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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사 탐험] 일한와사(주)의 등장_한성전기, 美 거쳐 日가스 회사로 팔려

  • 201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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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한와사의 마산발전소 건설현장

와사등(瓦斯燈) – 김광균(1939)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 내 홀로 어디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냐// 긴-여름 해 황망히 날개를 접고 /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 찬란한 야경(夜景) 무성한잡초인 양 헝크러진 채 /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구나. //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지고 왔기에 / 길-게 느린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 차단-한 등불이 하나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김광균 시인의 시 <와사등> 전문이다. 시제 ‘와사등’은 일본식 표기로 가스등(gas燈)으로도 불렸다. 이 시에서는 도시문명이 안겨 주는 절망감을 와사등이라는 시각적 이미지와 회화적 수법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일몰과 밤으로 귀결되어 절망을 주면서도 이국적 정서를 환기시켜주고 있는 가운데 한 지식인이 어둠이 내리는 도심 행렬 속에서 느끼는 내면의 방황을 잘 묘사한 것으로, 구한말 국권을 빼앗긴 대한제국의 초라한 모습과도 닮아있다.

 

3※ 일한와사(주)의 개업. 회사는 1909년한미전기회사를 매수, 1915년 경성전기(주)로 이름 변경.

와사등이 우리나라에서 첫선을 보인 것은 1909년 11월 3일 밤, 지금의 충무로인 진고개 등 주로 일본인들의 거주지에 서였다. 당시의 수용가는 914호였으며, 이것이 우리나라 가스 점화의 시초가 되었다. 이날 가스를 공급한 회사는 일본인들이 설립한 일한와사주식회사(日韓瓦斯(株))로, 이 회사는 한미전기회사를 매수, 지금의 한국전력 전신인 경성전기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꾸었다.

 1※ 1904년 2월 19일 고종의 대리인 이학균과 콜부란, 보스트위크 사이에 조인된 한미전기회사 설립 계약서.

 

한성전기를 송두리째 빼앗긴치욕스런 매도계약

고종황제가 단독 출자한 한성전기회사는 결국 시공과 운영을 대행하던 콜부란(H. Collbran), 보스트위크(H. RBostwick)의 손에 넘어갔다. 서울 시내의 전차사업과 전등 및 전화사업을 시행하면서 전차 궤도부설 등 사업영역을확장해나가는 과정에서 투자재원 조달이 어려웠던 것.

채무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한성전기회사는 1904년 2월 19일, 콜부란, 보스트위크가 요구하는 다음 계약에 서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①콜부란, 보스트위크는 한성 전기회사의 특허권과 재산의 공인소유자임을 확인하고 ②새로 설립될 한미전기회사의 운영권자임을 인정하고 그 동안 쟁점이 되었던 모든 재산과 권리를 그들에게 넘겨주고 ③고종은 새로이 일화 40만 엔이라는 거금을 현금으로 출자하고 35만 엔의 약속어음을 발행한다 ④이35만 엔을 지불하지 못할 경우 이미 지불한 40만 엔도 몰수된다 ⑤왕실의 이러한 모든 재산과 이권을 (콜부란,보스트위크가) 소유한 다음 회사를 미국의 법률에의해 조직한다, 라는 치욕적인 조치였다.

 6※ 1904년 2월, 한성전기회사의 발전소가 한미전기(주) 소속으로 바뀌었다.

계약이 조인됨에 따라 콜부란, 보스트위크는 5개월 뒤인 1904년 7월 18일 미국 코네티컷주 세이부르크시(市)에서 자본금 100만 달러의 유한회사로 한미전기회사(韓美電氣會社)를 설립하고, 본사의 주소지를 코네티컷주 주도하트퍼트로 이전했다.

고종이 단독 출자했던 한성전기회사가 이렇게 미국인 소유로 송두리째 넘어갔음에도 군말 한마디 못했던 것은 그만큼 대한제국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약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우리나라를 서로 독점하겠다고 싸웠던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으로 말미암아 우리 정부가 첫 번째 수교를 맺고 의지한 서양국은 미국이었고, 고종은 황실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미국의 보호를 받고자 알렌(H.N Allen) 공사를 자주 찾았다. 그러나 알렌은 결과적으로 고종의 역점사업인 전기사업이권을 콜부란, 보스트위크에게 “놀라 자빠질 정도의 엄청난 이권을 넘겨주는 데 앞장선” 것이다.

 4※ 러일전쟁 개전을 앞두고 서울에 진주한 일본군

 

콜부란, 미국 회사로 매도 후 일본 회사에 되팔아먹고 ‘먹튀’

일본인들의 전기사업체가 한반도에 진출하기 시작한것은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부산과 원산, 인천이 개항되고 서울에 일본공사관이 설치되면서부터 본격화 됐다. 일한와사주식회사도 그중 하나였다. 일한와사는 전기사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당시 서울에는 이미 전기사업을 독점 경영하는 전기사업체가 있었으므로 일본인들은 조명에 난방과 취사를 겸할 수 있는 가스에 착안, 기존의 한미전기회사에 대항하여 가스사업을 출원, 사업허가를 받았던 것이다.

한성전기회사를 손아귀에 쥐고 사명까지 한미전기회사로 바꾼 콜부란은 회사를 제3자에게 매각할 기회만 엿보고있었다. 그러던 중 일한와사가 가스설비공사 착공을 전후로 한미전기회사의 매각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마침내 1909년 6월 23일 콜부란과 일한와사 간 매매계약이 조인되었다. 매매계약 조건은, 일한와사가 120만 엔을 콜브란에게 지불하는 한편 사채(社債) 50만 엔을 인수한다는 것이골자였다. 이로써 한미전기회사의 모든 재산과 특허권은 일한와사로 양도되었다.

매매 교섭과정에서 고종은 전적으로 제외되었다. 매도대금 120만 엔은 콜부란이 틀어쥔 채 런던으로 떠났으므로 고종은 매도대금 분할에서도 제외된 것이다. 위 시 <와사등>에서 “(중략) 찬란한 야경(夜景)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크러진채 /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는 구절은 당시전력사업의 뼈아픈 현실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 한국수력원자력 사보 2014년 ‘수차와원자로’ 6월호 발췌(http://ebook.khnp.co.kr/Viewer/Z2W1ZX4AMBP0)

송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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