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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영남일보 기획연재ㅣ한국 에너지의 심장, 월성원전 제5화

  • 201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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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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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에너지심장 월성원전

(5)역경과 도전 늦어진 공기를 단축시켜라

 

“새 콘크리트 공법을 찾았습니다”… 손도 못 대던 격납건물 21일 만에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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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로 격납건물, 新공법으로 해결

 월성 1호기(67만8천700㎾) 기공식이 열린 것은 1977년 6월15일이었다. 월성군 양남면 현지에서 장예준 상공부장관과 문태준 국회상공위원장, 김영준 한전사장, 존 스타일스 주한 캐나다 대사 등 관계자와 주민이 모여든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됐다. 기공식을 마친 다음부터 공사는 신속하게 추진됐다. 당초 계획보다 부지선정이 1년이나 늦어지는 바람에 공사기한을 맞추기가 촉박했기 때문이었다.

 묵묵히 하다보면 반드시 뜻을 이룬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처음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황량하고 어수선했던 건설현장은 시일이 지나면서 조금씩 대역사(大役事)의 모양새를 갖춰갔다. 초기 대비공사 중의 하나인 부지정지(整地)로 조성된, 약 200만㎡(63만평)의 드넓고 평탄한 건설현장에는 원자로 격납용기가 들어설 자리를 중심으로 반구형 콘셋 자재창고와 사무실이 정연하게 늘어섰다. 그 옆으론 공사 인부의 숙소로 쓰이는 컨테이너와 조립식 건물이 곳곳에 들어섰다. 또 격납건물과 얼마간 떨어진 남쪽 방향에는 외국인용 주택과 한전 직원용 아파트가 들어설 주택단지가 조성됐다.

 전망이 탁 트인 해안에는 3천t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규모의 10.5㎞의 호안 및 물양장, 방파제 축조공사가 이루어졌다. 수백여t 중량의 원자로며 증기발생기, 터빈발전기를 손쉽게 운반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그 외 부산에서 하역된 건설자재를 공사현장까지 운반해오기 쉽도록 6㎞의 이설(移設)도로가 건설됐다. 또 그해 10월에는 원자로건물 기초 콘크리트 타설이 이루어졌다. 이런 상태로만 간다면 약정한 기일 내에 공사를 마칠 수 있을 듯했다.

 “소장님. 드디어 새로운 배합공법을 찾아냈습니다.” 벌컥 사무실 문이 열리고, 뛰듯이 실내에 들어선 자는 박용택 건설과장이었다. 쏟아지는 빗속을 뛰어왔던지 안전모와 어깨가 축축이 젖어 있고, 사무실 바닥에 점점이 흙발자국을 찍어놓았다.

 “그게 정말이오?” 현장 청사진을 들여다보던 소장이 반문했다. 소장과 함께 공사 진행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누던 사무실 직원이 놀란 얼굴을 하고 소장과 박 과장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시험 결과 완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 공사에 들어가면 됩니다.” 만면에 희색을 띤 박 과장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천만다행입니다. 그럼 오늘이라도 당장 공사를 재개합시다.” 소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곁에서 듣고 있던 직원들이 손뼉을 치며 반겼다. 소장과 박 과장이 무슨 일로 그러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6주 전쯤, 원자로 격납건물 축조공사에 문제가 발생했다. 원자로 격납건물은 압축콘크리트 구조물로 높이 42.2m, 외경 41.6m, 두께 1.07m의 벽체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당시 국내에서는 쓰지 않던 슬립폼(Slip-form) 특수공법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슬립폼 공법은 원자로 격납건물 벽체를 사이에 둔 원형 거푸집을 철구조물에 연결, 24시간 연속해서 유압잭으로 거푸집을 올려가며 철근조립 및 매설 철구조물을 설치하고, 콘크리트를 타설함으로써 벽체를 단일구조물로 축조하는 신공법이었다.

