이 관객을 생각하며 작품을 판매하는 데 목적이 있는 반면, 미디어아티스트는 판매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그게 차이다. 아직까지 우리가 찾는 것은 순수와 본질이다. 이러한 순수성이 예술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지점 아닌가”

과학과 예술의 융복합, 결과보다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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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다큐멘터리 ‘지단, 21세기의 초상’ ⓒ위키피디아

 

그는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의 다큐멘터리 ‘지단, 21세기의 초상’에 대해서 언급하며 융복합을 설명했다. 이 작품은 2005년 4월에 치러진 스페인 비야레알과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를 총 17대의 카메라로 찍은 90분짜리 다큐멘터리다. 15대의 35mm 고성능 카메라와 미군으로부터 제공받은 두 대의 슈퍼 확대 카메라를 동원해 지단의 움직임을 좇는 영상이다.

“필립 파레노는 지단을 찍어 깐느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다. 파레노는 예술가다. 사실 이것이 과학과 예술이 만난 경우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과학자들은 종종 미술과 과학이 만나서 무엇을 하느냐고 묻곤 한다. 결과를 궁금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융복합은 결과보다 과정이다. 과학과 미술이 만나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 과학자들에게도 ‘1+1=2’라는 사고방식보다 ‘1+1=2.5’라는 사고방식이 필요한 시대가 올 것이다. 때문에 과정이 소중한 것이다”

이 관장은 백남준의 TV를 이용한 미디어아트는 그만의 언어를 만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서양인이 서예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듯, 물감 등의 다른 모든 도구를 사용한 백남준이 자신과 가장 잘 맞는 ‘매체’로 TV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술이 됐다.

“앞으로 미디어아트는 활성화 될 수밖에 없다. 시대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예술이라는 개념이 미래에는 지금과 다를 수 있다. 현재도 자세히 보면 박물관과 미술관의 모습이 비슷해지고 있다.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은 현대와 접목 중이고, 현재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은 ‘히스토리’를 가져온다. 어쩌면 앞으로 미술관은 없어질 수도 있다. 예술이 고정된 개념이 아닌 유동적 개념이 되기 때문이다”

과학과 예술의 만남은 결코 결과가 보장된 작업이 아니다. 제3의 사고작용이 작동돼야 진행가능한, 새로운 영역의 예술인 것이다. 현재 미디어아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이 우리 삶에 들어와 있다. 미디어아트가 제시하는 새로운 예술적 관점으로의 귀 기울임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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