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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통분만의 시대를 열다! 제임스 심프슨

  • 201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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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마취제가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어땠을까요? 아마 상상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아픈 환자들은 큰 수술은 감히 꿈도 못 꿨을 것입니다. 19세기 이전까지도 마취제는 일반화되지 않아 수술대에 오른 환자들의 공포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뼈를 깎고, 살을 찢는 고통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느꼈을 당시 환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생각만 해도 정말 아찔한데요. 오늘날엔 웬만한 수술에서 마취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마취제의 발견으로 우리의 삶을 바꿔준 과학자, 제임스 심프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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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of a young pregnant female lying on a bed

제임스 심프슨은 1813년 스코틀랜드의 바드게이트라는 곳에서 빵을 만드는 가난한 직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유달리 영리했던 그는 1827년 14세의 어린 나이에 에든버러대학에 입학해 의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병리학 조수와 산과학의 강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곤 29세의 젊은 나이로 에든버러대학 산과학 교수로 임명되어 산과학 교과의 개선에 앞장섰습니다.

평소 신앙심이 두터웠던 심프슨은 여느 날처럼 성경을 읽다가 한 구절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창세기 2장 21절)’

그는 그 성경 구절을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갈빗대 하나를 떼 내는 동안 아담은 어떻게 고통 없이 잠잘 수 있었을까?’ 마취제가 발달하지 않았던 1800년대 당시만 해도 의사들은 환자들이 수술을 받을 때 겪는 고통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심프슨은 달랐습니다. 심프슨은 마취 없이 수술을 받는 환자들을 보면서 매우 가슴 아파했습니다. 수술은 마치 합법적으로 자행되는 고문과도 같았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마취제는 있었습니다. 미국의 치과 의사 윌리엄 모턴이 이를 뺄 때 통증을 줄이기 위해 개발한 에테르란 물질이었죠. 심프슨은 에테르를 분만에 응용했습니다. 그러나 황산과 순수 알코올을 반응시켜 만드는 에테르는 산모에게 주는 불쾌감이 너무 컸고, 부작용이 심해 외과 수술에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심프슨은 환자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틈만 나면 마취법 개발에 매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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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테르를 대체할 마취제를 분주히 찾던 중 심프슨은 동료 화학자로부터 클로로포름이라는 액체에 대해 듣게 됩니다. 클로로포름은 당시 치료약으로 쓰이고 있었지만 마취제로서의 효능은 입증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부작용을 염려했던 그는 몸소 실험 대상이 됐습니다. 심프슨은 클로로포름을 컵에 담아 깊이 들이마시곤 한동안 술에 취한 사람처럼 웃으며 수다를 떨다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아무 부작용 없이 깨어난 심프슨은 클로로포름이 안전하다는 사실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에든버러 왕립병원에서 실험을 계속하며 마취제로서의 클로로포름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심프슨은 1847년 11월 8일 한 소년의 팔 부위에서 뼈를 잘라낼 때 이 마취제를 공식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소량의 클로로포름을 수건에 묻혀 소년의 얼굴을 덮는 간단한 방법이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심프슨은 분만의 고통을 더는 데도 클로로포름을 사용했습니다. 최초의 환자는 친구의 딸이었습니다. 이 역시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심프슨은 클로로포름을 마취제로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무통분만법을 확립하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하지만 마취 상태의 분만에 대해 의학계 안팎과 교회의 반대는 거셌습니다. 신학자들은 ‘인위적으로 고통을 감소시키는 것은 악마의 행위’라는 주장을 펼쳤고 클로로포름을 둘러싼 논쟁은 수년 동안 지속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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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로포름은 185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취제로 공인받았습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레오폴드 왕자를 분만할 때 심프슨의 클로로포름 마취법을 이용함으로써 무사히 태아를 분만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클로로포름 흡입법은 ‘여왕 마취’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맹렬했던 반대론은 점차 수그러들었고 클로로포름 마취제는 급속도로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심프슨은 무통분만법을 개발하고 분만유도를 위해 쓰이는 산과겸자(産科鉗子)를 고안하는 등 산부인과학에서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심프슨은 1866년 스코틀랜드인 의사로서는 최초로 경(Sir)의 칭호와 옥스퍼드대학의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동안의 공적과 영국 의료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쏟은 그의 노력이 인정받은 것이죠. 또한 1869년에는 에든버러시의 명예시민이 되었습니다.

제임스 심프슨은 병이나 부상으로 신음하던 환자들을 수술이란 또 다른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한 의사의 진심어린 박애정신이 위대한 발견을 이뤄낸 것입니다. 현대의학에서 클로로포름은 더 이상 인체용 마취제로 쓰이지 않습니다. 독성에 따른 간 기능 저하라는 부작용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내고 여유로운 수술 환경을 열었다는 점에서 클로로포름 마취제는 ‘의학계의 혁명’으로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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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3)

  • 4 년 전에

    평소에 마취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는 데 이런 조그마한 발명들이 우리 삶을 얼마나 편하게 해주는 지 깨닫게 됬습니다.

  • 벤자민 4 년 전에

    지난 주 치과치료했는데 마취를 하더군요. 누가 마취제 만든 것인지 관심 전혀 없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그 분께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드네요.

  • 헐렁이 4 년 전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그냥 넘기지 않고 자신의 고통으로 느낀 그 아름다운 마음에서 마취제가 나왔나봅니다. 좋은 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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