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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영남일보기획연재ㅣ한국 에너지의 심장, 월성원전 제9화

  • 201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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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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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에너지심장 월성원전

(9)번영의 불꽃

월성 2호기 노하우, 3·4호기로 전수… 국내 원전시공 기술 한 단계 도약

월성스토리텔링 제9화 사진1번

◆핵심기술 전수의 기회를 잡다

월성 2호기 건설을 위한 제반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1990년에 한전은 건설허가발급을 위한 예비안전성분석 보고서 및 환경영향평가서 작업을 캐나다원자력공사와 한국전력기술과 공동으로 수행하게 했다. 이어서 부지 사전승인을 취득하고, 92년에는 전문기관의 안전성 평가 및 원자력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서 과학기술처로부터 건설허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발전소 안전성 향상을 위한 80여 항목의 설계 개선사항이 반영되었다. 아울러 월성 1호기의 설비를 공용할 수 있도록 일부 설비의 설계가 변경·보완됐다. 또한 보조보일러 계통 등 32개 항목의 설계변경을 통하여 운전인력 감소 및 설비 간소화를 도모했다. 이것은 앞선 월성 1호기의 건설경험을 십분 활용한 결과다. 따라서 원전의 경제성은 물론 안전성과 신뢰성이 한층 높아졌음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었다.
91년 6월에는 월성 2호기 건설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캐나다 토론토에 사무소를 개설했고, 10월에는 정부 내빈과 한전직원을 비롯한 공사관계자와 지역주민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착공식이 성대히 거행됐다. 그 다음 해 9월에는 처음으로 콘크리트 타설공사가 이루어졌다. 이어 11월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인 격납용기 축조공사에 착수했으며 한 달 뒤인 12월16일에는 원자로건물 외벽축조 공사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두 회사 간의 갈등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건설사무소 구조과의 김 과장이 마뜩잖은 낯빛으로 말했다. 아침마다 열리는 업무회의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원전 건설과정에서의 기술전수가 잘 이뤄지지 않는 부분을 토론하던 중에 월성 3·4호기 건설팀을 맡은 김 과장이 문득 H건설과 D건설, 두 회사 간의 불화를 논제로 끄집어낸 것이다.
“H건설 측에선 아예 대놓고 D건설 직원의 현장출입을 전면통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술전수가 이뤄지겠습니까?”
김 과장의 얘기를 듣던 유무선 월성건설소장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짐작은 했지만 설마 그 정도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얼마 전에도 H건설과 D건설, 두 회사 직원들 사이에 약간의 언쟁이 오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2호기와 3·4호기 이렇게 3기의 원전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건설되는 초유의 현장인 데다 두 회사가 동일한 현장에 함께 근무한 적이 전무한 터라 그러려니 여겼던 것이다.
실상은 이러했다. 월성 2호기 착공식이 있던 91년 10월경에 정부의 ‘장기 전력수급계획’에 의해 월성 3·4호기 건설이 새롭게 가시화됐다. 그해 11월에는 월성 1호기의 운전경험을 통해 안전성 및 신뢰성이 입증된 국내외의 CANDU-600과 동일한, 시설용량 70만㎾급 가압중수로(PHWR)형 원자로 2기를 이미 가동 중인 월성 1호기와 건설 중인 2호기 인접부지에 짓기로 건설기본계획을 확정했다.
내·외자 포함해 총 3조4천억원가량의 자금이 소요되는 이 원전건설 사업에서 한전은 캐나다원자력공사와 주기기 설비 공급 및 플랜트종합설계 용역계약을, 한국중공업과는 터빈발전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또 가압중수로에 대한 국내의 기술수준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원자력연구소와 한국중공업을 원자로 설비 부문에, 한국전력기술은 종합설계 부문에, 각각 캐나다원자력공사의 하도급 계약자로 참여시켰다. 그 밖에 D건설이 종합시공을 맡았다. D건설은 H건설과 동아건설에 이은, 세 번째로 원전건설에 뛰어든 시공사가 된 셈이었다.
한편, 이 당시 한전은 캐나다원자력공사와 계약체결을 함과 동시에 ‘중수로 기술전수협정’까지 체결했다. 이 협정에는 60㎾급 가압중수로 원자로 설비자료와 전산코드를 비롯한 중수로 연구개발 배경정보가 포함되었다. 아울러 향후 10년 동안 한전이 사용권을 소유하기로 약정이 되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기술자립을 위한 기반 마련과 함께 중수로 유지보수와 설비개선을 국내기술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했다. 또한 장래 새로이 중수로 건설을 추진할 경우에 국내업체가 건설을 주도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며, 설계 및 제작과정에서 국내 기술진의 참여를 통해 원전 핵심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국내 원전에 관련된 기술을 높이는 데 일조할 좋은 기회인 셈이기도 했다.
이러한 중요한 시점에 국내 회사 간의 불화로 인해 원전건설에 관한 기술전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누가 봐도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다. 원전건설의 조속한 완공을 위해서라도 하루속히 절묘한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건 월성 2호기뿐 아니라 3·4호기 건설을 총괄하는 건설소장의 책무이기도 했다.
사실 따져보면 이런 갈등은 월성 2호기와 월성 3·4호기의 건설 시점이 겹친 것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원전의 경우엔 일정한 시간적 격차를 두고 건설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월성 2호기와 월성 3·4호기의 착공 시점은 고작 2년 남짓밖에 차이가 없었다. 즉 2호기가 91년 10월에 착공, 93년 8월에 3·4호기가 착공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93년 7월까지 별도로 운영했던 월성 2호기 현장설계 및 기술지원업무가 월성 3·4호기 업무와 겹치게 되었다. 이에 한전은 월성 2호기와 3·4호기의 두 건설현장을 통합 운영하기로 했다. 문제는 2호기의 시공사는 H건설이고, 3·4호기의 시공사는 D건설이란 점이었다.
이런 사실을 간과한 한전의 월성 3·4호기 건설팀은 H건설이 먼저 시공한 월성 2호기 건설기술을 월성 3·4호기에 적용하기로 하고 그 전수방법과 공법 등을 마련했다. 또 원전건설에 처음 참여한 D건설을 고려해 한전직원들이 지도·감독하며 업무를 추진해나갔다. 가령 앞선 월성 2호기 현장에 적용된 기술을 예를 들어가며 쉽고 능률적인 작업기술을 일러주었던 것이다. D건설 직원들 역시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적극성을 가지고 현장작업에 임했다.

