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블로그
삶에 활력(力)을 더하는 이야기
모바일메뉴 열기
검색창 닫기

ㅣ영남일보기획연재ㅣ한국에너지의 심장, 월성원전 제10화

  • 2014.02.19.
  • 764
  • 김동규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 인쇄

한국 에너지심장 월성원전

한국 에너지의 심장 월성원전 : 경제발전을 이끈 원자력 이야기

(10)새로운 희망들 

핵연료 이어 터빈발전기·원자로도 국산화… 세계 原電시장 새 틀 짜다

 

스토리텔링 10-1

 ◆열정으로 일궈낸 원전 기술자립

 전화를 끊고 나자 문득 바다가 떠올랐다. 이 부소장은 책상을 떠나 사무실 창가로 다가갔다. 월성원전을 방어하듯 길게 이어진 방파제가 보이고, 그 너머 시리도록 푸른 동해가 겨울 햇살 속에 찬연하게 떠 있었다. 언제나 아름다운 조국의 바다. 내심 중얼대던 이 부소장은 신라 문무대왕이 남긴, 호국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이 새삼스러운 의미로 다가옴을 느꼈다.

 조금 전 전화는 토마스란 캐나다 친구에게서 걸려온 것이었다. 럭비선수처럼 늠름한 체격에 갈색 구레나룻이 무성했던 친구다. 지금쯤 마흔 중반은 넘겼을 것이다. 외국인치곤 섬세하면서 책임감이 강한 성격으로 이 부소장과 궁합이 잘 맞았다. 하긴 그의 섬세하고 정직한 성격이 완벽하고 정밀한 작업이 요구되는 원전건설과 적성에 잘 맞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전화 속에서 토마스는 한국의 남빛 겨울 바다가 꿈에서까지 그리웠노라고 고백처럼 말했다. 겨울 휴가를 받았다는 소식 말미에 그는 이번 연말에 개최되는 월성 3·4호기 준공식에 참여할 예정이라며 한국 방문 목적을 슬며시 밝혔다. 어쩜 그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당시 토마스는 함께 근무했던 캐나다원자력공사 직원 중 누구보다 더 월성원전 2·3·4호기 건설에 남다른 노력과 애정을 보였던 친구다.

 이 부소장이 토마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월성 2기 건설공사가 한창이던 1995년 가을 초입이었다. 당시 토마스는 캐나다원자력공사의 월성 2호기 현장책임자로 부임했고, 이 부소장은 한전 건설과장으로 3·4호기 공사관리팀을 맡고 있었다.

 돌아보면 당시는 원자로의 주 격납건물 벽체 콘크리트 공사가 한창일 때였다. 한 단씩 거푸집을 떼고 붙여가며 벽체를 축조하는 경수로와 달리, 이음매 없이 매끈하게 일체형으로 축조되는 슬립-폼(Slip-form)이란 선진공법으로 행해진 콘크리트 타설작업에서 월성 2·3·4호기는 연속해서 공사기일을 단축하는 신기록을 수립했던 것이다.

 그것은 앞서 착공한 월성 2호기의 건설기술과 경험을 3호기와 4호기에 능동적으로 수용한 덕분이었다. 그렇게 해서 월성 2호기의 콘크리트 타설작업이 완료된 시일이 23일이라면, 3호기는 22일, 4호기는 18일 등 연속적으로 공기를 단축할 수 있었다. 또한 국내 원전 건설사상 최단기간에 공사를 마침으로써 공사비를 크게 절감했음은 물론이다.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마라토너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몰라. 이런 공사에도 기록 갱신을 추구하고 있으니 말이야. 이러다간 언젠가 우리 캐나다에 신형 중수로를 건설하겠다고 찾아오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당시 연속적 기록 갱신을 지켜보던 토마스가 경이롭다는 얼굴로 이 과장에게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다. 그건 농담이 아닌 예감이 아니었을까.

 책상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이 부소장은 토마스와 함께 한 시간들을 머릿속에서 뒤적거렸다. 맨 처음 떠오르는 기억은 97년 1월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정확히 말해 월성 2호기 원전이 최초 임계도달이 있던 날이었다. 2호기 임계도달과 함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으로부터 1년 반에 걸친 정밀검사 결과 안전성과 신뢰성이 입증되어 운영허가를 받은 것을 축하하기 위한 저녁 술자리가 문무대왕암 부근의 횟집에서 열렸다.

