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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에서 유를 이뤄내다! ‘고리 1호기의 건설 과정’

  • 201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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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고리원전전경2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 고리 1호기가 착공되었습니다
고리 1호기는 설비용량 587,000kW, 사업비 1,560억 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사업이었는데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국내 산업이 발전하고 수출도 늘어났지만, 당시로서는 이렇게 큰 사업비를 마련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돈을 빌려 원자력 발전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부가 막대한 금액의 차관을 도입하면서까지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공을 들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대한민국 에너지 산업의 희망을 원자력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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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1호기의 건설은 196910월 건설계약 협상으로 시작됐습니다.
고리 1호기는 차관도입 과정도 복잡했지만, 건설계획을 확정하는 과정에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계약조건, 기술사양 등에서 이해가 엇갈렸기 때문입니다. 고리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주민들에겐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쉽지 않은 선택이 따르기 때문이었죠. 정부는 오랜 설득 끝에 주민들을 이주시켜, 2만여 평의 부지를 확보했습니다.

차관도입 협정과 발전소 건설계약은 오랜 협상 끝에 19706월에 체결되었습니다. 곧 이어 한전과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사이에 원전연료 성형가공계약도 체결되었죠. 웨스팅하우스가 원자로계통 기기공급 및 총괄적인 설계 및 공사의 관리를 맡고 영국의 GEC2차 계통 기기공급 및 설치공사를, 조지윔페이사가 토목공사를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건설허가 과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엄청난 분량의 안전분석보고서를 제출해야 했지만, 우리나라는 경험이 없는 데다 전문인력도 많지 않아 감리회사의 날카로운 지적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한전은 국제원자력기구인 IAEA 전문가들을 초빙해 이들의 자문을 토대로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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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은 허가 신청 9개월 만인 1972531일에 건설허가를 취득했습니다. 이는 보통 2~3년이 걸리는 외국의 사례와 비교하면 초고속으로 진행된 일로, 후속 원전 건설에 좋은 선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고리 1호기 건설은 숱한 난제를 해결하며 진행됨으로써 수많은 역사적 기록을 남겼답니다. (대단, 또 대단! *_*)

마침내 1971319, 경남 양산군 장안읍 고리 현장에서 3의 불을 밝힌다는 꿈과 포부 속에 고리 1호기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당시 기공식에는 1만 명이 넘는 인사들이 참석했는데요. 이 사실만으로도 원자력 발전 자체가 사회적인 관심사이자 우리나라의 희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웨스팅하우스의 본 공사가 그해 1215일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고리 1호기의 기초가 다져지기 시작했습니다.
원자로 시공은 현대건설이 담당했으며 터빈발전기 계통은 동아건설이, 비파괴검사는 유양원자력이 각각 진행했습니다.
고리 1호기와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각 분야의 산업 역군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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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리 1호기의 건설 공사는 뜻하지 않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가 닥친 것이죠.
석유 의존도가 높았던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스냉각로 공급에 실패한 영국이 분쟁을 일으키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고리 1호기는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며 주요 설비인 원자로, 증기발생기, 냉각재 순환펌프, 터빈 등을 차곡차곡 갖춰나갔습니다

웨스팅하우스가 제작한 증기발생기 2대가 1974319일에 현장에 도착했으며 원자로 격납용기는 그해 1129일과 124일에 각각 설치됐습니다. 1975년 말 준공 목표로 시작된 건설공사는 여러 가지 문제로 19746월까지 전체 공정의 67%밖에 진행되지 못했지만, 가장 안전하고 튼튼한 발전소를 짓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습니다. (으쌰 으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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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고리 1호기는 예정보다 2년 늦었지만 19787월에 대망의 준공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1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 인도, 파키스탄에 이어 4번째로 3의 불을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고리 1호기의 시설용량 587000kW는 당시 우리나라 전체 발전용량 659kW9%를 차지할 정도로 발전 시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습니다. 이후 정부는 신() 장기에너지 종합대책을 통해 1981년까지 60kW급 원자력 발전소 3기를 추가 건설하는 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인 원전시대를 맞게 됩니다.

70년대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전력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국내에 에너지 자원이 나지 않는 만큼, 원자력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절실함이 고리 1호기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것이죠. 원천기술 하나 없는 상태에서 제3의 불을 켜기까지, 정말 수많은 분들의 피땀 어린 노고와 정성이 있었는데요.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을 위해 힘써 준 그분들의 고귀한 땀방울을 다시 한 번 기억합시다! 우리 모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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