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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기획연재 – 한국 에너지의 심장, 월성원전 제6화

  • 201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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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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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에너지심장 월성원전

(6)産苦의 시간들

 

느려터진 캐나다 직원, 속 터지는 한국 근로자 ‘충돌’

 

6-2 

 

 

 ◆외국 기술진 나태함에 일침을 가하다

 멀리 문무대왕암을 품은 동해가 푸른 비늘을 뒤척이고, 해송이 듬성한 서편 산자락에는 살구꽃과 복사꽃이 구름처럼 흐드러지게 피어올랐다. 동해 특유의 청명하고 화창한 5월의 늦봄 기운이 양남면 산야에 흘러넘쳤다. 하지만 화려한 봄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월성원전 1호기 건설현장에는 완공을 서두르는 공사가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공사현장 바리케이드 앞에 잠시 멈춰섰던 지프가 먼지를 피워올리며 곧장 건설사무소를 향했다. 멈춰선 차에서 내린 검은 양복 차림의 두 남자가 소장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서울서 내려온 캐나다원자력공사 직원들입니다.”

 서석천 건설소장은 군인처럼 머리를 바투 깎은 두 낯선 방문객의 명함을 받아들었다. 캐나다원자력공사(AECL) 로고 밑에 최재민과 이인서란 이름이 찍혀 있었다.

 “도널리 사장님께 편지를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는 순간 서 소장은 그들이 무슨 이유로 이곳 월성원전 현장에 급파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저희 두 사람도 예전에 한때 한전직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현장의 고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당시의 상황을 솔직하고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쓴웃음을 머금은 서 소장이 지난 기억을 되살렸다. 그러니까 보름여 전인 4월말 즈음이었다. 공기에 쫓겨서 작업을 서두르던 오후 무렵에 갑자기 워크스톱이 걸렸다. 이를 지시한 사람은 필리핀 출신의 캐나다 감독이었다. 작업장의 청소상태가 불량하다는 이유였다. 그로 인해 수많은 장비와 공사 관계자가 대기상태로 들어갔다. 공기에 쫓겨서 하루, 한 시간이 금쪽같던 서 소장 입장에선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월성원전은 일괄도급(Turn-Key)방식으로 주 계약자인 캐나다원자력공사가 공사의 전반적인 책임을 지고 있었다. 한국 측 건설사무소에도 감독 책무가 일부 부여되긴 했지만 계약상 사업지원 업무가 더 많았다. 그런 까닭에 공사를 책임진 캐나다 측 감독이 작업과정을 문제시하여 공사를 중단시키는 일은 직무상 당연한 일로 뭐라고 따지고 할 입장이 아니었다.

 사실 이전에도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났다. 선민의식과 자만심에 사로잡힌 일부 캐나다 감독들은 조자룡 헌 칼 쓰듯 걸핏하면 이런저런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공사 중단을 지시하곤 했던 것이다. 또 캐나다 직원이 퇴근하게 되면 그 시간부로 현장의 모든 공사는 중지되었다.

 함께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의 입장에서, 일부 외국인 관리자들의 그런 느긋하고 나태한 업무태도는 지켜보기만 해도 속이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한국인 직원이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쳐도 외국인들의 그런 안일한 자세로는 업무효율이 떨어져서 목표한 공기에 완공이 불가능하다는 게 현장 실무진의 판단이었다. 1년여 전에 서 소장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떠나간 전임 건설소장 역시 외국인들의 근무 태만에 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다소 성미가 급하고 일에만 매달리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감안하더라도 외국인들의 느려터진 업무행태는 참아넘기기 힘들다고 했다.

 “저들이 공사를 중단시킨 이유는 작업장 청소문제가 아니라 실은 늦도록 일을 하면 자기들끼리 약속했던 저녁파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공사가 중단된 그날 저녁 무렵에 외국인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전기과 최양우 과장을 통해 공사 중단의 내막을 전해들은 서 소장은 참았던 분노가 한꺼번에 치미는 것을 느꼈다. 싫든 좋든 외국인들과 합작으로 하는 공사였기에 그동안 여러 불만을 억누르며 지내왔던 터였다. 하지만 더 이상은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서 소장은 박용택 건설과장과 함께 곧장 외국인 사무실로 현장책임자를 찾아갔다.

 서 소장 앞에 모습을 드러낸 자는 영화 터미네이터의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처럼 키가 육척이 넘고 몸집이 우람한 영국계 캐나다인이었다. 그는 자신을 현장책임자라고 밝혔다. 서 소장은 머리 하나 정도 큰 책임자를 올려다보며 낮에 일어났던 일을 비롯하여 그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여러 불만사항을 털어놓았다. 아울러 비록 턴키 공사지만, 낮에 생겼던 일은 그냥 넘어갈 성질의 일이 아니며, 따라서 필리핀 출신 캐나다 감독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책임자는 조소를 머금고 한마디로 “노”라며 거절했다. 그리고 퉁명스레 덧붙였다. “한전이 그런 요구를 할 근거나 권리는 계약상 없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턴키방식의 공사라 치더라도 이처럼 간단하게 의견을 무시당하자 분노를 넘어 무기력감마저 치솟았다. 다른 것도 아닌, 외국인 감독의 근무태만과 잘못된 업무관리에 대한 지적이 아니던가.

 

“모르면 가만 있지, 한국인 주제에…”

공사 총괄 캐나다 측 안하무인 태도

자신들 파티 위해 작업 중단까지…

빠듯한 공기에 참다 못한 현장소장

캐나다원전公 사장 등에 도움 요청

근로자 갈아치우고 기강 바로잡아

 

 

 6-3

 

 ◆공사현장의 기강을 바로잡다

 “흥, 모르면 잠자코 있어야지. 한국인 주제에 문제를 일으켜서 어쩌자는 거야.” 마지못해 돌아선 소장의 뒤에 현장 책임자가 비웃듯 던진 말이었다.