 그때 기분이 유쾌해서 마신 술이 너무 과했던가 보다. 고주망태가 된 채 토마스의 등에 업혀 사택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났다. 먼저 그를 업었던 김종만 팀장이 힘겨워하자 토마스가 자진해서 나선 것이다. 짚단을 업는 것처럼 가볍게 그를 등에 업은 토마스는 뛰어난 업무능력에 비해 이 과장의 주량이 형편없다며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날 토마스의 등에서 느꼈던, 코끝을 스쳐가던 겨울의 차가운 바닷바람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두 번째는 그로부터 한 달쯤 후였다. 일간신문에 한국과 캐나다 원자력공동위원회가 설치되었다는 기사가 발표되었다. 또 한국과 캐나다가 제3국 원전건설에 공동 진출을 합의했다는 고무적인 내용이 실려 있었다.

 사실을 알게 된 토마스는 이 과장의 사무실로 찾아와서 정말 기쁜 날이라며 퇴근해서 샴페인으로 축배를 들자고 제의했다. 이어 그는 예의 시원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몇 년 전에 한 말이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토마스는 벽체 콘크리트 타설작업에서 공기 단축의 기록을 하나씩 세워나갈 때, 나중에 한국이 중수로의 원조국인 캐나다에 중수로 건설을 하러 올 거라고 했던 농담을 상기시켰다.

 ‘그때의 농담이 단 몇 년 안에 현실처럼 될지 어찌 알았겠어. 암튼 놀라워, 한국이란 나라는….’

 감탄사를 늘어놓던 그는 앞으로 월성이 아닌 다른 타국에서 함께 일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늘어놓았다. 몇 년간 중수로 건설을 위해 함께 했던 날의 우정이 새삼스러운 말이었다. 뒤이어 토마스는 현재 한국의 원전 건설수준이라면 머지않아서 세계에 으뜸갈 날이 곧 올 거라고 예언처럼 덧붙였다.

 사실 한국은 월성원전 2기 건설 때부터 급속도로 기술이 발전했고, 기자재 국산화도 월성 1호기의 14% 수준에서 4호기 69% 수준으로 부쩍 향상되었다. 96년도에는 한국중공업에서 자체 제작한 터빈발전기가 월성 3·4호기에 설치되고, 4호기에는 국내 최초로 국산화된 중수로형 원자로가 설치됐다. 이에 따라 국내 원전 관련 산업에도 커다란 활성화가 이루어졌다. 현대건설의 경우 월성 2호기 시공을 맡으면서 중수로 시공분야에서 완전한 기술자립을 이룩하게 되었다.

 여기에 그동안 축적된 중수로 건설기술을 바탕으로 중국 등 해외 중수로 사업에 캐나다원자력공사와 동반 진출할 발판도 마련되었다. 또 93년에는 중국의 광둥원전의 보수 정비용역을 수주하고, 98년엔 중국 친산원전과 시운전요원 훈련계약을 체결, 월성원전 현지에서 교육을 실시했던 터였다.

스토리텔링 10-2

 ◆중수로가 맺어준 한-캐나다 기술진의 우정

 또 다른 기억은 97년 9월3일, 월성 2호기 준공식이 있던 날이다. 때마침 월성 2호기의 건설로 우리나라 원전 설비용량이 1천만㎾를 돌파하여 1천32㎾를 확보한 매우 뜻 깊고 경사로운 날이었다.

 ‘한국인은 잡초처럼 강인하며, 세상 어느 민족보다 뜨거운 열정과 근면성을 겸비한 멋진 민족이라고 생각해. 비유를 하자면 원자로처럼 강하고 뜨거운 심장을 가진 민족이랄까.’

 그날, 준공식이 끝난 뒤 원전과 가까운 봉길 해수욕장 부근 2층 카페에서 가진 뒤풀이 축하연에서 토마스가 내뱉은 말이었다.

 그런 토마스가 캐나다원자력공사의 발령으로 한국을 떠난 시기는 월성 2호기 준공식을 마치고 한 달 뒤인 97년 10월 말경이었다. 떠나기 전에 그는 겨울의 동해를 더 보지 못하게 된 게 제일 아쉽다며 이 과장에게 토로했다. 다시 한번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어린 소감도 남겼다.

 캐나다로 귀국한 뒤에 토마스는 몇 차례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첫 전화는 외환위기(IMF)가 닥친 97년 말경이었다. 한국 사정이 어떠냐고 걱정스레 안부를 물어왔던 것이다. 귀국한 뒤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 있는 캐나다원자력본부에서 근무한다던 그는 일 년쯤 후에 전화를 걸어와 토론토의 온타리오 하이드로 전력회사로 직장을 옮겼다며 회사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왔다. 그 이후로 연락이 없다가 이번에 전화로 한국행을 알려왔던 것이다.

