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블로그
삶에 활력(力)을 더하는 이야기
모바일메뉴 열기
검색창 닫기

양자역학의 해석을 확립한 ‘하이젠베르크’

  • 2014.04.08.
  • 3944
  • 블로그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 인쇄

 

Werner Heisenberg

핵이 중성자와 양성자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밝힌 과학자가 누구인지 아시나요? 바로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입니다
언뜻 들으면 맥주 이름 같기도 한 그는 1925년 양자역학의 시초가 되는 원자구조론의 법칙을 완성했고, 1932년 원자핵 분야에서 핵이 중성자와 양성자로 구성된다는 이론을 발표한 인물입니다. 하이젠베르크가 발견한 원리 중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바로 불확정성의 원리입니다. 이는 많은 물리학 해설서나 현대 물리학 입문서의 양자역학에서 빼놓지 않고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원리입니다. 하이젠베르크의 일생과 함께 그가 발견한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daumview type="button"][/daumview]

2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1901년 독일 뷔르츠부르크의 교육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공부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습니다. 그는 순탄하게 성장해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이하 뮌헨 대학교)와 괴팅겐 게오르크 아우구스트 대학교(이하 괴팅겐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한마디로 명문대학에서 공부한 수재인 셈이죠.

그는 이들 대학에서 독일의 저명한 물리학자인 아르놀트 조머펠트(Arnold Johannes Wilhelm Sommerfeld)와 빌헬름 빈(Wilhelm Wien), 막스 보른(Max Born)과 제임스 프랑크(James Franck)에게 물리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20세기 초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 중 하나로 손꼽히는 다비트 힐베르트(David Hilbert)로부터 수학 교육을 받기도 했죠.

학생 시절 하이젠베르크는 현대물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닐스 보어(Niels Bohr)의 원자 모형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조머펠트 교수는 그를 데리고 괴팅겐에서 열린 보어축제에 갔죠. 하이젠베르크는 그곳에서 닐스 보어의 양자역학에 대한 강의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3
▲ 하이젠베르크(좌)와 닐스 보어(우)

하이젠베르크는 1924년부터 1927년까지 괴팅겐 대학교에서 사교수로 있었습니다. 그때 록펠러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서 코펜하겐 대학교를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코펜하겐 대학교는 그가 평소 흠모하던 닐스 보어가 이론물리학 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대학교였죠. 사실 하이젠베르크는 괴팅겐 대학교에 다닐 때 닐스 보어의 강의를 듣던 중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닐스 보어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사제지간으로 만난 두 사람은 곧 친구 사이로 발전하게 되어 함께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1925년 괴팅겐 대학교로 귀환한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의 행렬적(Matrix) 형식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26년 다시 코펜하겐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닐스 보어의 조수이자 대학 강사로 일합니다. 코펜하겐 대학교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그는 그의 대표 이론인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하게 된 동기는 아인슈타인의 가르침 덕분이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젊은 하이젠베르크에게 사람들이 무엇을 볼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이론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관찰하려 했던 것만을 관찰하게 마련이라는 뜻인데요. 어찌되었든 하이젠베르크는 아인슈타인과의 토론에서 영감을 얻어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해 양자역학의 해석을 확립하게 됩니다.

4-1
▲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사용했던 감마선 현미경의 원리
 

양자역학 이야기를 하면 불확정성의 원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정도로 불확정성의 원리는 중요한 이론입니다. 하지만 불확정성의 원리를 정확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불확정성의 원리는 말 그대로 확실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명확한 사실만 다루는 물리학에서 왜 이런 원리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걸까요?

불확정성의 원리는 양자역학에서 맞바꿈 관측량(commuting observables)이 아닌 두 개의 관측가능량(observable)을 동시에 측정할 때, 이렇게 관측한 두 개의 값 사이에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존재한다는 내용입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위치와 운동량에 대한 불확정성을 나타내는 원리이며,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위치가 정확하게 측정될수록 운동량의 퍼짐(또는 불확정도)은 커지게 되고 반대로 운동량이 정확하게 측정될수록 위치의 불확정도 역시 커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쉽게 풀어 쓰면 관측을 하는 그 순간에도 물체는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관측한 값은 불확정한 값이 된다는 의미죠. 불확정성의 원리는 측정 때문에 생기거나 어떤 입자의 운동을 정확히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측정하고자 하는 입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 성질에 불확정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확정성의 원리는 위치와 운동량 뿐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 사이에도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5

1932년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채드윅(James Chadwick)이 중성자를 발견하자, 하이젠베르크는 원자핵의 중성자양성자 모형에 관한 논문을 씁니다. 이 결과로 그해인 1932년 그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습니다. 1939년 독일의 오토 한(Otto Hahn)과 프리츠 슈트라스만(Fritz Strassmann)이 최초로 핵분열을 발표한 후, 하이젠베르크는 오토 한과 함께 독일의 원자력 프로젝트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공공연하게 나치 정권에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나치의 정책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핵무기에 대한 효과적 프로그램을 완성시키는 데 실패를 했다고 합니다. 기술적 자원이 부족했기도 했지만 그 자신이 그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는 의지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1941년부터 그가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할 때에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포함해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기도 합니다. 라이프치히 대학교를 코펜하겐 대학교와 함께 물리학의 메카로 만들기도 했고요. 이외에도 그는 초전도체에 관한 연구와 핵융합 연구도 진행했습니다. 국제핵물리협회의 과학방침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1976년 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남긴 물리학계의 큰 별이었습니다.

 

* 양자역학 : 불연속적인 물리량을 가지는 입자를 파동함수로 다루고, 그 결과를 확률로 해석하는 물리학
* 파동함수 : 양자역학에서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의 상태를 나타내는 양

 

4

댓글 남기기

블로그지기
블로그지기
한수원의 생생한 소식과 한수원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