 “말조심 하시오!” 곁에 있던 박 과장이 몸을 돌려 주의를 주었다. 현장책임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어디 덤벼볼 테면 덤벼보라는 시늉을 했다. 정말 안하무인격의 태도였다.

 “박 과장, 참아요. 국력과 기술이 약한 탓인데 누굴 탓하겠습니까.” 성질 급한 박 과장의 앞을 서 소장이 막아섰다. 서 소장 역시 내심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기실 평소에도 한국인 직원과 외국인 간의 차별대우로 인해 민족적 자존심이 상할 때가 적지 않았다. 현장의 한국인들이 추위와 더위에 그대로 노출된, 불편하고 협소한 컨테이너 합숙소에 기거하는 반면 170여명 남짓한 외국인은 좋은 사택에 자녀들을 위한 학교까지 지어줄 정도로 근무환경과 계약조건이 좋았다.

 그런 차별화된 근무환경 때문인지 한국인을 대하는 몇몇 외국인 공사감독의 태도는 지켜보기 눈꼴사나울 지경이었다. 나쁘게 말해서 너희가 무얼 할 줄 아느냐며 업신여기는 태도를 보였다. 월성원전 공사가 턴키로 계약된 점을 악용한 것이다. 그 모든 게 국력이 약하고 기술이 부족하다보니 빚어진 일이었다.

 그런 차별을 겪으면서도 공기 단축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한국인 공사관계자에게 도움은 되지 못할망정 저녁파티를 위해 공사를 중단시키는 일은 건설공사를 책임진 소장으로선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수를 쓰든 저들의 잘못된 행태를 고치고 현장의 기강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치미는 분기를 누르며 소장실로 돌아온 서 소장은 용기를 내어 당시 캐나다원자력공사 도널리 사장에게 직접 편지를 쓰기로 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먼저 기술수준이 낙후된 한국의 절박한 현실을 알리고, 원전의 조속한 완공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공사현장에서 있었던 캐나다원자력공사 직원들의 태만한 근무행태를 여러 예를 들어 지적했다. 또 비록 턴키계약이지만 귀사의 권한을 일부만이라도 부여한다면 월성 1호기 건설에 있어 품질과 공기에서 모범적인 성과를 낼 것이며, 캐나다원자력공사의 실적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결과가 나오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간곡하게 피력했던 것이다.

 마지막 기대를 품고 보낸 편지가 유효했던 셈이었다. 서 소장은 낯선 두 방문객에게 원전공사현장에서 벌어진 외국인과의 사이에 빚어졌던 문제점들을 털어놓았다. 아울러 외국인 관리자들의 업무태만과 공사 지연에 대한 한국 측 입장에 대한 의견을 솔직히 개진했다. 함께 동석한 최양우 과장과 오용식 과장 역시 구체적인 사례를 조목조목 늘어놓았다.

 “그런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군요. 꼭 시정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서 내려온 두 명의 직원이 올라간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월성원전을 방문한 귀빈이 있었다. 휴가차 경주관광을 겸해서 월성을 찾은 버너 주한 캐나다 대사와 그 가족일행이었다. 좋은 기회로 판단한 서 소장은 환영파티장에서 만난 버너 대사에게 공사 진척상황과 함께 얼마 전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버너 대사는 공감을 표했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그로부터 일주일 남짓 지났을 무렵이었다. 소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최 과장이 밝은 음성으로, 지난번에 문제를 일으킨 필리핀 감독을 포함하여 세 명의 캐나다인이 어제부로 송환 조치되었다는 소식을 알렸다. 아울러 처음엔 회사의 송환 조치에 크게 반발했지만 지난번 워크스톱을 해서 공기를 지연시킨 과실을 지적당하자 군말 없이 보따리를 쌌다는 후일담까지 털어놓았다.

 그후로도 20여명의 캐나다 직원이 교체되었다. 그 당시 몬트리올 올림픽을 개최한 후로 캐나다는 경제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캐나다로의 귀환은 곧 실업자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한국으로 나오려면 수십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할 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그래서일까. 그 사건 이후로 현장의 외국인들이 터무니없이 공사를 지연시키는 일은 일절 없어졌다. 또 외국인 직원뿐 아니라 캐나다원자력공사 소속 한인 직원들의 기강도 바로잡히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 덕분에 월성원전 1호기 공사는 한결 빠르게 완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글=박희섭 <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참고문헌=한국수력원자력<주> 발행 ‘꿈꾸는 에너지 아름다운 미래(원자력 발전 30년사)’, ‘한국전력기술 30년 : since 1975년’, ‘한국전력공사 발간 살아있는 전력사-누리를 밝혀 온 한세기’, 차종희 저 ‘영광과 탁마의 세월 : 원자력과 함께 30년’, 한국원자력산업연구원 발간 ‘한국원자력산업연감’, 박익수 저 ‘한국원자력창업비사’

 

■사진설명

<본문사진1> 1982년 6월, 캐나다 기술진이 월성1호기를 둘러보고 있다. 캐나다 기술진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사택을 제공받고, 자녀들을 위한 학교까지 따로 마련돼 있을 정도로 근무환경이 좋았다. <월성원자력본부 제공>

<본문사진2> 일괄도급방식으로 건설된 월성1호기는 주 계약자인 캐나다원자력공사가 원전건설의 전반적인 책임을 지고 있었다. 1979년 11월, 관리자로 보이는 캐나다 원자력공사 직원과 한국 원전건설 관계자들이 책상 위로 머리를 맞댄 채 회의를 하고 있다. <월성원자력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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