원전 시공 선발주자 H건설
새롭게 뛰어든 D건설 한때 갈등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 소속
이런 못난 모습 보이면
이방인에게 무슨 낯으로…”

월성스토리텔링 제9화 사진2번

◆기술이전 갈등을 봉합하다

“문제는 H건설 측의 배타적인 태도입니다. 그 태도를 고치지 않는 한 기술전수는 어려울 것입니다.”
김 과장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다른 직원들이 다들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 건설소장은 탁자에 놓인 식은 커피를 마저 마셨다. 유난히 입맛이 썼다. 사정이야 어쨌건 D건설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H건설의 직원들 역시 월성원전 건설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일은 아니었다.
사실 H건설 측의 배타적인 자세 이면에는 원전 시공기술에서 자사가 최고라는 자부심이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H건설은 원전 초창기인 고리 1호기부터 현재 건설 중인 월성 2호기까지 여러 원전을 맡아 건설한 국내 굴지의 건설사였다. 반면 D건설은 월성 3·4호기 시공을 맡아 처음 원전건설현장에 발을 들인 새내기였다. 사회통념상 어렵게 기술을 익힌 선발주자가 후발주자의 접근을 쉽게 허락할 리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회사 간의 경쟁으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었다. 원전건설은 엄연히 국가적 이익이 걸린 중대한 사업이었다.
“H건설 측에 현장사정을 잘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보았습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직접 H건설이 건설하는 2호기의 현장경험과 기술을 3·4호기가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하자고 몇 번이나 H건설 측에 요청해봤지만 거듭 그럴 수 없다는 얘기만 들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제가 오늘 내로 그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유 소장님, 대체 어쩌시려고?”
평소 강직하고 저돌적인 유 소장의 성격을 잘 알던 이 건설부장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직접 부딪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그날 오후, 유 건설소장은 직접 월성 2호기 건설현장으로 찾아갔다. 호출한 D건설 현장소장과 간부 몇 명을 대동하고서였다. 현장경비가 D건설 직원들을 보며 입구를 막아섰지만 유 소장의 호통에 마지못해 길을 열었다.
마침 현장 안에 도착했을 때는 H건설의 박 현장소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박 현장소장은 D건설 직원과 함께 출현한 유 소장의 모습에 놀람과 동시에 몹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도 현장출입을 제한한다기에 제가 직접 D건설 사람들을 데려왔습니다.”
“하지만 여긴….”
“여보시오, 박 소장. 여긴 D건설 직원들이 못 올 곳입니까? 우리 모두 한 배에 탄 동지입니다. 각기 부대명만 다를 뿐 모두 대한민국 소속이란 말이오. 우리끼리 이런 못난 모습을 보이면 원전기술을 전수하는 저 캐나다인 기술자들이 과연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한 민족끼리도 이처럼 기술이전을 꺼리는 판에 무슨 낯으로 저 이방인들에게 기술이전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유 소장의 핵심을 찌르는 질책에 박 현장소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현장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H건설 직원들 역시 민망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앞선 월성 2호기의 건설 경험이 3·4호기로 이전되기 시작했다. 한전 직원들의 중재에 도움을 받아 H건설의 선행 건설기술이 후속호기의 D건설에 전수되면서 건설기술은 번영의 불꽃이 피어나듯 날로 발전되었다. 다시 말해 월성 2호기의 건설기술을 곧장 3호기로, 3호기 기술을 4호기에 발전적으로 융합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월성스토리텔링 제9화 사진3번

글=박희섭 <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사진출처=한국수력원자력<주> 월성원자력본부 제공, 한국수력원자력<주> 발행 꿈꾸는 에너지 아름다운 미래 : 원자력 발전 30년사
■참고문헌=한국수력원자력<주> 발행 ‘꿈꾸는 에너지 아름다운 미래(원자력 발전 30년사)’ ‘한국전력기술 30년 : since 1975년’ ‘한국전력공사 발간 살아있는 전력사-누리를 밝혀 온 한세기’, 차종희 저 ‘영광과 탁마의 세월 : 원자력과 함께 30년’, 한국원자력산업연구원 발간 ‘한국원자력산업연감’, 박익수 저 ‘한국원자력창업비사’

사진설명

본문사진1.
월성 2호기 착공식이 열린 1991년 10월23일, 월성원전 건설소 직원들이 안전기원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1년10개월 뒤인 93년 8월, 월성 3·4호기가 연이어 착공에 들어가면서 월성 2호기와 3·4호기 시공사 간 기술교류 여부가 원전 성공건설의 핵심사안으로 떠올랐다.

본문사진2.
1990년대 초 월성 2호기 건설공사 현장. 원자로 격납 건물이 서서히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월성 2호기 건설을 계기로 중수로 시공 분야 기술자립의 꿈을 이루게 됐다.

본문사진3.
1994년 4월14일 월성 2호기 원자로가 격납건물 내부에 설치됐다. 당시 월성 2호기의 건설 노하우가 월성 3·4호기로 전수되면서 국내 원전시공 기술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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