 지금은 당시의 어려웠던 한국이 아닌 셈이지, 외환위기에서도 완전히 벗어났고. 이 부소장은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돌아보면 월성 3호기의 시운전은 96년 중반부터 실시되었다. 다음 해인 97년 12월에는 최초 원전연료 장전에 들어가서 모든 시험을 완료했다. 이어 다음 해 98년 4월에는 100% 출력을 냈고, 본격적인 상업운전에 돌입했다. 동일한 가압중수로형인 월성원전 1호기가 이용률 세계 1위를 3번이나 차지할 때도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사정상 준공이 미뤄지다가 99년 12월27일에 3·4호기 준공식을 동시에 하게 된 것이다.

 “여기 오다가 한전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대북경수로사업에 주 계약을 체결했다는 뉴스를 들었어.”

 성탄 트리 전구가 빛을 반짝이는 술집에서 토마스가 말했다. 정부인사와 한전 직원, 공사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월성 3·4호기 준공식이 끝난 다음이었다. 저녁 나절에 이 부소장은 토마스와 가까운 간부직원 몇 명을 데리고 읍천의 단골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런저런 잡다한 신상 얘기가 끝나고 화제는 다시 원전으로 돌아왔다. 직업은 역시 속일 수 없는 거라며 호방한 성격의 공사관리부 김 차장이 껄껄거렸다.

 “거기에 지원할 생각 없는가?”

 토마스가 진지한 눈길로 이 부소장에게 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만약 있다면 나도 합류할 수 있는 방안을 알아볼게. 뭐, 꼭 북한이 아니라도 중국이나 남미, 중동쯤이라도 괜찮지. 우리 둘이 함께 일할 수만 있다면….”

 “다가오는 뉴 밀레니엄과 중수로로 맺어진 우리의 아름다운 우정을 위하여!” 직원 중 누군가가 술잔을 들어 건배를 외쳤다. 다 함께 건배를 외치는 순간 이 부소장은 갑자기 심장이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스토리텔링 10-3

글=박희섭 <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사진출처=한국수력원자력<주> 월성원자력본부 제공, 한국수력원자력<주> 발행 꿈꾸는 에너지 아름다운 미래 : 원자력 발전 30년사

■참고문헌=한국수력원자력<주> 발행 ‘꿈꾸는 에너지 아름다운 미래(원자력 발전 30년사)’ ‘한국전력기술 30년 : since 1975년’ ‘한국전력공사 발간 살아있는 전력사-누리를 밝혀 온 한세기’, 차종희 저 ‘영광과 탁마의 세월 : 원자력과 함께 30년’, 한국원자력산업연구원 발간 ‘한국원자력산업연감’, 박익수 저 ‘한국원자력창업비사’

사진설명

본문사진1.

월성 2·3·4호기의 벽체 건설에는 콘크리트 이음매가 없이 일체형으로 축조되는 슬립-폼 공법이 적용됐다. 덕분에 월성 2·3·4호기는 연속해서 공사기일을 단축하는 신기록을 수립할 수 있었다. 건설기술자들이 콘크리트 타설에 앞서 철근 구조물을 점검하고 있다.

본문사진2.

1999년 12월27일, 김종필 국무총리 등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월성 3·4호기 준공식이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월성 3·4호기 건설로 중수로 시공분야에서 완전한 기술자립을 이룩하게 됐다.

본문사진3.

공사 중인 월성 3호기가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원자로 부속 건물의 기초공사가 한창이다.


>>다른 호 보러 가기<<
 

1화_기적의 에너지박스, 대한민국원전의 여명을 열다    http://blog.khnp.co.kr/blog/archives/3262

2화_새로운 도전, 중수로 원전   http://blog.khnp.co.kr/blog/archives/3268

3화_중수로의 비밀  http://blog.khnp.co.kr/blog/archives/3267

4화_중수로 원전부지 내포에서 월성으로 급선회  http://blog.khnp.co.kr/blog/archives/3266

5화_역경과 도전 늦어진 공기를 단축시켜라   http://blog.khnp.co.kr/blog/archives/4654

6화_산고의 시간들   http://blog.khnp.co.kr/blog/archives/4653

7화_월성 불을 밝히다    http://blog.khnp.co.kr/blog/archives/4652

8화_꺼지지 않는 열정의 불   http://blog.khnp.co.kr/blog/archives/4651

9화_꺼지지 않는 열정의 불    http://blog.khnp.co.kr/blog/archives/7113

0

댓글 남기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