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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사탐험]한성전기회사, 개화 앞당긴 최초의 민족기업

  • 201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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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16년 전인 1898년 1월 26일. 이날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기업인 한성전기회사 설립일이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1월, 회사 창립기념 일을 이날로 변경하고 전력사업 115주년기념 선포식을 가졌다.


한전은 1961년 7월 1일, 당시 남한의 전기 3사였던 경성전기와 조선전업, 남선전기를 통합, 한국전력으로 발족해


대한민국 산업의 동맥으로서 역할을 착실히 수행해왔다. 한성전기회사는 우리 전력계가 소중히 보존


계승해야 할 공동의 자산인 것이다.

 

조선말. 신문명이 물밀 듯이 들어오던 어느 날, 나라 안이 발칵 뒤집혔다. 단발령이 내려진 것이다. 백성들은 술렁거

렸고, 임금은 솔선해서 자신의 단발을 감행하는 한편 조정 대신들에게도 시행토록 하명했다. 신체발부는 곧

부모와 동격으로 여겼던 백성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로부터 얼마 후 백성들은 또 한 번 천지가 개벽하는

놀라운 일에 직면했다. 서울 장안에 전차가 다니면서 가마와 인력거들이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대중교통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얼마 후 전차 정거장에 신기한 불이 켜졌다. 밤을 대낮같이 밝혀준

이 신기한 전등은 장안의 구경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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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을 깨우치며 대중교통시대 연 ‘전차’

 

한성전기회사는 설립과 함께 첫 사업으로 전차사업을 운영했다. 전차는 낮에만 운영하다가 야간에도 연장

운행하기로 하고, 종로의 전차 정거장과 매표소에 조명을 겸한 3개의 가로등을 밝혔다. 1900년 4월 10일의 일이다.

이날은 우리나라 민간 전등 점화의 시초로써, 국내 전력계는 이날을 ‘전기의 날’로 제정(1970.12.5.상공부령 제333호),

기념해왔다.

 

이 신기한 문명의 빛을 사람들은 ‘귀신 불’이라고 했다.등잔불을 끄듯이 입 바람으로 전등을 끄고자 해도

소용없었다. 남정네들은 가로등이 켜진 길목을 지날 때마다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아낙네들은 쓰개치마로

가렸다. 전등을 쳐다보면 귀신이 붙거나 부정을 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최초의 선교사 알렌(H.N. Allen)이 쓴 「Things Korean」(1908년)을 보면, 서울 장안의 전차는 민중의 의식을

일깨우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루는 양반으로 보이는 승객이 전차에 오르기 전 머슴에게

농사일을 지시하고 있었다. 발 하나는 전차에 올려놓은 상태였지만 전차는 양반을 기다리지 않고 출발했다.

머슴에게 지시가 채 끝나지 않은 양반은 “여보! 여보! 좀 기다리시오!”하고 외쳤으나 전차는 양반의 말을 듣지

않고 ‘땡땡땡…’ 경종을 울리며 출발한 것이다. 양반은 전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른 한 발로 절뚝거리며

쫓아가다 그만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전차가 양반을 몰라보다니, 얼마나 무엄한 존재인가.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종로에서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등 서울 장안을 누비는 전차는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고 제시간에 출발한다는 사실을! 그러면서 문명사회로 이끌려갔다. 바야흐로 개화기(開化期)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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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단독 출자한 왕실기업

 

한성전기회사는 은둔의 나라 조선의 근대화를 촉진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가져다줬다. 고종은 일찍부터

서울시내의 전기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1896년 말 선교사겸 주한미국공사 알렌(H.N. Allen)

과 경인철도부설공사의 청부인으로 내한해 있던 콜부란(H. Collbran)과 접촉, 서울시내의 전기사업을 왕실의

기업으로 설립하되 시공과 운영은 콜부란이 맡도록 합의했다.

 

당시 한반도는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대립되고있는 만큼 러시아 등 열강에 대해선 비밀을 유지, 간섭을

피하기 위해 관계와 재계에 영향력이 있었던 이근배(李根培), 김두승(金斗昇) 두 사람 이름으로 1898년

1월 18일자로 한성전기회사의 설립과 서울시내의 전차,전등, 전화사업의 시설 및 운영권을 정부에 신청했다.

그리고 같은 해 1월 26일자로 농상공부대신의 허가를받았다. 경복궁에 전기가 점등된 지 11년 만의 일이다.

 

고종이 이 사업을 왕실의 기업으로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다음 사실로 요약할 수 있다. 고종은 경복궁의 전기점등

이래 전기사업에 대한 남다른 이해와 관심을 갖고 있었다.전기사업을 통해 나라의 근대화가 촉진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또한 전기사업의 시공과 운영권을 미국인에게줌으로써 나라와 왕실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는 청국이나 일본을 견제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 원본글 보러가기 ‘수차와 원자로 1월호’ http://ebook.khnp.co.kr/Viewer/4OF8ILM6RQBC

 

 송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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