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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모형 문제를 해결해 핵분열 이론을 세운 과학자 ‘닐스 보어’

  • 201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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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마선을 발견한 과학자 ‘러더퍼드’를 기억하시나요?
러더퍼드는 원자핵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다는 원자모형을 제시했으나, 그가 말한 원자모형은 원자가 오랫동안 안정된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러더퍼드의 원자모형 문제를 해결한 과학자가 덴마크 출신의 물리학자 ‘닐스 헨리크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입니다.
원자모형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원자핵 분열 이론을 세운 과학자 닐스 보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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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보어는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생리학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옛 친구인 철학자를 동경해 한때 철학에 심취했으며, 19살에 코펜하겐 대학에 들어가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닐스 보어는 해마다 열리는 덴마크 학술원 논문 공모에서 ‘여러 가지 액체의 표면 장력 측정’이라는 제목으로 금상을 입상했으며, 1911년에는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학위를 받은 직후 맥주회사 칼스버그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교 캐번디시 연구소로 유학을 떠났다가 러더퍼드를 만나 맨체스터대학으로 옮겨간 뒤 그와 함께 연구하며 원자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다 원자의 구조에 대한 이론을 만들었고, 그 이론을 바탕으로 수소원자에서 나오는 빛을 설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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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더퍼드가 주장했던 원자 모형은 태양계와 비슷합니다.
마치 태양 주위를 여러 개의 행성이 돌고 있듯이 원자핵 주위를 가벼운 전자들이 돌고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태양계와 원자의 구조가 비슷한 것은 두 체계를 구성하는 힘이 모두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력과 전기력은 전혀 다릅니다. 중력이 작용하는 행성들은 태양 주위를 돌아도 에너지를 잃지 않지만,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는 전하를 가지고 있어 원자핵 주위를 돌면 전자기파를 방출해 에너지를 잃게 돼 결국엔 전자가 원자핵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됩니다. 따라서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에 의한 원자는 오랫동안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것이 보어의 원자모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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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어는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이 발전시키고 있었던 양자화 가설을 원자모형에 도입했는데,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는 모든 에너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띄엄띄엄한 값을 가지는 안정된 상태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가정이었습니다. 이럴 경우 원자핵을 돌고 있는 전자가 전자기파를 방출하지 않기 때문에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또 전자는 빛을 방출하거나 흡수하여 에너지를 잃거나 얻는데, 보어의 원자모형에 의하면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 궤도는 원자핵에서 먼 궤도일수록 큰 에너지를 갖기 때문에 전자가 아래 궤도에서 윗 궤도로 가려면 에너지를 흡수하고, 윗 궤도에서 아래 궤도로 떨어질 때는 빛의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하게 됩니다. 이로써 보어는 원자모형을 이용해 수소 원자가 내는 스펙트럼의 진동수를 설명해 내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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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어는 코펜하겐대학에서 이론물리학 교수로 재직하며 원자구조 이론을 만든 공으로 192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됩니다.
1938년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에서는 오토 한과 스트라스만에 의해 원자핵 분열이 발견됐는데, 때마침 초청ㄴ을 받아 미국을 방문했던 보어는 이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프린스턴대학의 휠러(A. Wheeler)와 함께 핵분열 이론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다 아돌프 히틀러를 이기기 위해 원자폭탄의 개발이 필요하며 개발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핵개발 내용을 미국, 영국, 소련이 다 같이 공유하고 관리해 원자폭탄의 무차별 확산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내용을 대통령에게 전하고, 이에 동의한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영국의 처칠 수상을 설득하라는 임무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1943년 히틀러가 덴마크를 점령해 보어는 스웨덴과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소련의 물리학자 피터 캇피쳐(Peter Kapitza)는 보어에게 ‘갈 곳이 없으면 도와줄 테니 모스크바로 오라’는 한 통의 편지를 보냅니다. 그러나 보어는 이미 코펜하겐 연구소를 떠난 상태였고, 편지는 스톡홀름을 거쳐 런던 대사관까지 전송되고 맙니다.

이로 인해 영국의 처칠 수상은 보어가 원자폭탄 개발 비밀을 모스크바에 전달한 뒤 그 일을 합리화하기 위해 영국에 온 것으로 오해하게 됩니다. 때문에 1944년 9월 미-영 수뇌회담에서는 보어를 조사한 뒤 구속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거론됐고, 두 수뇌들의 보좌진들이 처칠을 어렵사리 설득해 보어는 구속을 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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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핵 확산 방지에 관한 국제협력 체계 수립은 무산됐고, 강대국들의 핵개발 경쟁이 치열해집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조국 덴마크로 돌아온 보어는 자신의 비서처럼 데리고 다니던 아들 아게 보어(Aage Bohr)에게 연구소를 물려주고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게 보어는 1975년 원자핵의 구조에 관한 연구 공헌으로 아버지 닐스 보어에 이어 2대째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합니다.

원자핵 분열 이론을 세운 과학자로만 알았던 닐스 보어에게 핵 문제로 인한 고단한 여정이 있었다니 새롭고 신기할 따름인데요, 3대에 걸쳐 과학자 집안을 이룩한 ‘보어’들의 업적이 참으로 대단하고 멋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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