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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사 탐험] 휘황찬란, 거리를 밝히다

  • 201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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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에서 처음 전등이 보급된 경운궁. 지금의 덕수궁으로 고종이 아관파천 이후 환궁하여 조영한 궁궐이다.]

전등(電燈)의 영업개시

서울 한복판, 고층 빌딩숲에 둘러싸인 덕수궁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영업용 전등이 밝혀진 곳이다. 경복궁 건청궁 뜰에서 시등(始燈)한 지 13년만인 1900년 4월 10일, 민간에서의 첫 전등이 밝혀졌다. 이날은 한성전기회사가 낮에만 운행하던 전차를 밤까지 연장 운행하기로 하고, 종로 전차매표소 앞에 세 개의 가로등을 밝혔던 날이다. 그리고 1년 쯤 뒤, 덕수궁 편전에 첫 영업용 전등이 환하게 밝혀졌다. 본격적인 영업용 전등시대가 열린 것이다.

전차 폭동으로 한때 중단되었던 전차가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전차의 앞뒤에는 방호기와 경종을 설치하는 등 사고예방대책도 강화되었다. 그 뒤 전차사업이 안정됨 에 따라 한성전기회사(이하 한성전기)는 그동안 낮에만 운행하던 전차를 밤 10시까지 연장 운행하기로 하고, 먼저 청량리~서대문, 청량리~남대문노선부터 시행키로 했다. 다만 비바람이 있는 날에는 종전처럼 낮에만 운행한다는 방침이었다. 한성전기는 승차의 이용이 많은 종로 등 중심지에 정거장과 매표소를 설치했다.

종로 매표소 앞에는 조명을 위해 세 개의 가로등을 점등했다. 1900년 4월 10일의 일이다. 이는 우리나라 민간에서 켜진 최초의 전기점등이었다. 우리나라는 1970년 12월 5일, 이 날을 ‘전기의 날’로 제정하고, 이를 기념해오고 있다. 한성전기는 점차 전차의 노선을 확장해나갔고, 동시에 전등(電燈)사업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나갔다. 1898년 8월 15일 한성전기는 서울시내 전등설비 설치에 관한 계약을 미국인 콜브란(H.Collbran)과 체결했다. 콜브란은 한성전기로부터 일화 32만 엔의 도급공사비를 받아 발전설비의 증설을 포함한 전등설비를 1901년 2월까지 완성키로 한 것이다.

그러나 기자재 비가 상승함에 따라 1900년 8월 15일, 수정계약이 체결돼 공사비 총액은 32만 엔에서 37만 엔으로 조정되었다. 수정계약이 조인되고 일부 공사비가 지불되면서 그해 10월부터 발전소 시설공사가 착공되어 이듬해 봄까지 완성되었다. 주요설비는 125마력의 보일러 2대, 200마력 의 엔진 2대, 125㎾의 직류·교류 양용의 발전기 2대 등이 다. 이 발전기는 엔진에 연결된 벨트에 의해 작동하였으며, 전차용의 직류는 550V, 그리고 전등용의 교류는 385V의 전압으로 변환기까지 송전되었다.

 

3                                                                                                   ※ 한성전기회사의 전차매표소와 종업원

덕수궁 편전에 가설된 영업용 전등(電燈)사업의 시작

발전소의 확장과 함께 배전시설공사도 동시에 추진되었다. 전등보급의 첫 대상은 궁궐을 비롯하여 외국공관이 모여 있는 정동과 일본인 상가밀집 지역인 진고개, 그리고 남대문 및 서대문지역으로 계획되었다. 배전선은 먼저 전차용 배전주를 따라 가설하고, 그 뒤부터의 연장선은 단독 배전주를 세웠다. 시설공사가 완료됨에 따라서 1901년 6월 17일, 경운궁에 처음으로 전등 6개를 점등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영업용 전등이다.

경운궁은 지금의 덕수궁으로, 고종이 아관파천 이후 1897년 2월 20일, 이곳에 환궁하여 새로 조영한 궁궐이었다. 경운궁의 6개의 전등은 편전 등에 점등한 설비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경운궁 전체에 500등 이상의 전등이 불을 밝혔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500여 등은 한성전기가 보급한 전체 전등수요의 약 25%에 해당하는 큰 수용이었고, 이는 한성전기의 전등 사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중요한 수치로, 한국정부는 주요 고객이었다.

그러나 1903년 9월, 조정은 경운궁 안에 25㎾의 발전기를 설치하고 한성전기의 전기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한·미 간 외교문제로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주요 고객이 끊겼으니 한성전기로선 큰 타격이었고, 콜브란은 알렌 공사 등을 통해 경운궁의 자체 전기 공급에 대해 항의했다. 이에 한국정부는 “왕실의 고유권한에 속하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경운궁의 전기 공급을 계기로, 한성전기가 그 인근에 자리 잡은 미국, 영국, 러시아 등의 외국공관에 도 전등을 보급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으나, 언제부터 전기가 공급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2                                                                                                   ※ 동대문 발전소 전경, 왼쪽 건물은 동대문

전기 들어오던 날,서울 시내는 온통 축제분위기

한성전기는 또한 경운궁의 전기 공급에 이어 일본인 상가가 밀집해있는 진고개(현 충무로)에도 이를 적극 권유해 6월 말까지 약 600등을 보급하였다. 한성전기는 전등사업 개시를 기념하고 이를 시민에게 널리 홍보하고자 1901년 8월 17일 저녁 동대문발전소에서 ‘전등 개설식’을 가졌다. 정부의 고관과 많은 귀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구의 선진 문물을 직접 경험하고, 조국근대화를 위해 앞장 선 민영환이 엔진의 스위치를 눌러발전기를 작동시켰다.(*참고로, 동대문발전소의 부지는 당초 민영환 소유였다.)

엔진 스위치를 누르자 발전소주변에 가설된 20개의 아크등과 주요 간선도로의 가로등이 일제히 점화되어 휘황찬란한 불빛이 서울 장안을 환하게 밝혔다. 시내는 온통 축제분위기로 들떴고, 발전소와 그 주변에는 1만여 군중이 모여들어 경탄의 눈으로 이를 지켜보았다. 당시의 황성신문 8월 19일자는 이 광경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전등 개설식을 기념하여 8시부터 10시까지 일반차량은 물론이고 특별전차까지 동원하여 운행하는데 초만원을 이루었다. 그리고 1년 전 4월 10일 이래로 종로에만 세 개의 가로등을 점등하였으나 이날 밤 11시부터는 전기철도 연변 네거리 등에는 모두 가로등을 점화했던 것이다.”

 

※ 한국수력원자력 사보 2014년 ‘수차와원자로’ 4월호 발췌(http://ebook.khnp.co.kr/Viewer/GRBTGBF3EXPW)

송미화

 


>>전력사탐험 다른 호 보러 가기<<
한성전기회사, 개화 앞당긴 최초의 민족기업 http://blog.khnp.co.kr/blog/archives/4423

경복궁의 전기점등  http://blog.khnp.co.kr/blog/archives/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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