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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 ‘고리1호기’의 탄생!

  • 201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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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에나 ‘최초’는 있기 마련입니다.
최초로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최초로 방사선을 발견한 뢴트겐, 최초로 상대성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 최초로 냉장고를 만든 제이콥 퍼킨스등. 그러면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는 어디며 어떻게 세워졌을까요?

지난 번 원자력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말씀드렸지만, 우리나라에 원자력발전소 건립 논의는 이승만 대통령과 전기기술의 대가 시슬러 박사의 만남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1956년 방한한 시슬러 박사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력사업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개진하며 한국에 원자력발전소 도입을 적극 권하면서 시작된 것이죠.

그렇다면 국내 첫 원전이 왜 고리에 세워졌는지, 그 과정과 참여한 인물들은 누구인지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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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소가 없던 시절, 우리나라의 전력수요 중심지는 서울, 부산, 그리고 울산공업지대였습니다.
당시 원전 부지 설정은 원자력연구소, 한국전력공사, 대한석탄공사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전력 수요처가 몰려있는 서울과 가까운 한강 하류나, 부산과 울산을 연결하는 동남해안을 건설 부지로 지목했습니다. 그러나 한강 하류는 조사과정에서 가장 먼저 배제되었습니다. 한강의 수질오염이 심각한데다, 인천 앞바다의 영향으로 간만의 차가 크고, 무엇보다 남북이 대립하던 냉전시대에 휴전선과 가까운 곳에 원자력발전소를 세우는 것은 안전상 위험하다는 의견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22개 지점의 도상평가를 통해 후보지를 9곳으로 축소한 뒤, 1965년 다시 2차 조사로 부지의 인구분포 상황, 인구밀집지역과의 거리, 토목설비, 수송조건, 지형, 지질, 항공촬영을 통한 지질도 검사 등을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맥컬린 단장과 조사관들이 3차 정밀조사를 실시해 부산시 기장군 장안면 월내리와 길천리 2곳으로 원전 부지를 최종 압축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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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원전 부지는 이 2곳 이외에 한 곳이 더 추가됩니다.
1967년 ‘장기전원개발계획’이 변경되면서 30만kW급 원전 1기 건설에서 50만kW급 원전 2기 건설로 계획이 바뀌면서 장안면의 고리 지역이 추가된 것이죠. 결국 해당 지역에 대한 기상조사와 지질, 골재원, 용수원조사 및 해상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 고리지역이 원전 부지로 적합하다는 최종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a 땅!땅!땅! 고리로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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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원전이다 보니 원전 건설은 외국 공급자에게 설계, 제작, 건설, 시운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권한과 책임을 맡기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고리1호기의 예상 건설 소요 자금은 약 344억원이었습니다. 1968년 국가예산이 약 2천214억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그 액수가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이 가시죠? (띠옹~ @,@!)

국익이 걸린 막대한 사업인 만큼 정부 관계자들은 원전을 한푼이라도 싸고 안전하게 건설하고자 미국과 영국의 4개 업체에 예비견적서를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입찰한 업체들은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 웨스팅하우스, 컴버스천엔지니어링과 영국의 원자력수출공사였습니다.

최종 입찰 결과, 실적과 비용에서 앞선 웨스팅하우스가 원전 건설사로 선정되었고, 1969년 2월에 계약을 체결했지만 의외로 차관협정 문제로 난항을 겪다가 10개월 뒤인 1969년 12월1일 한전과 리자드은행 간 차관협정이 서울에서 정식 체결됨으로써 원전 건설과 관련된 모든 절차가 끝을 맺었습니다.

공사는 1971년 11월에 착공되어 1977년에 완공되었고, 1978년 4월에 상업운전을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고리 원전 1호기는 대한민국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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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소를 관리하려면 우리나라에도 숙련된 전문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전력공사의 김종주 전 부사장이 영국 하웰 원자력학교에서 약 4개월간 원자력 교육을 받았고, 다시 영국 최초의 원전인 콜더홀에서 발전기 운전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기술담당 이사와 부사장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를 이끌어간 초창기 공로자입니다.

이렇게 해서 김종주 이사 밑에 원자력과를 설치해 총 7명의 인력이 참여하게 되었고, 그의 뒤를 이은 노윤래 계장은 원자력이 생기기 전 원자력발전을 위한 자료수집과 준비 작업을 담당했습니다. 그 후 원전사업 주관을 원자력청이 하느냐 한전이 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다가 1968년 4월 ‘국무총리 주재 원자력발전추진위원회’에서 한전으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넘치는 열정!)

원자력발전의 기술사양은 미국의 엔지니어링 회사 번즈앤로우가 용역을 맡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이창건, 이관, 임용규 박사 등 국내 전문학자들로 구성된 ‘원자력발전자문위원회’가 설치됩니다. 이들은 번즈앤로우의 도움을 받아 기술사양 작성, 입찰, 건설계약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정부와 함께 원자력법의 관계법도 모두 정리했다고 하네요.(@.@대단!!) 

무엇이든 처음 시작하는 일에는 많은 시행착오와 고생이 따르는 법입니다. 원자력발전 역시 부지를 선정하고, 법을 만들고, 지식을 쌓는 등 원자력발전소 하나를 짓기 위한 작업에도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을 위해 기반을 다진 모든 분들께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_____^ 짝!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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