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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따라 가는 여행] 화천수력발전소_물과 산이 평화의 염원을 품고 휘돌아 흐르는 화천

  • 201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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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민보다 군인이 더 많은 곳, 화천이다. 아직도 곳곳에 전쟁의 흔적이 남아 사라져간 청춘들의 가여운 목숨을 떠올리게 한다. 내륙의 바다 파로호는 요즘 사람들에게 낭만의 물길이지만 어르신들에게는 고향을 수장시킨 호수며, 화천수력발전소를 탈환하기 위해 남북이 총을 겨눠야 했던 비극의 땅이다. 해서 화천은 굽이굽이 청정한 산과 옥빛의 물빛이 아름다움에도 그와 같은 시선만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는다. 어쩌면 ‘평화의 댐’이 있어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화천1

아흔아홉 구빗길, 평화의 댐 

‘아흔아홉 구빗길’을 돌고 돌아야 비로소 ‘평화의 댐’이다. 그만큼 평화에 이르는 물길이 녹록치 않다는 뜻이다. 산허리를 다 돌았는가 싶으면 또 다른 산허리가 나타나고, 더 오를 곳이 없는가 싶으면 또 다른 오름이 나타난다. 그렇게 해서 마주하는 평화의 댐은 퍼렇게 멍이 들었다. 건설 당시 국민의 뭇매에, 그리고 DMZ가 가로막혀 더 이상 흐르지 못해서다. 그 불편한 댐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평화의 종’이, 또 다른 한쪽에는 ‘염원의 종’이 있다.

화천2

세계의 분쟁 지역에서 모아온 탄피와 포탄으로 만들어진 ‘평화의 종’은 맨 위를 눈 여겨 보시라. 비둘기들이 동서남북으로 앉았는데, 북쪽을 향해 앉은 비둘기의 날개가 싹둑 잘려 있다. 짐작대로 분단국가를 상징한다. 상징으로 보관된 비둘기의 날개는 통일이 되지 않는 한 영원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눈여겨보는 이들은 드물다. 대충 한 번 훑어보고 호기심에 혹은 재미 삼아 타종을 한다. 물론 그들 중에는 평화를 염원하는 이도 있으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렇다.

 

‘세계 평화의 종 공원’에 나무로 만들어진 ‘염원의 종’은 ‘침묵의 종’이다. 평화에 대한 염원이 너무 깊어 아예 울림을 통일이 되는 그날로 미뤄뒀다.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녹록치 않은지 요즘에는 쇠에 덧댄 나무가 벗겨져 한쪽은 아예 속을 내보이고 있다. 공중에 매달려 있는 탓에 늘 거센 바람과도 맞서야 하니 온전할 리가 없다. 해서 ‘염원의 종’은 오늘도 굳세게 매달려 평화의 댐이 북쪽을 향해 흐르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화천13

 

물에 잠긴 이야기들, “파로호” 

구만리 협곡이 호수가 되었다. 느닷없이 물에 갇혀버린 세월과 자연과 생명은 그날부터 수면 위로 오르지 못했다. 대를 이어 살던 집과 매년 그 집 마당에 피던 꽃들과 조상의 무덤은 모두 그대로 있을까. 1987년 평화의 댐을 만들 때 드러난 호수 바닥에서 고인돌 21기와 1만 년 전 구석기인들이 사용했던 선사유물 4천 점이 발견되던 날 굴곡의 역사를 거쳐 온 어르신들은 북녘의 고향을 바라보듯 그곳을 바라보았다. 어르신들에게 ‘파로호’는 내륙의 바다가 아니라 잃어버린 고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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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의 파로호는 새벽안개가 몽환적인 곳, 전국 제1의 낚시터, ‘파로호 100리 산소길’이 있는 곳이다. 옥빛 호수 위로 산 그림자가 그대로 투영되면 사람들은 ‘파로호’의 역사를 잊는다.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대륙 침략을 목적으로 축조한 호수라는 것을,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젊은 목숨이 잠겼다는 것을, 이름조차 화천호에서 ‘중공군을 무찌른 호수’라 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破虜湖)’라 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파로호’를 바라보면 이국적으로 여겨졌던 이름이 달리 느껴지고, 물속에 잠긴 이야기들이 푸른 안개로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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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가 숨겨둔 마을, 비수구미  

구만리 협곡에 미처 물이 닿지 않는 곳마다 ‘오지마을’이 생겨났다. 고립되었으나 살던 땅을 잃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하는지, 물길이 길을 막아 뭍으로 나가는 번거로움을 한탄해야 하는지 사람들은 난감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험하게 변하면서 이렇게 갇혀 지내는 것이 더 낫지 싶다. ‘비수구미’ 마을도 그 중 하나다. 인가라고는 딱 세 채. 장씨댁, 김씨댁, 심씨댁으로 불리는 ‘비수구미’ 사람들은 뭍에 일이 있으면 배를 타고 나와 6km ‘낙석주의’의 비포장길을 걸어 버스를 탔다. 그런데 요즈음 일부러 걷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사서 걱정한다는 생각을 한다. 15분 남짓 둘레길이 생기면서 트레킹을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 ‘비수구미’는 본의 아니게 바빠졌다.

둘레길이 생기기 전에는 배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면서 또 몸을 부지런하게 움직여 뜯은 나물 밥상과 그 밥 먹으러 온 손님에게 빈 방 하나 내주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어떤 집은 편의시설까지 갖추고 손님을 받는다. 누군가는 그 모습에 ‘비수구미’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를 위해 당신은 변하지 마라 하는 것처럼 큰 이기심도 없으니 ‘비수구미’ 사람들은 그리 날을 세우지 않는다. 모든 것이 변하고 변하여 지금에 이르렀듯, 파로호가 숨겨둔 마을 ‘비수구미’도 그렇게 변화에 순응한다. 단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비수구미’는 아주 느리게 변화해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은 고마운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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