 이 공법을 사용할 시 철근조립 및 매설 철구조물의 구간별 조립시간이 서로 달랐다. 그래서 지연제(遲延劑) 시멘트를 혼합하여 응결시간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현대의 시멘트(타입 V)를 시험한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알칼리 함량조건(0.7% 이하)이 맞지 않을뿐더러 경화(硬化) 시간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배합설계(Mix-Design)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로 인해 공사는 준비만 끝낸 채 중단되었다. 한마디로 비상사태였다.

 그날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장 6주간에 걸친 시험이 실시되었다. 약정된 공사 기일을 생각하면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멘트 10종과 지연제 5종을 교차 시험한 결과가 오늘 나타난 것이다. 일본의 ASO 시멘트와 응결 지정제 Daratard-17을 혼합한 배합설계가 공사 요구조건을 충족시켰던 것이다.

 곧장 중단되었던 격납건물 축조공사가 재개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격납건물이 형체를 갖춰갔고, 착공한 지 21일만인 6월30일에 완공되었다. 원자로 건물 벽체축조에 신기록을 수립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원전건설에 대한 자료나 기술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터라 월성원전 1호기는 계약자 주도방식인 일괄도급방식(Turn-Key)으로 추진되었다. 따라서 원자로의 설계, 구매, 설치, 시운전, 품질보증, 운전원 훈련, 초기 노심용 연료 및 중수로 공급 등을 캐나다원자력공사가 담당, 수행했다. 또 영국의 파슨스 및 GEC사가 터빈 발전기와 급수가열기 및 변전설비의 공급과 설치 감독을 맡았다.

 계약은 캐나다원자력공사, BBM과 한전 간에 별도의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캐나다원자력공사는 이들의 하도급계약자인 CANATOM,ACRES-CANATOM, NCM을 통해 자재를 공급받았다. 캐나다원자력공사는 자재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PMMIS(The Project Material Monitoring Information System)라는 자재관리제도를 사용했다. 이 제도는 수요결정과 공급결정, 수급결정 및 인수현황 파악, 수급차이 분석 및 공급차이 분석 이렇게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구매업무를 합리적으로 하려는 제도였지만 건설 전반부에 비해 건설 후반부에는 이를 활용하기 어려워 공기에 다소의 악영향을 초래했다.

 따라서 나중 한전은 공기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캐나다원자력공사가 임의로 이용하던 항공운송제도를 일부 변경하여 대한항공으로 일원화했다. 이것은 외자의 절감과 신속한 자재수송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탈유전원개발시책(脫油電源開發施策)이란 국가적 방침 아래 공기단축을 위해 전 한전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지식과 정성을 다해 움직였던 것이다.

“저 엄청난 중량의 원자로를

“무슨 수로 내부로 옮기나요”

“운반로에 콘크리트 타설 뒤

“凹자형 철로 설치해 이동…”

韓 창의력에 해외 기술진 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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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창의력, 캐나다 근로자 감탄

 “무슨 수로 저 엄청난 중량의 원자로를 격납건물 내부까지 옮기렵니까?” 11월 중순의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현장에 나와 있던 캐나다인 감독이 근심스러운 얼굴을 하고 소장에게 따지듯 물었다. 소장은 말없이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맘모스 로고의 원자로를 쳐다보았다. 총 중량이 500t이 넘는 원자로는 보기만 해도 주눅 들 지경이었다. 워낙 공기에 쫓기는 처지여서 일단 조립작업을 지시해놓기는 했지만 이처럼 또 다른 난제가 기다릴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캔두형 원자로는 중량이 약 250t이나 나가는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이었다. 이 원자로의 몸체를 콘크리트 구조물인 원자로 차폐조(遮蔽槽)에 고정시킨 작업을 한 다음에 역시 250여 t이나 되는 380개의 핵연료관을 설치하는 게 종래의 표준 작업절차였다.

