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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역사와 등번호의 의미

  • 201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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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브라질 월드컵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곳곳에서 월드컵에 대한 기대로 다양한 이벤트들이 준비 중입니다.

트로트가수 박현빈과 윤수현은 구성진 월드컵 응원송 ‘한판 붙자’를 부를 예정이고, 최고 고음의 소유자 소찬휘는 강렬하면서도 따라 부르기 쉬운 ‘오~ 한국!’을 직접 프로듀싱 했다고 합니다.

또 각 방송국에서는 내로라하는 월드컵 중계단을 내세워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KBS는 이영표 해설위원과 조우종 아나운서, SBS는 차범근 해설위원과 배성재 아나운서, MBC는 송종국, 안정환 해설위원과 김성주 아나운서가 중계에 나서는데요, 워낙 쟁쟁한 분들이니 어느 방송을 봐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오늘은 ‘2014 브라질 월드컵’과 관련해 축구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축구의 역사와 등번호에 얽힌 이야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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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축구가 전파된 것은 1882년 영국 군함 플라잉 호스의 승무원을 통해서였다고 합니다.

세계를 통틀어 최초라 할 수 있는 축구는 중세 스페인에서 유래했으며, 현대적 의미의 축구는 1863년 잉글랜드에서 축구협회 ‘FA’가 결성되면서 함께 시작됐습니다.

 

최초의 축구 룰이 생긴 것도 이맘때입니다.

잉글랜드의 어핑엄 스쿨 교사였던 존 트링(John Charles Thring)이 사립학교에서 행하던 축구경기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만든 ‘케임브리지 규칙’ 그것입니다.

최초의 FA도 존 트링이 졸업생 7명과 함께 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축구의 기초를 닦아놓은 사람은 존 트링이 아니라 에베니저 콥 몰리(Ebenezer Cobb Morley)입니다.

그는 축구 협회의 초대 사무관을 지내며 현재 통용되고 있는 축구의 규칙을 만든 사람으로, 오늘날 ‘축구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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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최초의 국제경기는 언제 치러졌을까요?

역사상 최초의 국제축구경기는 1872년 11월30일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열렸습니다.

당시 축구협회의 사무관이었던 찰스 윌리엄 앨콕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간의 정기적인 대회를 추진하면서 이뤄진 것입니다.

이후 국제경기에 대한 인기가 증가하면서 유럽 7개국이 새로운 협회를 만들었는데, 이 협회가 지금의 FIFA(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21년 제1회 전조선축구대회가 열렸습니다.

당시 축구는 특별한 장비 없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이었는데, 1929년 경성축구단과 평양축구단이 벌인 경평축구대회가 큰 관심을 끌면서 1933년 조선축구협회가 창립되었습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으로 협회가 해산되었다가 해방 후인 1948년 대한축구협회로 부활하면서 우리나라도 FIFA에 정식 가입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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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하는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등번호가 정해졌습니다.

백넘버 9를 단 손흥민부터 박주영 10, 이근호 11, 이용 12, 구자철 13, 기성용 16, 이청용 17번을 달았습니다.

축구선수들의 등번호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기준으로 바뀌었습니다.

기존의 백넘버는 1~99번까지 어떤 번호를 달아도 상관없지만, 2002 한일월드컵경기부터는 백넘버를 1~23번까지만 허용해 1번은 골키퍼, 선발출전 선수들은 1~11번, 교체선수들은 12번 이후의 번호를 달아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그래서 골키퍼는 1번, 2~4번은 수비수, 5~6번은 수비형 미드필더, 7~8번은 공격형 미드필더, 9번은 득점용 스트라이커, 10번은 팀 내 에이스, 11번은 가장 빠른 선수, 12, 14번은 스트라이커라는 포지션이 됩니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10번의 등번호를 받은 박주영 선수는 팀 내 에이스, 11번을 받은 이근호 선수는 가장 빠르고 체력이 좋은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FIFA 규정이 바뀌기 이전에도 특정 등번호와 포지션이 연관성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 규정이 정확하게 지켜지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번호가 낮을수록 수비수에 가깝고, 숫자가 높을수록 공격수에 가깝지만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의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주목받고 있는 손흥민 선수의 경우는 최근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11번을 많이 달았지만 14번과 8번 등의 등번호를 달기도 했습니다.

현재 프로스포츠 종목에서 등번호 관련 규정은 종목에 따라 다릅니다. 야구나 농구, 축구는 선수 개인의 선택을 최대한 배려하는 데 비해 미식축구와 배구는 제한적입니다.

 

야구와 농구, 축구는 선수들이 선호하는 등번호를 선택하기 때문에 선수 개인과 얽힌 이야기가 많습니다. 축구에서는 전통적으로 10번이 최고 스타가 갖는 등번호로 꼽힙니다.

1958년 스웨덴월드컵 당시 10번의 등번호를 달고 종횡무진의 활약을 펼치며 ‘축구 황제’로 등극한 펠레 때문입니다.

당시 17세로 최연소 출전했던 펠레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하며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때 펠레의 등번호 10번은 전세계 축구 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됐고, 펠레가 이후에도 그 번호를 달면서 축구에서 10번 선수는 팀의 핵심인 ‘플레이 메이커’를 상징하게 됐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와 리오넬 메시, 독일의 로타어 마테우스,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브라질의 호나우지뉴 등도 모두 10번을 달았습니다. 

 

축구의 역사와 선수들의 백넘버 포지션의 의미를 알고 나니 이번 월드컵은 더욱 즐겁게 관전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더욱이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각 경기장마다 14대의 골 판독기를 설치해 골 판정의 오심을 줄였다고 합니다.

한주 앞으로 다가온 브라질 월드컵, 많은 분들의 기대만큼이나 유쾌하고 시원한 경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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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3)

  • 알페라츠 3 년 전에

    또 포지션별 번호도 다 옛말이지 지금은 그저 자기가 선호하는걸 달거나 구단 혹은 팀에서 주는번호를 다는것 뿐. 물론 좋은 번호는 객관적으로 봐도 몇가지가 있겠죠.

    • 운영자

      운영자 3 년 전에

      해박한 지식으로 관심을 가지고 정확한 지적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적하신 내용을 본문에 반영하여 수정하였습니다.

  • 알페라츠 3 년 전에

    한일월드컵부터 인원수만큼인 23번 이내로 규정한건 알고있는데, 선발을 순서대로 1~11번이니 교체를 그 이후번호로 규정한다는건 없습니다. 축구 초기에 선발선수가 앞번호부터 차례대로 받는게 있었던거죠. 잉글랜드가 그걸 아직 계속 적용중(평가전에서 적용.대회는 제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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