 그러나 1979년 6월23일, 태평양을 건너온 중량물 운반선 해피러너(Happy Runner) 호가 원자로를 비롯한 주요 기자재를 하역 완료한 무렵엔 이미 공정이 19주나 지연된 상태였다. 늦어진 공기를 만회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원자로 차폐조의 토목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와 별도로 옥외에 긴급 가설한 임시건물 안에서 핵연료 압력관 조립작업을 병행 실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조립작업이 끝난 원자로를 보니 그 중량이 상상외로 어마어마했다.

 “걱정 마십시오.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낙천적인 성격이라 일단 대답은 해두었지만 내심 걱정스러웠다. 500t 중량의 거대한 중량의 원자로를 40m나 떨어진 격납건물 내부까지 옮겨 넣을 일을 생각하니 막막했다. 더욱이 원자로는 운반 도중 충격이나 진동은 금물이었다. 원자로 내부 접합부에 균열이나 이상이 발생할 수 있었다. 현장의 무른, 진흙 섞인 사토질 지반도 문제였다. 원자로 무게인 500t의 중량을 지지하기 어려웠다. 이것저것 생각하니 식욕마저 달아날 지경이었다. 허나 다행하게 소장의 걱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밤늦도록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해결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던 중 기계과의 오용식 과장이 의견을 냈던 것이다.

 “그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수평 슬립폼 공법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겁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간단하면서 기발했다. 임시건물에서 격납건물 내부까지의 운반로에 견고한 기초 콘크리트를 타설한 다음 그 위에 요(凹)자형 철로를 설치, 시간당 10m의 속도로 운반하도록 하자는 의견이었다. 소장은 오 과장의 아이디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는 직원들에게 서둘러 일을 추진할 것을 당부했다. 다음날부터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하던 캐나다 감독과 직원들은 원자로 운반 작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는 걸 보고 탄성을 흘렸다. 캐나다 감독은 소장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한국인들은 정말 머리가 좋습니다. 창의력이 대단합니다.” 원전연료 압력관 제작이 완료되고 9일 뒤인 11월24일, 드디어 500여t의 원자로를 격납건물 내로 이동 설치하는 작업이 현장직원들의 환호 속에 완료되었다. 한국인 특유의 도전정신과 뛰어난 창의력으로 또 한 차례 어려운 역경을 넘어선 것이다.

글=박희섭 <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참고문헌=한국수력원자력<주> 발행 ‘꿈꾸는 에너지 아름다운 미래(원자력 발전 30년사)’, ‘한국전력기술 30년 : since 1975년’, ‘한국전력공사 발간 살아있는 전력사-누리를 밝혀 온 한세기’, 차종희 저 ‘영광과 탁마의 세월 : 원자력과 함께 30년’, 한국원자력산업연구원 발간 ‘한국원자력산업연감’, 박익수 저 ‘한국원자력창업비사’

■사진설명

<본문사진1> 1979년 9월, 500여t에 달하는 월성 1호기 원자로가 원전 격납건물에서 40m 떨어진 임시건물을 빠져나오고 있다. 원자로의 엄청난 중량 때문에 임시건물에서 격납건물 내부까지는 견고한 콘크리트 기초가 타설됐고, 그 위에는 원자로를 운반할 요(凹)자형 철로가 설치됐다. 당시 원자로 운반작업은 한국 기술진의 주도 하에 이뤄졌으며, 캐나다 기술진이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로 차질없이 진행됐다. <월성원자력본부 제공>

<본문사진2> 월성 1호기의 기공식이 1977년 6월 15일, 경북 월성군(지금의 경주시)에서 열리고 있다. 이날 기공식은 장예준 상공부장관과 문태준 국회상공위원장, 김영준 한전사장, 존 스타일스 주한 캐나다 대사 등 관계자들과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됐다. <한국수력원자력 발행, 꿈꾸는 에너지 아름다운 미래(원자력 발전 3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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